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의 오도송 모음 (제3부)

2022. 10. 5. 21:23선시 만행 한시 화두

28)청화(淸華)선사 (1924~2003) 오도송(悟道頌)

迷故三界城 미혹한 까닭에 삼계가 성이나

悟故十方空 깨달으니 시방이 공 하네

本來無東西 본래 동서가 본래 없나니

何處有南北 어느 곳에 남북이 있으리오

 

@1923년 전남 무안군 운남면에서 태어나 15세 되던 해

일본에 유학한 바 있고(중등과정), 광주사범을 졸업,

고향에서 망운중학교를 세워(1952년) 교육에 힘쓰면서

가산을 기울여 혜운사(무안 운남면 대박산)를 건립하였다.

1945년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되어

진해 해군훈련소에서 5개월간 훈련을 받던 중 해방을 맞이하였다.

집에서 여러 철학의 세계를 탐구하다 불교에 심취하여 공부하던 중

金陀대화상을 알게 되었다.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碧山堂 金陀대화상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금타대화상은 백양사 주지이며,

조계종 종정을 지낸 만암스님의 큰 제자이다.

그렇지만 修證의 법에서 두 분 사이에 엇갈리는 면이 있어

법을 잇는 師資(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청화선사는 금타대화상의 장좌불와와 일종식의 전통을 이어

초인적인 고행 정진을 이어갔다. 엄격한 持戒行과

초인적 정진, 반듯한 수행자로서의 모습은 선가의 귀감이 되었다.

그의 대중적인 교화 활동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어 미국에까지 이르렀다.

처음 곡성 태안사에 주석하며 본격적인 대중 교화 활동을 폈고,

1990년대에는 미국에 삼보사 · 금강선원 등을 건립하여

해외 포교에도 전력하였다. 선사의 임종게를 함께 올린다.

 

<임종게>

 

此世他世間 이 세상 저 세상

去來不相關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蒙恩大千界 은혜 입은 것이 대 천계만큼 큰데

報恩恨細澗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수행자의 영원한 사표로 일컬어지는

곡성 성륜사 조실 청화 스님은 2003년

곡성 성륜사 조선당에서 입적했다. 세수 80세, 법랍 57세

 

29)만암 종헌(曼庵 宗憲:1876~1957) 선사

 

寶刀飜遊刃 보배 칼을 마음대로 쓰고

明鏡無前後 밝은 거울은 앞뒤가 없도다

兩般一樣風 두 가지 몰아 한 바람이

吹到無根樹 뿌리 없는 나무에 불어 닿는다

 

@만암 종헌(曼庵宗憲·1876~1956)

종헌은 법명이며, 만암은 호이다.

11 살 때 백양사 취운 도진 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일생을 반농반선으로 사신 분이다. 만암스님은

1955년 8월 어느 날 문도들을 큰 방에 불러모아

"이제 사흘 후 옷을 벗어야겠다."라고 임종을 알리며

제자 석호(서옹 스님의 옛 법명)에게 전법게를 내리며 후사를 부탁했다.

백암산 위 한 사나운 범이

한밤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다물어 죽인다.

서늘하고 맑은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 울부짖으니

가을 하늘에 밝은 달빛은 서릿발처럼 차갑다.

 

"마지막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라는 말과 함께

가지고 있던 모든 물품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 만암스님은

사흘 뒤 자는 듯 눈을 감았다고 전한다.

 

 

30)서옹(西翁:1912~2003) 선사 오도송(悟道頌)

象王嚬呻獅子吼 상왕은 위엄 떨치고 사자는 울부짖는다

閃電光中辨邪正 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서 사와 정을 분별하도다

淸風凜凜拂乾坤 맑은 바람이 늠름하여 하늘과 땅을 떨치는데

倒騎白岳出重關 백악산을 거꾸로 타고 겹겹의 관문을 벗어나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승려.

중앙불교 전문학교 시절 출가하여

1935년 교토 임제대학에서 유학했으며,

1944년 귀국한 뒤 참선에 몰두했다.

1967년 확철대오 한 뒤 조실스님으로 수행승들을 가르쳤다.

1974년 제5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며

재임기간 동안 한국불교의 근대화에 힘썼다.

퇴임 후로는 후학양성에 힘썼다.

 

서옹스님의 속명은 이상순(李商純), 법명은 석호, 서옹은 호이다.

1932년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중앙불교전문학교 시절 전라남도 장성군 백양사에서

승려 만암에게 계(戒)를 받고 출가했다.

@<서옹 큰스님 오도송2>

상왕(象王:코끼리 왕)은 위엄 떨치고 사자는 울부짖는다

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 사와 정을 분별하도다

맑은 바람이 늠름하여 하늘과 땅을 떨치는데

백암산을 거꾸로 타고 겹겹의 관문을 벗어나도다.

 

<서옹 큰스님 오도송찬>

상왕은 위엄 떨치고 사자는 울부짖으니

만 산, 만 강물이 서쪽을 돌이켜 동쪽으로 향하고

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 사와 정을 분별하니

쓴 것은 뿌리까지 쓰고 단 것은 꼭지까지 달도다

맑은 바람이 늠름하여 하늘과 땅을 떨치니

곳곳마다 산호 열매 계수 열매 마구 쏟아지고

백암산을 거꾸로 타고 겹겹의 관문을 벗어나니

한바탕 춤과 노래 온 세상 끝없이 태평가에 취하구나.

 

<오도송3>

스스로 본 나가 오로지 참 나여서

생멸을 흥대로 삼라만상을 나투고

온 전체로 낱낱이 해와 달로 누리니

옛도 훗날도 지금처럼 우담발라 난발하는구나.

 

31)금오(金烏)선사 (1896~1968) 오도송(悟道頌)

透出十方昇(투출시방승) 시방세계를 철저히 꿰뚫으니

無無無亦無(무무무역무) 없음과 없음의 없음이 또한 없구나

個個只此兩(개개지차량) 낱낱이 모두 그러하기에

覓本亦無無(멱본역무무) 아무리 뿌리를 찾아보아도 역시 없고 없을 뿐이로다

 

@대한불교 조계종 최대의 덕숭(德崇) 문중

(불국사. 법주사, 금산사, 수덕사)의 큰스님으로

추앙되는 금오선사는 1896년 7월 13일 병영면 박동마을에서

동래정씨인 아버지 정용보씨와 어머니 조씨 사이에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태선. 법맥으로는 경허,

만공, 보월, 금오, 월산으로 이어지는

한국불교의 전통 법맥인 금오 문중으로

오늘날 고손 상좌에 이르기까지 800여 명의 제자가 불국사,

법주사. 금산사, 수덕사 등에서 정진하고 있다.

 

@보월 선사 대신 만공 선사에게 받은 전법게

德崇山脈下(덕숭산맥하) 今付無文印(금부무문인)

寶月下桂樹(보월하계수) 金烏徹天飛(금오철천비)

 

덕숭산맥 아래 지금에 무문인(無文印)을 부치노니

보배 달 비록 계수에서 졌으나

금 까마귀 하늘에 사무쳐 나르네.

 

만공스님은 전법 제자인 보월 선사가 마흔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자

보월 선사의 제자인 금오 스님에게 사법(嗣法)임을 증명하는

건당식을 봉행(奉行)했다. 이 속에는 만공 선사가

금오 스님에게 ‘무늬 없는 인을 부친다’라는 뜻은

‘비록 지금 세상에는 없지만 보월의 법을 대신 전한다’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금오 선사는

1968년 10월 열반을 앞두고

상좌인 월산(月山 )스님에게 전법게를 전했다.

 

 

32)전강영신(田岡 永信: 898~1975) 선사 오도송(悟道頌)

 

昨夜三更月滿樓 어젯밤 삼경에 달빛은 누각에 가득하더니

古家窓外蘆花秋 고가의 창밖엔 갈대꽃 만발한 가을이로구나

佛祖到此喪身命 부처와 조사도 여기서는 신명을 잃었는데

岩下流水過橋來 다리 아래 잔잔히 흐르는 물은 다겁을 지나오는구나

 

@전강선사(田岡禪師,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지은 오도송이다.

 

33)구산(九山)선사 (1910~1983) 오도송(悟道頌)

深入普賢毛孔裡 깊이 보현의 터럭 속에 들어가

促敗文殊大地閑 문수를 붙잡으니 대지가 한가롭구나

冬至陽生松自綠 동짓날에 소나무가 저절로 푸르르니

石人駕鶴過靑山 돌사람이 학을 타고 청산을 지나가네

 

@구산선사(九山禪師)는 1909년 12월 17일

전북 남원시 용정동 내척리에서

진주소씨 시조 휘 경(諱 慶)의 48세손 재형(在衡)씨와

모친 최씨(崔氏)와의 사이에서 삼남(三男)으로 출생.

어머니 꿈에 대성(大星)이 내촉(內燭)하였으며

속명(俗名)을 봉호(蜂鎬)라 하였다.

어린 시절 한학(漢學)을 수업, 성장하면서

인생무상을 통념(通念) 하더니 우연히 병을 얻어

신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진주에 사는 모거사(某居士)가

유왈(諭曰) 본래 몸이 청정한데 병이 어찌하여 왔는고? 하거늘

영원사(靈源寺)에 들어가 백일(百日)을 천수(千手)기도 하니

꿈에 보살(菩薩)이 마정(摩頂) 하며

고행난행(苦行難行)을 행지심성(行之心性)이라 함에

몸에 병의 고통이 깨끗이 낫더라.

1937년 12월 29세에 출가(出家)하여

조계산(曹溪山) 송광사(松廣寺) 삼일암(三日庵) 입산(入山)

효봉종장(曉峰宗匠)을 친견(親見), 은사로 삭발득도(削髮得度)하고

삼일선원(三日禪院)에서 수선안거(首先安居)하다.

 

선사(禪師)의 법명(法名)은 수연(秀蓮),

법호(法號)는 구산(九山), 석사자(石獅子)는 별호(別號)이시다.

 

1953년 통영 미륵산(彌勒山) 미래사(彌來寺)를 창건하시고

1953년 하안거후(夏安居后)에 상경하여

교단정화불사운동(敎團淨化佛事運動)에 참여하여

오백자의 대혈서(大血書) 결의문(決議文)을 쓰시었으며,

선사께서 활동하신 일부를 소개하면

1955년 초대 전남총무원장, 1956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감찰원장에 취임하여

미주지역을 순방하여 LA고려사, 불승사(佛乘寺),

미주(美洲) 가주(加州) 카멜에 대각사(大覺寺) 등을 개원하여

불교계에 혁혁한 공이 지대하여 신도들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저서로 구산집(九山集) 파라밀(波羅蜜)을

영문판(英文版)으로 발간, 해외에도 유포하였다.

 

구산선사께서는 일생 불휴불식(不休不息)하며

수행정진(修行精進)과 가람수호(伽藍守護)와

설법도생(說法度生)으로 복혜쌍수(福慧雙數) 하니

청백가풍(淸白家風)이 즉사칙리(卽事則理)라

대계청정(待戒淸淨)으로 승가상(僧家像)을 철저케 하고

대중공양(大衆供養)과 운역(運役)

그리고 조석예불(朝夕禮佛)과 인방선(人放禪)에 솔선수범하며

사장(師長)에게 효성근행(孝誠勤行) 하니

효상좌(孝上佐)일 수좌(首座)라 칭송(稱頌)하였다.

 

1983년 동안거시(冬安居時)에 미질(黴疾)을 보이더니

일일(一日) 문도(門徒)들에게 귀훈(貴訓) 하시되

갱가정진(更加精進)하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풍(禪風)에 누(累)가 되지 않게 하라.

서로 화합하고 방일(放逸)하지 말라 하시고 열반송(涅槃頌)으로

 

“온 산에 단풍이 봄의 꽃보다 붉으니

삼라만상이 큰 기틀을 온통 드러냈도다.

생(生)도 공(空)하고 사(死)도 공(空)하니

부처의 해인 삼매 중에 미소 지으며 가노라.” 하시고

태연한 모습으로 앉아서 46년 전 출가 수행했던

삼일암(三日庵) 미소실(微笑室)에서 입적했다.

 

34) 영파 성규(影波 聖奎) 1728~1812) 선사

 

七日關中亦有言(칠일관중역유언)

威音雷若震乾坤(위음뢰약진건곤)

欲聆無說傳千古(욕영무설전천고)

秋夜寒鐘掛寺門(추야한종괘사문)

 

7일 동안 관중에서 부처님의 법음소리 들었네,

위엄스러운 우렛소리 천지를 진동했다.

말없이 말한 천고의 진리를 알고 싶었는데,

가을밤 찬 종소리 절 문에 걸렸도다.

 

@영파 성규(影波 聖奎, 1728~1812)스님의 법명은 성규(聖奎),

법호는 영파로서 함월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이고

환성스님의 손자뻘 제자이다.

경남 합천군 해인사 인근 마을 출신이다.

영파스님의 자는 회은(晦隱)이고 성씨는 전(全) 씨로서

고려 옥산군(玉山君) 영령의 16대손이며 만기(萬紀)의 아들이다.

어머니 박씨는 꿈에 큰 별 하나가 품 안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고 잉태,

조선조 영조 4년(1728) 기이한 골격을 갖춘 아이를 낳는다.

 

어려서부터 슬기로움이 뛰어나 학문에 통달하고 글씨도 뛰어났다.

15세 무렵 출가를 결심, 4년이 지난 뒤 용천사로 찾아가

환응(喚應) 장로에게 간청, 머리를 깎고 계율을 받아 수행의 길로 나선다.

이후부터 스님은 <화엄경>에 대한 공부를 본격화,

30년 세월을 하루같이 공부에만 전념한다.

영파스님은 설파와 함월 두 스님으로부터 <화엄경>의 종지와

선교의 요령을 모두 터득한 뒤 함월스님의 의발을 전해 받고 나서

영조 30년(1754)이래 등단 설법하다가

순조 12년(1812) 생애를 마쳤다. 나이 85세, 승랍 66세였다.

 

35) 원오선사 (1694~1758)

 

오무관(吾無觀 : 아무것도 없는 것)

 

了知諸行皆如幻(요지제행개여환)

見法惟心心自閒(현법유심심자한)

無際性空智月滿(무제성공지월만)

無靜無作獨團團(무정무작독단단)

 

모든 것 허깨비임을 알고,

법을 보니 마음뿐이라 마음이 절로 한가하도다.

가없는 자성 허공에 지혜의 달빛 가득하네,

고요함도 움직임도 없이 홀로 둥글구나.

 

@스님의 법명은 원오(圓悟), 법호는 만화(萬花), 속명은 이(李)씨다.

전남 해남 출신으로 숙종 20년(1694)에

해남 대둔사 환성 지안선사에게 출가하여

영조 34년(1758)에 좌탈입망(坐脫立亡) 했다.

 

36)일연(一然: 1206~1289)선사

 

快適須臾 意已閑 (쾌적수유 의이한)

暗從愁裏 老蒼顔 (암종수리 노창안)

不須更待 黃粱熟 (불수갱대 황량숙)

方悟勞生 一夢間 (방오노생 일몽간)

 

즐거웠던 한때는 자취 없이 사라지고

시름에 젖은 몸이 덧없이 늙었구나

한 끼 밥 짓는 동안 기다린 듯 무엇하랴?

인생사 꿈결인 줄 내 이제 알겠노라.

 

@이 시는 오도송이 아닌 '조신의 꿈'에 부쳐 지은 일연선사의 시다.

 

출생 1206(희종 2)

사망 1289(충렬왕 15)

본명 김견명

고려 충렬왕 때 <삼국유사>를 편찬한 고려의 승려로

속성은 김씨, 이름은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

호는 무극(無極, 목암(睦庵). 목암(睦庵)이라 하며,

뒤에 일연(一然)이라 개명했다.

경주 장산군(章山郡 : 지금의 경산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지방 향리 출신인 언필(彦弼)이다.

 

어머니가 해가 방안에 들어와서

자신의 배를 비추는 꿈을 꾼 뒤에 잉태하였다 한다.

시호는 보각(普覺), 탑호는 정조(靜照)이며, 84세 입적했다.

1259년 대선사(大禪師)가 되었고,

1261년(원종 2) 원종의 명에 따라 강화도에 초청되어

선월사(禪月社)에 머물렀는데, 이때 지눌(知訥)의 법맥을 계승했다.

중앙정계와 관련을 맺은 후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충렬왕 3년 명에 따라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의 집필에 착수했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했다.

 

저서로는 『삼국유사』 5권, 『어록』 2권,

『계송잡저』 3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선문염송사원』 30권 등이 있고,

행적비(行蹟碑)가 운문사 동강(東岡)에 있고,

군위 인각사에 스님의 비각과 탑비가 세워져 있다.

 

@여섯가지 도둑에 대한 스님의 법어

 

세상에서 제일 고독한 도둑은

바로 자기 몸 안에 있는 여섯 가지 도둑일세.

 

눈 도둑은 보이는 것마다 가지려고 성화를 하지.

귀 도둑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네.

콧구멍 도둑은 좋은 냄새는 제가 맡으려고 하고

혓바닥 도둑은 온갖 거짓말에다 맛난 것만 먹으려 하지.

제일 큰 도둑은 훔치고 못된 짓 골라 하는 몸뚱이 도둑.

마지막 도둑은 생각 도둑. 이놈은 싫다. 저놈은 없애야 한다.

혼자 화내고 떠들고 난리를 치지.

그대들 복 받기를 바라거든 우선 이 여섯 가지 도둑부터 잡으시게나.

 

37)만암(曼庵: 1876~1956) 선사 오도송(悟道頌)

 

寶刀飜遊刃 보배 칼을 마음대로 쓰고

明鏡無前後 밝은 거울은 앞뒤가 없도다

兩般一樣風 두 가지 몰아 한 바람이

吹到無根樹 뿌리 없는 나무에 불어 닿는다

 

@1876년 음력 1월 17일 전북 고창군 고창면 중거리에서

여산(礪山)송씨의 의환(義煥)과 김해 김씨 사이의 4남으로 출생.

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1세에 어머니마저 여의자

1886년 백양사 취운도진(翠雲道珍)스님을 은사로 출가.

법호는 만암(曼庵), 법명은 종헌(宗憲).

환응 강백으로부터 전강을 받았으며,

석전 한영 스님 문하에서 경학을 공부했다.

 

1910년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에 예속하려 하자

한용운, 박한영과 함께 임제종을 설립했다.

1916년 백양사 주지가 되어서는 극락전 한 채만 남아 있을 정도로

퇴락한 백양사 도량을 현재의 규모로 일으켰다.

만안 스님은 불교 근현대사에서

‘교육’에 가장 힘을 쏟은 스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은 백양사 청류암에서 광성의숙(廣成義塾)을 열었고

심상학교를 세워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일반인에게 교육하는 데 힘썼다.

1928년에는 불교전수학교를 세워 초대 교장에 취임했다.

이 불교전수학교는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로 발전했다. 광복 이후에는

목포에 정광중학교와 정광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 공헌이 크다.

1954년 조계종 종정 취임.

1956년 세수 81세, 법랍 71년으로 백양사에서 열반하셨다.

@위 오도송에 후귀가 달린 한글본과 오도송 찬이 있어 함께 올려놓는다.

#<만암 노스님 오도송>

보배칼을 마음대로 쓰고

밝은 거울은 앞뒤가 없도다

두 가지 몰아 한 바람

뿌리 없는 나무에 불어 닿는다

 

내가 날 없는 칼을 잡아

노지(露地)의 흰 소를 잡아서

도소주(屠蘇酒: 설날의 곡차)와 함께 공양 올리니

어느 곳에 은혜와 원수가 있을꼬.

 

#<만암 노스님 오도송 찬>

 

보배칼을 마음대로 쓰니

전체가 붉고 전체가 희고

밝은 거울은 앞과 뒤가 없으니

만고에 홀로 온 세상 비추는구나.

 

두 가지 몰아 한 바람이니

가고 옴에 나머지가 없고

뿌리 없는 나무에 불어 닿으니

가지마다 해와 달이 마구 열리는구나.

 

내가 날 없는 칼을 잡으니

모래 속에 조개가 진주를 토하고

노지의 흰 소를 잡으니

삶과 죽음은 흰 구름 밖이라

 

도소주와 함께 공양 올리니

동서남북 언제나 풍년이고

어느 곳에 은혜와 원수가 있을꼬

온 세상이 끝없이 사뭇 춤과 노래구나.

 

<만암 큰스님 고불총림 법어송찬>

 

봄바람은 막힘 없으니

만년 옛 봄을 전하고

붉고 흰 꽃이 곳곳에 피어나니

한 달빛이 삼계를 꿰뚫어 끝없이 비추는구나

이 이치를 누가 알 것인가?

절룩바리 나귀가 눈먼 코끼리를 끄는구나!

이 도리를 안다면 도가 밝아 지리라니

뜨락에서 옛 부처가 아직 졸고 있구나.

 

 

38)인곡당 법장(仁谷堂 法長:1941~2005) 대종사

 

我有一鉢囊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無口亦無底 입도 없고 밑도 없다

受受而不濫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出出而不空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출생: 1941년 6월 15일, 충남 서산시

사망: 2005년 9월 11일 (향년 64세)

법장(法長, 본명 : 김계호, 1941년~ 2005년)스님은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1960년 수덕사 원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1994년 생명나눔실천회 이사장이 되었고,

2003년에는 제31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원장이 되었다.

2004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제7대 공동대표 의장을 지냈다.

2005년 9월 11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심장마비로 65세로 입적. 세수 64세 법랍 45세.

 

39)벽산당(碧山堂) 금타 대화상(金陀大和尙:1898~1948) 오도송悟道頌

 

하단릉첨시진실荷團稜尖是眞實

풍취우타비환경風吹雨打非幻境

서접비처생연화絮蝶飛處生蓮花

추단경면방금광錐端鏡面放金光

 

연잎 둥글고 뾰족한 모서리가 바로 진실이며

바람 불고 비가 뿌리는 일이 허망한 경계 아니로다.

버들 꽃 날리는 곳에 연꽃이 피고

송곳 끝과 거울 바닥에서 금빛이 빛나도다.

 

@벽산대화상께서는 서기 1898년 무술 윤삼월 29일

전북 고창군 무장에서 부친 김병룡씨와

모친 밀양 박씨의 장남으로 탄생하셨으니

본향은 김해요 속명은 영대(寧大)이며 자는 성일(性日)이라 하였다.

휘는 금타(金陀) 호는 벽산(碧山)

20세 이전에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송만암(宋曼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

26세 경 과학이나 수학 등 신학문(新學問)을 공부하고,

현대사회를 제도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잠깐 환속하였다가

30세 때 재입산. 1947년 정해 11월 17일에 구경 성취하시고

이듬해 1월 24일 정오경에 항년 51세로 반열반하셨다.

39세에 내장사 벽련암(碧蓮庵)에서

깨달음을 얻고 읊은 오도송이 걸려있다.

 

40)동산(東山: 1890~1965) 스님

 

畵來畵去幾多年(화래화거기다년)

筆頭落處活猫兒(필두낙처활묘아)

盡日窓前滿面睡(진일창전만면수)

夜來依舊捉老鼠(야래의구착노서)

 

그리고 그린 것이 몇 해던가

붓끝이 닿은 곳에 살아 있는 고양이로다

온종일 창 앞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예천처럼 늙은 쥐를 잡는다.

 

@ 성은 하씨(河氏). 법호는 동산(東山).

1890년 충북 단양 출생, 아버지는 성창(性昌)이며,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1912년 범어사에서 용성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범어사 강원 수료. 금강산 마하연 등에서 수십 안거 성만.

1927년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오도. 범어사 조실(1935년).

해인사 조실(1936년), 조계종정 역임.

1965년 3월 15일 범어사 금강계단 보살계 산림 주관.

1965년 3월 23일 범어사에서 세수 75세, 법랍 53년으로 열반.

 

<스님의 열반송>

元來未曾轉(원래미증전) 원래 일찍이 바꾼 적 없거니

豈有第二身(개유제이신) 어찌 두 번째 몸이 있겠는가?

三萬六千朝(삼만육천조) 삼만육천일

反覆只這漢(반복지저한) 매일 반복하는 것 다만 이놈뿐일세

 

41)청담(靑潭:1902~1971) 스님

上來佛祖鈍癡漢(상래불조둔치한)

安得了知慈邊事(안득료지자변사)

若人問我何所能(약인문아하소능)

路傍古塔傾西方(로방고탑경서방)

 

예로부터 불조는 어리석기 그지없으니

어찌 현학의 이치를 제대로 깨우쳤겠는가?

만약 나에게 능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길가 고탑이 서쪽으로 기울어졌다 하리.

 

@청담(靑潭, 1902년~ 1971년 )스님의 속명은 이순호(李淳浩).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진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송운사의 아키모토에게서 불도를 닦아 득도하였다.

이듬해 귀국하여 개운사 불교전문강원의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대한불교 조계종회의장, 1957년 해인사 주지,

1962년 도선사 주지, 1968년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지내면서

대한민국의 불교 정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71년 입적하였고 종단 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1971년 세수 70세, 법랍 45세로 입적

 

42)남산 정일(1932~2004)선사

極貧者喜歡帶 露的蘆葦叢(극빈자희환대로적위총)

극빈자는 이슬 맺힌 갈대숲이 좋아하니

渾然間一縷始光透過整個大地

(혼연간일루시광투과정개대지)

홀연히 한 가닥 시광이 온 대지를 투과한다.

萬年前事佛已涅槃 霧雨下着 霧雨下着

(만년전사불이열반 무하착 무하착)

만 년 전에 부처는 이미 열반에 들었으니

안개가 내리는구나! 안개가 내리는구나!

最後如告別時的傷痛(최후여고별시적상통)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슬픔같이

對前人未踏之 地掛念呼((대전인미답지지괘념호)

앞사람을 대하여 아니 가본 땅 괘념하랴?

到靜靜地泛看水波的(도정정지범간수파적)

고요한 곳에 잔물결이나 바라보며

小溪去洗一把瞼吧(소계거세일파검파)

작은 개울가에 가서 세수나 하여라

 

@泛看(범간): 들띄어 놓고 데면데면하게 봄

@吧瞼(파검): 눈까풀을 씻다. 세수하다.

 

@남산 정일 (南山正日, 1932~2004) 은

1956년에 조계사에서 득도 이후,

1963년에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 후

10여 년간 전강(田岡)스님 문하에서 수학.

1992년~2003년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역임했다.

 

43)벽암당 동일 벽암(1924~2005) 선사

佛祖心傳虛枷名(불조심전허가명)

衆生濟度懷柔事(중생불도회유사)

虛枷懷柔是甚麽(허가회유시심마)

無始無終茶飯事(무시무종다반사)

 

불조가 마음으로 전함은 허깨비요

중생제도는 어린아이 달래는 소리로다

허깨비와 아이 달래는 이것이 무엇인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차 마시고 밥 짓는 일이로다.

 

@벽암당 동일 대종사는 192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일본 관서공업전문대에서 공부하고

1946년 서울 호국사에서 적음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과 불국사 주지를 거쳐

선학원 이사장과 동국학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중앙종회 의장, 종정 직무대행, 원로의원 등을 역임하고

2005년 5월6일 신원사 벽수선원에서

세수 82세, 법랍 61세로 원적에 들었다.

 

44)동곡 일타(東谷日陀: 1928~1999)선사

頓忘一夜過(돈암일야과)

時空何所有(시공하소유)

開門花笑來(개문하소래)

光明滿天地(광명만천지)

 

문득 하룻밤을 잊고 지냈으니

시간과 공간이 어디에 있는가

문을 여니 꽃이 웃으며 다가오고

광명이 천지에 가득 넘치는구나

(1956년 태백산 도솔암에서 지은 오도송으로 알려져 있다)

 

@공주출생. 부 김봉수, 모 김상암 2남 2녀 중 3남.

속명 金思義. 법명 日陀,

법호 東谷, 三餘子, 堆雪. 세수 71, 법납 58년

 

<열반송>

一天白日 露眞心(일천백일로진심)

萬里淸風彈古琴(만리청풍탄고금)

生死涅槃會是夢(생사열반회시몽)

山高海闊不相侵(산고해활불상침)

 

하늘에 뜬 해가 참 마음 드러내니

만리 맑은 바람이 옛 금을 타는구나!

생사 열반 본래 꿈이거늘

산은 높고 바다는 넓어 서로 꺼리김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