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도비산 부석사( 제1부)
2022. 6. 27. 21:22ㆍ국내 명산과 사찰
서산 도비산(都飛山 또는 島飛山)) 부석사(浮石寺)는
영주 봉황산 부석사와 이설이 있지만 두 가람은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에 얽힌 창건 내력이나 창건 시기,
창건주가 유사한 점이 많은 사찰이다.
소속으로 본다면 도비산 부석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며,
영주 봉황산 부석사는 제16교구 고운사의 말사 소속이다.
필자가 이번 서산 도비산 부석사를 순례하게 된 주목적은
일전에 청양 운장암의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제986호)을 친견하면서
같은 시기, 같은 형태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있다는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이 금동관음보살상은 1330년(충혜왕 17)에
도비산 부석사에서 조성하여 봉안한 것인데,
고려 말에 왜구에게 약탈당하여 일본 관음사(觀音寺) 소장되어 있었는데
밀렵꾼에 의해 한국에 반입되어 몰래 들어왔다가
문화재관리국에 적발되어 현재
일본과 부석사간의 반환소송이 걸려 있는 불상이다.
(이번 서산 도비산 부석사 탐방은 2부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일주문
앞에는 도비산 부석사란 편액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삼일수심도량>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은 송암스님의 글씨다. 도량은 한자로는 <道場>이라 쓰고
<도량>이란 읽는데 여기서 <場>자의 土변 획을 반대로 표기해 놓았다.
이 금언은 <자경문(自警文)>의
「三日修心 千載寶 百年貪物 一朝塵」 이란 글에서 따온 것이다.
부석사 창건 내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5호로 지정된
서산 도비산(都飛山) 부석사(浮石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창건에는 여러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첫째는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의상이 이 절을 창건할 때에 도둑의 무리가
몇 번이나 달려들어 허물어버리자,
선묘(善妙)의 화신(化身)인 용(龍)이 크게 노하여
큰 바위를 공중에 띄워 빙글빙글 돌리면서
금시라도 떨어뜨릴 기세를 보였다. 도둑들은 혼비백산하였고,
절을 창건한 뒤 선묘의 호법(護法)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석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설화는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에 얽힌 설화이므로
의상의 창건 또한 신빙성이 없다.
현재 절 앞 10㎞ 지점의 바다에 부석섬이 있고
이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섬이 날았다는 뜻에서
도비산이라 한 것이 모두 이 설화와 관련된 것이다.
또 다른 설에는 고려 말의 충신 유금헌(柳琴軒)이
망국의 한을 품고 물러나 이곳에다 별당을 지어
독서삼매로써 소일하였는데, 그가 죽자 승려 적감(赤感)이
별당을 사찰로 변조하였고
사찰명도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 마치 뜬 것같이 보이므로
부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두 가지 창건설 중 후자가 다소 신빙성이 있다.
창건 이후 조선 초기에 무학(無學)대사가 중건하였고
근대에는 만공(滿空)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심검당(尋劍堂)과 요사채,
산신각, 설법전, 금종각, 안양루, 향적당이 있고
다실로 이용되고 있는 운거루(雲居樓) 등이 있으며
선원으로는 정진선원이 있고
최근에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
운거루(雲居樓)
도비산 부석사의 마스코트처럼 여겨지는 이 건물은
현재 다실(茶室)로 이용되고 있다.
금강문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조성되어 있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를 들고 항상 부처를 호위하는 야차신인데
부석사의 밀적금강은 도깨비방망이 같은 금강저를 들고 있다.
밀적이란 붓다의 비밀스러운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밀적금강)
(나라연금강)
나라연금강은 코끼리보다 100만 배나 힘이 세다는 야차신이다.
그러나 단순히 힘만 있는 신중(神衆)이 아니라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광이 있는데,
그것은 신성한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상징한다.
부석사의 나라연금강은 원광은 없고 손에 도끼를 들고 있다.
도끼에 용(龍)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은
금강역사는 비를 조절하는 용신과
힌두교의 우신(雨神)인 인드라(Indra)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금강역사에게 기원드린다고 한다.
보통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한다.
그의 자세로는 주먹을 쥐고 한쪽 팔을 들어 올리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은 모습이 대표적이다.
부석사의 금강역사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금강저와
도끼를 들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정진선원
금강문의 왼쪽 도로를 따라 경내 들어서는 입구에
석조 쌍 사자가 조성되어 있고
조금 위에 정진선원이 있다.
정진선원 입구는 달마상이 지키고 있다.
선원이라 일반인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종무소와 심금당
경내에 진입하면 심금당과 종무소가 한 건물로 되어 있고
그 옆에 극락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보관에 화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상인 것 같다.
즉심견성
심검당
부석사
(목룡장)
편액 목룡장(牧龍莊). 심검당(尋劒堂)은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6~1912)의 글씨이고,
부석사라는 편액은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1946) 스님의 글씨다.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2칸, 주포식 맞배지붕의 이 건물은
부석사의 본당인 극락전이다.
수미단에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다. 탱화로는
칠성탱, 신중탱이 걸려 있고, 지장 보살상을 따로 조성해 놓았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다.
극락전의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은 숙종15년(1689)에
숙종의 왕자(후에 경종)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원래는 용봉사라는 절에 있었는데
1905년 이곳 부석사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칠성탱
신중탱
범종
지장보살
산신각 가는 길
산신각은 언덕에 조성되어 있다. 전각 아래에 삼층석탑이 있다.
산신각에는 선묘각, 산신각, 용왕각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산신
용왕
선묘낭자
영주 부석사의 선묘각은 독립 전각인데
서산 부석사는 한 전각에 3개의 편액이 걸려 있고
선묘 낭자의 형상이 조금 색다르다.
영주 부석사의 선묘낭자 상
마애불 보러 가는 길
2014년 8월에 점안식을 가진 이 마애불은
아미타여래로 높이 4.5m, 폭 1.5m 규모이며,
자연 암반 위에 석공예 문화재기능보유자인 김대연 조각가 조성하였다.
마애아미타여래입상
종무소 건물의 뒤편 모습
~서산 도비산 부석사 제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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