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가 암자를 불사르다(婆子燒庵)

2021. 3. 12. 20:52선시 만행 한시 화두

 

 

쌍(雙)으로 거두고 쌍(雙)으로 놓으며 전체로 죽이고 전체로 살리니

세 번 손바닥으로 때리고 세 번 몽둥이로 침은 상(償)도 있고 벌(罰)도 있으며

한번 절하고 한번 우는 것은 나음도 없고 못함도 없도다.

오체(五體)를 땅에 던져 절함이여, 흰 뼈가 산처럼 이어져 있고

두 주먹이 허공을 휘두름이여 자줏빛이 하늘을 찌른다.

그러므로 설두가 말하였다.

「前五棒(전오봉)은 해가 비치고 하늘이 밝음이요,

後五棒(후오봉)은 구름이 일어 비가 내림이니

그대가 만약 바로 알면 다섯 번 몽둥이로 때려 주겠노라.」

 

관악산 연주암

옛날 어떤 노파가 암주(庵主)를 공양하였는데,

이십 년이 지나도록 한결같이 여자에게 밥을 보내어 시봉하게 하였다.

어느 날 여자를 시켜 암주를 끌어안고

「바로 이러할 때는 어떠합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그렇게 하자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를 의지하니 삼동(三冬)에 따듯한 기운이 없구나」

여자가 돌아가 노파에게 그대로 전하니, 노파가

「내가 이십 년 동안 속인(俗人)을 공양하였구나」

하고, 암주를 쫓아내고 암자를 불태워버렸다.

 

윤필암

왜 노파는 암주를 속인이라 칭하고 암자를 불태워버렸을까?

노파가 암자를 불사른 것이 상(償)인가 벌(罰)인가?

상(償)이라고 하면 암주를 저버리는 것이고,

벌(罰)이라고 하면 노파를 끌어 묻는 것이다.

여기에 超群正眼(초군정안)을 갖추어서 골수를 철저하게 보면

암주를 위하여 설욕할 뿐 아니라 노파와 더불어 경축하는 것이다.

 

위 이야기는 성철스님의 저(著) <본지풍광(本地風光)>에 나오는

파자소암(婆子燒庵)이란 공안의 내용이다.

문득 이 공안을 다시 보다

십우도의 일원상(一圓相)이 생각이 떠올라 횡설수설(橫說竪說)하여 본다.

 

보명선사의 십우도

십우도는 불성(佛性)을 찾아가는 수행의 과정을 소를 주제로 하여 그린 그림인데

달리 표현하자면 진심(眞心)의 식망(息妄)을 수행하는 과정을

10가지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 십우도는 곽암(廓庵) 선사가 도교의 팔우도(八牛圖)가

공(空)으로 끝나는 것이 무언가 허전하다 하여

불교적으로 2도(圖)를 추가하였다고 전한다.

그림을 보면 일원상 안에 소와 동자가 등장하는데

제8도(圖)에 가서 소와 동자가 함께 사라진 일원상(一圓相)만 그려져 있고

추가된 제9도 반본환원(返本還源)과

제10도(圖) 입전수수(入鄽垂手)에서는

자연경관과 화상과 동자가

다시 등장하는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 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

 

 

소와 동자가 함께 사라진 일원상은 곧 일체 경계가 사라진 것

곧 쌍차(雙遮)를 의미하는데 목우자(牧牛子) 보조국사 지눌의

<진심직설(眞心直說)>에 나오는 무심공부에서

<민심(泯心) 민경(泯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이 무슨(無心) 공부는 거울의 때가 지워지면

일체 사물을 밝히 비출 수 있는 것 곧 진심(眞心)이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체의 때가 지워진다는 말은 경계도

망심(妄心)도 모두 내려놓는다는 의미와도 상통하는 데

선가(禪家)의 방하착(放下著)과도 같은 의미가 된다.

제10도(圖)에서 다시 화상과 동자가 등장하는 것은

쌍차(雙遮)가 아닌 쌍조(雙照)을 의미하는 데,

쌍차(雙遮)가 모든 것(망심)을 버리는 것이라면

쌍조(雙照)는 모든 것을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둘이 아닌 하나 즉 天地與我同根(천지여아동근)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불이(不二)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체 경계를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체 경계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선사들이 방하착(放下著)에만 매몰하면 사공(死空)에 떨어지기 쉬우니

수행자가 선(禪)을 닦는 진면목은 사공(死空)이 아닌

활공(活空)이 되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와도 같은 경계인 것이다.

성속(聖俗)이 분리되지 않고, 구(垢)와 정(淨)이 분리되지 않고

원융한 경지를 이루는 것이 쌍조(雙照)의 경지라면

일원상에 다시 입전수수(入鄽垂手)의 그림으로 돌아간 것은

쌍조(雙照)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쌍차(雙遮) 쌍조(雙照)를 함께 말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위의 파자소암의 공안에서

노파가 기대한 것은 쌍차(雙遮)가 아닌 쌍조(雙照)가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사족(蛇足)을 붙여 본다.

 

승가사의 포대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