보시(普施)와 로젠탈효과
2024. 4. 27. 12:30ㆍ경전과교리해설
보시(普施)란 일반적으로 베푸는 것을 의미하지만
복과 이익을 타인에게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베풀기 때문에 희사(喜捨)라고도 하며,
은혜를 베푸는 것이기 때문에 수혜(授惠)라고도 합니다.
보시하는 방법으로는
물질적인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재시(財施)라고 하며
승려가 신도에게 법을 설해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고 합니다.
법가(法家)에서는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무애보시(無碍普施)를 더하여 이를
보시의 삼대행(三大行)이라 합니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 보면
「공덕을 베풀 돼 보답을 바라지 말라 (施德不求望報)」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보시하고 그 공덕을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고,
도모하는 생각이 있게 되면 보시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고,
또 언젠가는 화려한 명예를 얻을 것이라고 하는
기대감의 유혹에도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본래 덕의 본성이 없고, 영원한 것도 아님을
관조하고 희사(喜捨)하는 마음만 가져야 합니다.
덕이란 참 알맹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시기를
「덕 베푼 것을 헌신짝처럼 버려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보살십주도행품(菩薩十住道行品)』에 보면
보살에게 주는 <보살십주(菩薩十住))라는 것이 있는데
그중 2반째에 <아사부보살 법주>란 것이 있습니다.
경전을 보면
「 아사부 보살의 법주란 어떤 것인가?
열 가지 뜻[意]으로
시방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니
그 열 가지 뜻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세간 사람의 선(善)을 모두 생각하고,
둘째는 깨끗한 마음이며,
셋째는 모두 안온한 마음이요,
넷째는 유연한 마음이며,
다섯째는 모든 사랑이 평등하고,
여섯째는 다만 남에게 보시하려는 마음뿐이며,
일곱째는 마음을 잘 보호하고,
여덟째는 남과 내 몸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아홉째는 시방 사람들을 내 스승과 같다고 생각하고,
열째는 시방 사람들을 부처와 같다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보시하는 자의 이런 마음 자세는 불가(佛)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교육심리학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로젠탈효과>입니다.
<로젠탈효과>는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로젠탈’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는 심리학 교수로 아이들을 상대로
한 가지 실험을 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IQ 테스트를 합니다.
그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20%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그 리스트를 해당 반 담임 선생님에게 주며
이 아이들은 지능지수가 매우 높으니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 무작위로 뽑은 그 아이들은 따로 불러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1년 후 뽑힌 그 아이들의 성적을 보니 놀라웠습니다.
무작위로 뽑힌 그 아이들은 이전에 비해
지능지수가 월등히 높아졌습니다.
적게는 15점에서 많게는 27점까지 점수가 향상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 태도까지 변화하였습니다.
담임 선생님(교사)의 기대와 관심,
격려가 아이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칭찬하고, 격려하는 한마디 말의 보시로
긍정적인 효과를 본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는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합니다.
그는 그 조각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매일 갈라테이아를 보며 사람처럼 여기고
급기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런 피그말리온의 모습을 본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의 사랑에 감동해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는 타인에 대한 기대와 관심, 믿음은
그 타인을 그 믿음대로 변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선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 두 효과를 종합해보면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과 사랑은 나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타인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시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재물이 아닌 말과 행동으로 베푸는 보시입니다.
경전에는 이를 <무재보시(無財普施)>라 하며
무재보시로는 7가지 유형을 말하고 있으므로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합니다.
1)무재칠시(無財七施)의 첫째는 화안시(和顔施)입니다.
얼굴에 화색(和色)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입니다.
화난 얼굴, 찡그린 얼굴,
언짢은 얼굴로 하는 보시는 보시가 아닙니다.
2) 둘째는 언시(言施)입니다.
우리 속담에 「한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로써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아닌 사랑의 말, 상대를 (貶下) 헐뜯고,
비아냥거리는 말이 아니라 칭찬(稱讚)해주고,
위로(慰勞)해 주고,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격려(激勵)의 말을 해주며,
내 몫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양보(讓步)하는 말,
부드러운 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보살행오십연신경(菩薩行五十緣身經))』에
부처님이 보살에 이르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살은 세상마다 사람의 나쁜 점을 말하지 않았고,
나쁜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티끌과 때가 나의 몸에 붙지 않는 것이다.」
3) 셋째는 심시(心施)입니다.
닫힌 마음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습니다.
보시는 열린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선가(禪家)에서 「마음을 닫으면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지만
열면 온 천하를 담을 수 있다」라고 했듯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4) 넷째는 안시(眼施)입니다.
질투와 시기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을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5) 다섯째는 신시(身施)입니다.
몸으로 베푸는 것입니다.
길을 가는 시각장애인들을 도와주며,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며
무거운 짐을 진 자를 도와주는 것들이
몸으로 하는 보시입니다.
6) 여섯째는 좌시(坐施)입니다.
자리를 내주어 양보(讓步)하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일터는 물론 내가 앉을
내 몫의 자리를 양보하여 주는 것입니다.
7) 일곱째는 찰시(察施)입니다.
독거(獨居)노인들을 찾아 나서듯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주변을 살피고
관련 상대를 찾아 도와주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갈 길을 몰라 방황할 때,
무엇을 어떻게 다루워야 할지를 줄을 몰라
난처해 있을 때 먼저 이를 살펴서 알고
도와주는 마음입니다.
이를 찰시(察施)라고 합니다.
보시하는 마음은 선행(善行)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어떤 분별심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경전은 말합니다.
시대가 변해 지금의 스님들은 사찰안에서 편하게 공양을 즐기지만,
옛적 부처님 시대에는 비구는 무소유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비구들은 매일 공양을 나가야만 했습니다.
걸식(乞食)으로 공양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걸식도 하나의 보시행이기도 합니다.
경전을 보면 가섭 존자는 가난한 집을 찾아 걸식했고,
아난은 부잣집을 찾아 걸식했습니다.
가섭 존자는 가난한 사람은 전생에 쌓은 공덕이 없어
현생에 빈천하게 살아가므로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리게 하여
그들에게 공덕을 쌓게 하려는 의도였고,
반면 아난존자는 가세가 궁하여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
가난한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이들에게 공양받기보다는
부유한 사람에게 공양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둘을 향해
보시하는 마음에는
어떠한 분별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일렀습니다.
보시하는 마음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넓게 보시를 보면 천하 만물이 모두 보시의 대상이 됩니다.
보시는 인연이 있어 하는 보시도 있지만
인연이 없는 것에도 이루어집니다.
이를 부처님의 무연자비(無緣慈悲)라고 합니다.
보시하는 행위는 바로 자비행이기 때문입니다.
선가에서 말하는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體)」라는 말처럼
보시의 마음은 분별심이 아닌
그러한 마음에서 나오고 그러한 마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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