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의 오도송 모음(제1부)
2022. 10. 3. 15:15ㆍ선시 만행 한시 화두
오도송(悟道頌)이란 옛 고승(高僧)들이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지은 시가(詩歌)를 의미한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한 이후 무수한 고승들이 나왔고,
그들이 깨달은 진리 또한 다양하게 전해 온다.
옛 고승들은 무엇을 깨달았고, 무엇을 남기려 했는가?
오도송 하나하나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
근대를 살다가 입적한 고승(高僧)들 위주로 나름대로 선별하여
편안한 시간에 반추해 가며 되새겨 볼 수 있도록
서너 편씩 나누어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홍도의 사진과 더불어 포스팅 한다.
1)만공스님 (1871~1946) <오도송>
공산리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
빈산이기는 고금 밖이요
흰 구름 맑은 바람 스스로 오가는데
무슨 일로 달마는 서천을 넘었는고
새벽에 닭 우니 밝은 해 솟는다
@理氣:성리학에서, 우주의 본체인 理와 그 현상인 氣
만공(滿空, 1871년 4월 26일 ~ 1946년 10월 20일) 스님은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속세의 성은 송씨로, 송만공으로도 부른다.
조선총독부의 불교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조선 불교를 지키려 하였다.
또한, 선불교를 크게 중흥시켜 현대 한국불교계에 큰 법맥을 형성하였다.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본명은 도암(道巖)이다.
법명은 월면(月面)이며 만공은 법호이다.
1884년(고종 20년) 경허(鏡虛, 성우 1849 ~ 1912)선사의 인도로
서산군 천장사(天藏寺)에서 태허(泰虛)를 은사로 출가하였고,
경허(鏡虛) 스님을 계사로 하여 사미십계(沙彌十戒)를 받고 득도하였다.
스님의 탑비는 아산 봉곡사와 예산 수덕사에 세워져 있다.
2)성우 경허(惺牛 鏡虛)선사 (1849~1912)
<오도송>
忽聞人語無鼻孔 (홀문인어무비공) 문득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들으매
旽覺三天示我家 (돈각삼천시아각) 온 우주가 나 자신임을 깨달았네
有月燕岩山下路 (유월연암산하로) 유월 "연암산" 아랫길
野人無事太平歌 (야인무사태평가) 하염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경허(鏡虛, 1849년 ~ 1912년)선사는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이다.
1849년 전주 자동리에서 아버지 송두옥(宋斗玉)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속명은 동욱(東旭)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3)성림당 월산 대종사(聖林堂月山 大宗師) (1913~1997)
<오도송>
忽覺本來事(홀각본래사) 참모습 깨닫고 보니
佛祖在何處(불조재하처) 부처와 조사 어디에 있는고
肚裏藏乾坤(두리장건곤) 몸속에 하늘과 땅 본래 감추어 있으니
轉身獅子吼(전신하자후) 몸을 뒤쳐 사자후를 하노라
不立(불립) 세우지 않고
不捨(불사) 버리지 않고
不休(불휴) 쉬지 않도다.
@1944년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월산 스님은
1913년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태어났다.
1948년 문경 봉암사에서 결사 수행을 시작했으며,
1950년대 금오 스님과 정화불사에 나섰다.
이후 법주사·불국사·금산사·대승사·불영사 등
제방 선원의 조실로 추대됐다. 1968년과 1978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으며, 1986년에는 원로회의 의장을 지냈다.
평생을 참선 정진하며 한국불교의 선맥을 중흥시킨 월산 스님은
1997년 세수 86세, 법납 55세로 불국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4)한암(漢岩)선사 (1876~1951)
<오도송>
着火廚中眼忽明 부엌에서 불붙이다 별안간 눈 밝으니
從玆古路隨緣淸 이로부터 옛길이 인연 따라 맑구나!
若人問我西來意 누가 나에게 서래의(西來意)를 묻는다면
岩下泉鳴不濕聲 바위 밑 샘물 흐르는 소리에 옷 젖는 일 없다 하리
村尨亂吠常疑客 삽살개 짖는 소리에 손님인가 의심하고
山鳥別鳴似嘲人 산새들 울음소리 나를 조롱하는 듯,
萬古光明心上月 만고에 빛나는 마음 달이
一朝掃盡世間風 하루아침에 세간의 바람 쓸어 버렸네.
@한암선사의 속명은 방중원(方重遠, 1876~1951)으로
한암(漢巖)은 법명이며, 본관은 온양이다.
흔히 방한암선사로 불리며, 박한영선사와
경허 성우선사와 함께 근세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승려로
한국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9세에 서당에서 공부했으며, 22세에 금강산 장안사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성주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성우의 설법을 들었고,
30세가 되던 1905년에는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의 관실이 되었다.
1910년에 맹산 우두암에서 수도했고, 개오의 경지에 들었다.
금강산 지장암, 서울의 봉은사를 돌다가
50세 때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한 번도 동구 밖을 나가지 않았다.
1951년 가벼운 병을 얻은 지 1주일 만에 76세로 입적했다.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신 뒤 가사 장삼을 정제하고
선상에 단정히 앉아 참선하는 듯이 숨을 거두었다.
5)백용성 진종 선사(龍城 辰鍾, 1864-1940)
金烏千秋月(금오천추월) 금오산 천년의 달이요
洛東萬理波(낙동만리파) 낙동강 만 리의 파도로다
漁丹何處去(어주하처거) 고기잡이 배는 어느 곳으로 갔는고
依舊宿蘆花(의구숙노화) 옛처럼 갈대꽃에 머무는구나.
8월 신라불교 초전법륜 성지(聖地)인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동 아도모례원 모례샘 근처에서
용맹 결사 정진 끝에 진실(眞實)의 지견(知見)이 열리어
보리도(菩提道)를 증오(證悟)한 오도(悟道)를 하시고
병술년 23세(서기 1886년) 때 낙동강을 건너시면서 지은 오도송이다.
백용성 진종대종사(백용성 진종대종사: 1864.5.8.~1940.2.20.)는
일제 강점기 때 3.1운동 민족대표자 중 불교 대표자 한용운과 더불어
2인 중 한 분으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백용성(白龍城), 법호는 용성(龍城), 법명은 진종(震鐘)
#기묘년 16세(서기 1879년) 의 견도송(見道頌)
용성대사께서는 오감의 미혹(迷惑)에서 벗어나 버린 경지에 이르러
견도하시고 이 경계에 이르러 을 읊으시니 이러하다.
五蘊山中尋牛客 온산인 몸 생각 뜻 가운데서 심우 불성을 찾는 나그네가
獨坐虛堂一輪孤 텅 빈 집에 둥근 달이 훤히 비치는데 홀로 앉았도다.
方圓長短誰是道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은 이것이 누구의 도이랴
一團火炎燒大天 일단 '이뭣고'의 불꽃이 대천 번뇌를 태우도다.
#갑신년 21세(서기 1884년)
용맹 결사 정진 끝에 정(情)에 사로잡히지 않고
뜻[意]에 얽매이지 아니하는 수도(修道)를 마치고
수도송(修道頌)을 읊으시니 이러하다.
排雲粇霧尋文殊(배운확무심문수 )
始到文殊廓然空(시도문수확연공)이로다
色色空空還復空(색색공공환부공)
空空色色重無盡(공공색색중무진)이로다
@糠(강: 겨 강, 번쇄할 강)
「번뇌의 먹구름 짙은 운무를 물리치고
문수를 찾아찾아가 이르러니 확연히 공이로다
색색공공(色色空空)이 다시 공(空)으로 돌아가고
공공색색(空空色色)이 거듭 다 함이 없도다」
6)원각 상월(圓覺上月) 조사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 오도송(悟道頌)
山色古今外(산색고금외) 산색은 고금을 벗어나 있고
水聲有無中(수성유무중) 물소리는 유무 가운데 있구나
一見破萬劫(일견파만겁) 일견하니 만겁이 무너지고
性空是佛母(성공시불모) 본성이 공하니 이것이 곧 불모구나
@원각 상월(圓覺上月, 1911~1974)는 한국불교 천태종 창건주.
1945년 5월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億兆蒼生救濟衆生救仁寺)’라는 이름으로
천태종의 본사인 구인사를 창건하였다. 열반송도 함께 올린다.
<열반송>
諸佛不出世 모든 부처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亦無有涅槃 또한 열반에 들지 않았네.
死生本空寂 죽는 것이 본래 없으니
盈虛一月輪 찼다가 빈 것이 한 바퀴 달이로세.
7) 혜암(惠庵, 1920~2001년)선사
<오도송>
語默動靜句 어묵동정의 글귀여,
箇中誰敢着 이 가운데 누가 감히 머물라고 하겠는고.
問我動靜離 동정 여읜 곳을 내게 묻는다면
即破器相從 곧 깨진 그릇은 맞추지 못한다 하리라.
불도(佛道)에 들어 초연히 살다가 간
근세 한국선문(韓國禪門)의 거봉(巨峰) 혜암선사는
덕숭총림(德崇叢林) 초대 방장(方丈)을 역임했다.
혜암스님 1985년 5월 19일 수덕사(修德寺) 염화실(拈花室)에서
세수(世壽) 1백1세, 법랍(法臘) 86세로 세연(世緣)을 거두고 열반에 들었다.
스님은 열반에 임해 마지막 가르침을 묻는 제자들에게
" 무상 무공 무비공(無相無空無非空 ;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대답으로
열반의 노래인 임종게(臨終偈)를 대신했다.
산중의 90년 수행 생활을 마무리 짓는,
지극히 확신에 찬 유훈(유훈)을 글자대로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면
대략 이런 뜻으로 풀이된다.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無相],
그렇다고 허망한 것도 아니고[無空]
허망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無非空]'
그리고 '이 이상 할 말이 없다'라는 말은,
자신의 견해로는 앞의 가르침이면 족하다는
자기 확신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혜암스님은 조선조 5백 년 역사의 막이 서서히 내려지던
1885년 12월 1일 황해도 백천군 해월면 해암리에서
최사홍(崔四弘)과 전주 이(李)씨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속명은 순천(順天).
11세 때인 1895년 부친상을 당해 이듬해 출가(出家)를 결행,
경기도 양주군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에서 삭발한 이래 줄곧 수행에 전념해왔다.
16세 때인 1900년 이보암(李保庵)스님을 은사로,
표금운(表錦雲)스님을 계사(戒師)로 득도하고,
27세 때인 1911년 서해담(徐海曇)스님을 계사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성월(性月)스님 회상(會上)에서 정진하며 화두(話頭)를 간택 받았다.
그 뒤 만공(滿空), 혜월(彗月), 용성(龍城)스님 등
당시 선지식들을 모시고 용맹정진,
근 6년의 운수행각(雲水行脚)과 좌선(坐禪)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8)퇴옹(退翁) 성철(性撤)스님 (1912~1993)
黃河西流崑崙頂 (황하서류곤륜정) 황하는 역류하며 곤륜산을 후려치니
日月無光大地沈 (일월무광대지침)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대지는 잠기네
遽然一笑回首立 (거연일소회수립) 넉넉히 웃으며 고개 돌리고 서 있나니
靑山依舊白雲重 (청산의구백운중) 청산은 옛날 그대로 흰 구름속에 있네.
@경남 산청 출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법어로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큰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게 한
정신적인 거인. 십 년을 장좌불와하고 4개국어를 독파하여
선교에 막힘이 없었고 깨달음의 경지를 한 층 높인 눈 밝은 선지식.
9)효봉 찬형(曉峰 燦亨)스님 (1888~1966)
海底燕巢鹿抱卵 (해저연소녹포란) 바다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火裡蛛室魚煎茶 (화리주실어전다) 물속 거미집엔 고기가 차를 달이네
此家消息誰能識 (차가소식수능식) 이 집안 소식을 뉘라 알리
白雲西飛月東走 (백운서비월동주) 흰구름 서쪽으로 들고 달은 동으로 가고 있네.
@효봉스님은 1888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출생.
속명 이찬형(李燦亨). 법명은 원명(元明). 법호는 효봉(曉峰).
1966년 10월 15일 세수 78세, 법랍 42세로 입적.
대한불교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과 해인사 가야총림의 방장을 역임하시었다.
1913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시고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로 임용되었다.
1923년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법관직을 버리고 3년 동안 전국을 방랑하였다.
1925년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출가하시고
1958년 조계종 종정 추대을 받고 역임하시다가
1966년 표충사에서 입적하셨다.
효봉스님께 문무관에서 1년 6개월 간화선 <無>자 화두를 들고
치열한 정진 끝에 깨닫고 지은 오도송이 이것이다.
10)원광(圓光) 경봉(鏡峰)스님 (1892~1982)
我是訪吾物物頭 (아시방오물물두)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目前卽現主人樓 (목전즉현주인루)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呵呵逢着無疑惑 (가가봉착무의혹) 하하, 이제 만나 의혹이 없으니
優鉢化光法界流 (우발화광법계유) 우담발화 꽃 빛이 온누리에 흐르네!
@우리나라 근·현대의 고승으로 추앙받는 선사로 .
"사바세계를 무대로 멋지게 살아라."라는 법어로
유명한 원광 경봉(圓光 鏡峰,1892~1982) 선사의 속성은 김씨,
밀양 출신으로 본관은 광산. 경봉은 당호(堂號)이다
경봉선사는 1982년 7월 17일 오후,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라는 임종계를 남기고
세수 91세, 법랍 75세로 열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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