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2022. 3. 20. 19:49선시 만행 한시 화두

 

계절은 춘삼월이라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

대동강물도 녹는다는 우수(雨水)도 이미 지나고

겨울잠에서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驚蟄)도 한참 지났건만

우리네 삶은 여전히 겨울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에 얼어붙은 민초들의 삶을 해결해 줄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니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라님들은 자가격리만 떠들고,

기약 없는 코로나의 정점 타령만 읊어대고 있다.

하늘도 무심한지 어제는 눈까지 내렸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우리 동네 과일가게 하시는 아저씨,

봉고 행상 30여 년 만에 전세지만 겨우 자기 가게 하나 열었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삼 년간 불어 닥친 코로나 여파에

이제는 생계마저 위협을 받아 그나마 지탱하던 이 장사마저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한스러워하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산수유가 피고 남녘 아래 지역은 벚꽃 축제 소리가 들리는 데

우리네 민초들의 삶은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은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으로

전한(前漢) 원제(元帝) 건소(建昭) 원년(BC38)에 후궁으로 뽑힌

왕소군(王昭君)이 원제 경녕(竟寧) 원년(BC33)에

흉노의 호한야(呼韓邪)선우에게 시집을 가서

여인으로서 겪은 그간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唐)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虯)의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된 말이다.

 

 

 

- 동방규(東方) 〈소군원(昭君怨)〉 삼수(三首)~

 

漢道初全盛(한도초전성)

朝廷足武臣(조정족무신)

何須薄命妾(하수박명첩)

辛苦遠和親(신고원화친)

 

 

한(漢)나라 국운 처음에는 융성했으니

조정에는 무신도 넉넉했다네

어찌 꼭 박명한 여인이

괴로움을 겪으며 먼 곳까지 화친하러 가야 했던가?

 

 

掩涕辭丹鳳(엄체사단봉)

銜悲向白龍(함비향백룡)

禪又浪警喜(선우낭경희)

無復舊時容(무복구시용)

 

 

흐르는 눈물 가리고 단봉성을 떠나

슬픔을 삼키며 백룡대로 향하네

선우(單于)는 놀라 기뻐했으나

그 옛날의 그 얼굴은 아니었다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

 

@어둠의 장막이 짙게 앉은 늦은 시간

답답한 마음 식히려고 당현천 둘레길을 걸어 본다.

인적도 끊어진 당현천,

깜박거리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바위 위에 쪼그려 앉아 행여 먹이감이 있을까

강물을 응시하는 오리들이 보인다,

밝은 대낮에도 먹이를 구하지 못해 어두운 이 밤에

나들이 나온 것을 보니 낮 동안 몹시 굶주렸나 보다.

 

 

그 옆에 물끄러미 서서 긴 목을 뻗어

어두운 밤하늘을 응시하는 백로 한 마리.

어두운 이 밤에 둥지를 벗어나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출구 없는 터널은 없다지만

칠흑 같은 이 코로나의 터널의 끝은 어디인가?

별들도 숨어버린 춘삼월의 당현천 밤하늘은 적막하기 그지없는데

무심한 가로등 불빛만 물 위에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