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까마귀와 까치 이야기(제2부)

2022. 12. 4. 19:33포토습작

 

까치밥도 이제 다 떨어지고 한 개만 대롱대롱 메달려 있다.

스산한 가을 바람 옷깃을 스치는데 낙엽 쌓인 불암산 둘레길을 걸어본다.

 

제1부에 이어 2부에서는 까마귀와 까치에 얽힌 전설을 살펴보았다.

까치는 민화나 전설에서는 일반적으로

희망과 소식을 전하고 보은(報恩)하는

길조(吉鳥)로 알려져 있는 데 반하여,

까마귀는 동서양의 신화 등에서는

신의 전령으로 신조(神鳥)로 등장하지만,

그 반대로 죽음과 배신, 밀고 등 어둡고 흉한 것으로도 인식되는

흉(凶)과 길(吉)의 양면을 지닌 새로 등장하고 있다.

 

 

까치는 희소식(喜消息)을 알리는 길조(吉鳥)지만

시에서는 그 희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까치의 울음을 빌어 잠시나마

그리움에 대한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 아닐까.

 

밤한울 구만리엔 은하수가 흘은다오

구비치는 강가에는 남녀 두 별 있엇다오

사랑에 타는 두 별 밤과 낯을 몰으것다

한울이 성이 나서 별 하나를 쪼치시다

물 건너 한편 바다 떠러저 사는 두 별

추야장(秋夜長) 밤이 길다 견듸기 어려워라

칠석날 하로만을 청드러 만나보니

원수의 닭의 소리 지새는 날 재촉하네

리별이 어려워라 진정으로 난감하다

해마다 눈물흘러 흔하수만 보태네

 

위의 시는 1934년 11월, 《삼천리》에 실린

월탄 박종화의 시 '견우직녀' 이다.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린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한다.

또 칠석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또 이날은 유난히 부슬비가 많이 내린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또 칠월칠석 아낙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거나

우물을 퍼내어 깨끗이 한 다음 시루떡을 놓고

식구들이 병 없이 오래 살고 집안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칠성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처녀들은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며

바느질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것을 걸교(乞巧)라 한다. 장독대 위에다 정화수를 떠놓은 다음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놓고

이튿날 재 위에 무엇인가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바느질 솜씨가 좋아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희작(喜鵲)

 

쓸쓸한 사랑채에 해가 막 기우는데

벽오동 가지 위에 까치가 깍깍댄다.

은근히 주인에게 기쁜 소식 알려주니

집안에 즐거운 일 생길 줄 알겠도다.

 

寂寂西軒日欲斜(적적서헌일욕료)

碧梧枝上鵲査査(벽지상작사사)

殷勤爲報主人喜(은근위보주인희)

知有家中樂事加(지유가중낙사가)

 

이 시는 조선 전기 정수강(丁壽崗, 1454~1527)의 작품이다.

까치 소리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담에 흔히 알려진 이야기다.

대개 아침에 우는 까치의 울음은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시에서는 아침도 아닌 해가 지는 저녁 무렵

벽오동 나무에 그것도 봉황이 아닌 까치의 울음소리로

긴 기다림에 대한 큰 기대를 담고 있다.

 

#전국시대 제자백가 장주(莊周)가 쓴

『장자』의 「추수」 편에

"남방에 원추(鵷鶵)라는 새는 벽오동이 아니면 앉지도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도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다"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는 구절이 나온다.

원추는 상상의 새 봉황을 말하며 봉황이 앉아 쉬는

상서로운 나무[祥瑞木]가 오동(梧桐)이다.

연실(練實)은 빨라야 60년에 한 번 맺힐까 말까 한 대나무 열매이며

예천(醴泉)은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만 솟아나는 샘을 말한다.

한마디로 봉황은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전설의 새다.

 

 「규정(閨情)」 .

~이옥봉(李玉峯)~

 

약속을 두시고선 왜 안 오시나

뜰의 매화도 시드는 이때.

가지 위 까치 소리 들려오기에

거울 보며 부질없이 눈썹 그려요.

 

有約來何晩(유약래하만)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虛畫鏡中眉(허주경주미)

 

떠난 임이 빨리 돌아오기를 그리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사모하는 연인들의 마음이다.

꽃이 피는 봄날 금방 돌아오겠다던 떠난 임이

봄이 다 가도록 기별조차 없다. 뜰앞의 매화도 지기 시작하는 데

이제나 저제나 마음 조아리며 기다리는 데

문득 마당에서 까치 울음소리가 들린다.

까치가 아침부터 우니 오늘은 기다리던 임이 오시려는 게 틀림없다.

반가운 임을 맞이하는데 몸단장 아니할 수 없다.

정성스럽게 눈썹을 그리며 고운 단장을 서두른다.

행여 초췌한 모습으로 반기려다 임이 돌아서지는 않을까.

기다리며 기다리던 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까치의 울음소리로 대변하고 있다.

 

술회(述懷)

그대 생각 않으려도 생각이 절로 나네

그대는 무슨 일로 언제나 멀리 있나.

까치가 기쁜 소식 전한다 말을 마오

공연히 저녁까지 놀래기를 몇 번인고.

 

不欲憶君自憶君(불욕억군자억군)

問君何事每相分(문군하사매상분)

莫言靈鵲能傳喜(막언영작능전희)

幾度虛驚到夕曛(기도허경도석훈)

 

여류 시인 박죽서(朴竹西)의 「술회(述懷)」란 작품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임이 소식도 없다.

하루하루 기다림이 지쳐 이제 미움이 솟아난다.

지우려고 하면 자꾸만 더 떠오르는 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다.

가슴에 맺힌 답답하고 울적한 심회를 어찌해볼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고 고대하던 임 소식 감감무소식이니

오늘도 아니 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이제 희소식을 전한다는 아침의 까치의 울음에 미워지기도 하다.

임이 오시길 기다리는 긴 기다림 속에 그려내는 애틋한 마음이 돋보인다.

 

 

까치와 관련된 시문 중에는 지극한 새끼 사랑을 노래한 것이 유난히 많다.

충남 서산에서는 십수 년 전 흰 제비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흰 꿩이나 흰 사슴이 잡혀 상서로운 조짐이라며

온 나라가 기뻐한 일이 많았다.

새나 짐승의 깃털이 온통 희게 변하는 백화(白化) 현상은 이따금 관찰된다.

『삼국사기』를 보면 문무왕 2년 남천주(南川州)에서

흰 까치를 바친 것을 포함해서

모두 네 차례나 흰 까치를 임금께 올린 기록이 보인다.

 

고려 때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도

흰 까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글에 보이는 흰 까치는 흔히 그렇듯이

시대의 길조를 미리 알려주는 상서로움의 상징이 아니라

안타까운 모성의 이야기다.

 

수선사(修禪社)의 탁연(卓然) 스님은 재상의 아들로 글씨를 매우 잘 썼다.

갑진년(1184) 봄에 경사(京師)에서 강남으로 돌아가다가

계룡산 아래 한 마을을 지나는데

나무 위에 까치가 깃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몸은 하얗고 가슴은 붉은데 꼬리는 검었다.

 

마을 사람 장복(張福)이 말했다.

“이 까치가 와서 둥지 튼 것이 이미 일곱 해나 됩니다.

그 새끼를 매년 올빼미가 잡아먹으니,

소리쳐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여 슬픈 마음을 자아냈지요.

첫해에는 머리가 처음으로 희어지더니,

둘째 해에는 머리가 온통 희어지고,

셋째 해가 되자 몸이 온통 희게 되었습지요.

올해에 요행히 그 재앙을 면하자 꼬리가 점차 도로 검게 되었답니다.”

탁연 스님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같은 절의 천영(天英) 스님에게 말했다.

천영 스님이 말했다.

“아! 이것은 이른바 금두인(禽頭人), 즉 새의 머리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시를 지었다.

 

원망 기운 머리에 쌓여 눈 덮인 산 이루었고

핏자국 가슴 적셔 단전이 되었구나.

네가 만약 남의 자식 괴롭히지 않는다면

사해의 흰머리가 하루 만에 검게 되리.

 

怨氣積頭成雪嶺(원기적두성설령)

血痕沾臆化丹田(혈흔첨억화단전)

渠如不腦他家子(거여불뇌타가자)

四海霜毛一日玄(서해상모일일현)

 

겉모습은 새이지만, 그 안에 사람의 마음을 지녔다고 해서

금두인(禽頭人)이라고 했다.

까치가 털이 희게 변한 것은 새끼를 잃은 근심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가슴이 붉게 물든 것은 가슴이 아프다 못해 피멍이 든 것이었다.

꼬리가 조금 검은 것은 이제 새끼를 기를 수 있게 된 것이 기뻐

본래의 마음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천영은 까치를 괴롭히는 올빼미를 나무라면서 시를 맺었다.

이 또한 옛사람들이 까치를 신령스럽게 생각했음을 잘 알게 해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명산이나 사찰에도

검은 까마귀인 금오(金烏)의 전설이 많이 전해오고 있다.

구미 금오산(金烏山)은

예로부터 '왕기(王氣)가 서린 산'으로 불려 왔던 산이다.

금오산이란 명칭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금오(金烏)란 삼족오(三足烏) 또는 세 발 달린 까마귀를 뜻하며,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 속에 산다고 여겨졌던 전설의 새이다.

이는 태양 숭배 사상에서 출발한다.

해를 상징하는 원 안에 그려지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 자주 등장한다.

삼족오는 하늘의 제왕(태양)이 내린

군왕 배출의 천명(天命)을 땅으로 전해주는 사자(使者)로 묘사된다,

 

#예천 향천사전설

예천 향천사 창건 설화에 까마귀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백제 말엽 의각화상(義覺和尙)이

당나라에서 수년간 수도를 한 후에 3,053위의 부처를 싣고

무한천의 하류인 석주포(石舟浦 지금의 창소리)에 도착하여

부처를 모실 곳을 찾고 있을 때,

금 까마귀 한 쌍이 날아와 배 주위를 돌고 사라졌다.

의각화상이 기이하게 여겨 따라가 보니

금 까마귀가 물을 쪼아 먹다가 자취를 감추고 그윽한 향내가 풍겼다.

이곳에 절을 짓고 불상을 모시니

산 이름을 금오산, 절 이름을 향천사라고 하였다 전 한다.

652년(의자왕 12년(652년) 때라고 한다.

 

<한식(寒食)>

 

제사 끝난 들머리에 날은 저물어

지전 뒤적이는 곳에 갈까마귀 우짖네.

사람들은 돌아가고 산길은 적막한데

팥배나무 꽃잎을 빗방울이 때리누나.

 

祭罷原頭日已斜(제파원두일이사)

紙錢飜處有鳴鴉(지전번처유명아)

山蹊寂寂人歸去(산혜적적인귀거)

雨打棠梨一樹花(우타당리일수화)

 

위의 시는 권필의 「한식(寒食)」이란 작품이다.

한식 성묘 길의 소묘다.

들녘을 맴돌던 까마귀들이 지전을 태우는 연기를 보고

제사 음식에 침을 삼키며 까옥까옥 대며 날아오른다.

고요한 성묘길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는데

거기에 부슬부슬 비가 내려 팥배나무에 맺힌다.

까마귀 울음소리, 적막한 산소길에 비까지 내리니

울적한 마음 더욱 울적해진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야기 아폴론의 까마귀

까마귀는 온몸의 검은 색깔로 인하여

죽음의 전령, 배신자, 밀고자 등으로 인식되는 흉조(凶鳥)로 불리지만

동서양의 전설에는 신(神)의 전령으로 신조(神鳥)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고구려 역사를 보면

태양 속에 사는 금오(金烏)로 삼족오(三足烏)로

신조(神鳥)로 알려져 있고

서양에서도 특히 그리스 신화 속에는

또한 신의 전령으로 메신저로 여겨지고 있는 새였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의하면 아폴론(Apollon)은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이다.

예언, 의료, 궁술, 음악, 시의 신이며,

광명의 신이기도 하여 후에는 태양신과 동일시하는 신이다.

 

테살리아의 라리사 지역에는

코로니스(Coronis)라는 매우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그녀는 라피스의 왕인 플레이어스(Phlegyas)의 딸로

아름다움 때문에 아폴론이 사랑하는 여러 여인 중에서도

가장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테살리아의 라리사라는 지역은

아폴론이 머무는 파르나소산과 멀리 떨어져 있어

아폴론은 천상과 지상 두 곳을 오가며 사랑을 나누었다.

아폴론은 자유롭게 천상과 지상을 오갈 수 있는 신이었지만

코로니스는 인간이었기에 거동에 제약이 따랐다.

그래서 떨어져 있을 때는 아폴론은

까마귀를 전령사로 삼아 소식을 전하곤 했다.

아폴론의 이 까마귀는 아폴론의 애완조로 말을 할 줄도 알고

또한 화려한 헤라 여신의 상징인 공작(孔雀)새만큼

흰 깃털을 가지고 있는 전령사였다.

 

아폴론은 그녀와 사랑을 나눈 후

곧바로 파르나소스 산으로 돌아가고 나면

지상에 남은 코로니스는 항상 홀로 남겨진 신세가 되었다.

아폴론은 천상의 신이었지만 코로니스는 인간이기 때문에

신들이 느끼는 사랑과는 달라 외로운 고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니스는 사랑을 위해 태어난 여인이다.

아폴론이 찾지 않으면 심한 고독감에 빠져들었다.

그 고독감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인간인 젊은 이스키스 왕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그녀의 몸엔 아폴론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니스는 고독감을 이기지 못해

그와 결혼까지 하고는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까마귀는 모든 사실을 아폴론에게 알렸다.

코로니스가 인간의 왕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분노한 나머지 활을 집어 들고 코로 니스의 가슴을 겨누고 화살을 당겼다.

코로니스는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면서

“아폴론이여, 저를 죽이시더라도

당신의 아기나 낳게 한 연후에 죽이실 것을…………. ”

라고 하며 채 말을 맺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아폴론은 코로니스의 마지막 이 말에 깜짝 놀랐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라 코로니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코로니스의 복중에서 아기를 꺼내어

켄타우로스(Centauros) 케이론(Cheiron)에게 맡겼다.

케이론은 그 자신이 아폴론으로부터 배운 의술을

모두 아이에게 전수하였다.

그가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의술을 지닌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이다.

 

그리고 아폴론은 고자질하고 상을 바라고 있던 까마귀에게

코로니스의 정부였던 테살리아의 검은 피부를 씌웠다.

그 후로 까마귀의 깃털은 까맣게 됐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옛날에 아테나 여신께 에리크토니오스라고 하는

어미 없는 아이 하나가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이 아이를 아르카디아 버들로 짠 바구니에다 넣고

이 바구니를 케크롭스 왕의 세 딸에게 맡겼다.

 

케크롭스 왕은 반은 인간이었고, 반은 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세 딸에게 절대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 당부하였다.

첫째인 판드로소스 (Pandrosos)와 둘째인 헤르세는

아테나 여신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 셋째인 아글라우로스 (Aglauros)는

여신의 말에 복종하는 두 언니를 겁쟁이라고 하면서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똬리를 튼 뱀과 아기가 있었다.

까마귀는 그녀들이 아테나 여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뚜껑을 열었기에 아테나 여신에게 날아가 사실을 일러바쳤다.

아테나 여신은 까마귀에게 상을 주지 않고

까마귀가 자리하고 있는 신조(神鳥)의 자리에서 까마귀를 내쫓고는

그 자리는 밤새인 올빼미에게 주어버리고

까마귀는 불에 처해 버렸다.

함부로 입을 놀린 것에 대한 처벌을 한 것이다.

그 후 까마귀 깃털은 불에 탄 재처럼 검은색이 되었다고 한다.

 

까마귀의 자리를 빼앗은 올빼미는

본래 레스보스 섬의 공주였던 뉘티메네라고 한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유혹하여 몸을 섞은 탓에

그 벌로 올빼미가 되어 사람들의 눈이 있을 때나,

해빛이 비칠 때는 날지 않고.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밤에만 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