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도 삼삼 뒤도 삼삼(前三三後三三)

2022. 11. 1. 22:37선시 만행 한시 화두

앞도 삼삼 뒤도 삼삼(前三三後三三)

 

 

무착(無著)이 오대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길을 잃어 곤경에 빠졌는데 마침 절이 눈에 띄어 거기서 잤다.

이 절은 문수보살이 신통력으로 만들어낸 것이었으나

무착은 그런 줄을 알 턱이 없었다.

이튿날 문수보살이 이렇게 물었다.

 

문수가 무착(無著) 물었다.

“요즘 어디에 있다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말법 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조금 받드는 정도입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가?”

“삼백 명 또는 오백 명 정도입니다.”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물었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수행하는지요?”

“범부와 성인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대중은 얼마나 되는지요?”

“앞도 삼삼(前三三) 뒤도 삼삼(後三三)이지”

(벽암록 제35칙)

 

일요일 가을 단풍걷이를 하는 셈으로 수락산을 찾았다.

수락산은 집에서 전철로 15~20분 정도 거리라 거동하기가 수월하여

언제나 가볍게 다녀올 수 있어 별도 준비 없이도 다니던 산이라

오늘도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늘 다니던 영원암 쪽이 아닌

매화정에서 정상을 거처 장암 석림사로 방향을 잡았다.

수락산은 단풍이 그리 아름다운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붉은 단풍나무가 늦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이 코스는 등산객이 그리 많이 다니는 코스가 아니다.

오늘은 나 홀로 산행이라 이 코스 중에서도

제일 한적한 길을 골라 올랐다.

인적이 드문 길이라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밝으며

홀로 가을 정취에 취해 어스렁어스렁 걷다가 보니

너럭바위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홀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숲속 솔가지 위에 내려앉는다.

 

너럭바위 앞은 천 길 낭떠러지요 영원암 쪽 산봉우리가

가지런히 이어져 시야에 들어오는데

숲속 솔가지 위에 날개를 접고

물끄러미 무언가 주시하는 까마귀를 보는 그 순간

홀연히 온 산천이 내 눈 안에 들어오고

머리는 멍멍해지면서 바보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늪에서

뒤이어 올라온 등산객들의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前三三 後三三>이라는 화두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파란 하늘이 매화정 처마 끝에 반쯤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