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국녕사 대불 보러 가는 길
2022. 2. 8. 23:02ㆍ국내 명산과 사찰
설연휴이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멀리 가지 못하고
가까운 북한산 국녕사 대불(大佛)을 보러 집을 나셨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국녕사를 찾아 가는 날은 묘하게도
꼭 추운 겨울철에 찾게 된다. 북한산성 계곡길을 따라 국녕사를 오르니
계곡은 얼어붙어 있고 음지(陰地) 쪽에는 흰눈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옛적에 못보던 절이 하나 보인다.
안내판을 보니 서암사(西巖寺)다.
북한산은 1711년(숙종 37) 남한산성을 본따서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축성하였는데
산성의 방어를 위해 성안에 13개의 승영사찰(僧營寺刹)을 건립하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서암사인 것이다.
참고 북한산의 승영사찰을 보면,
당시 성 안에는 중흥사(重興寺) 하나만 있었는데
숙종 38년부터 영조 10년 사이에 중흥사를 크게 중창하고
용암사(龍巖寺), 보국사(輔國寺), 보광사(普光寺), 부왕사(扶旺寺),
서암사(西巖寺), 원각사(元覺寺), 국녕사(國寧寺), 상운사(祥雲寺),
태고사(太古寺), 진국사(鎭國寺)등 10개의 사찰과
봉성암(奉聖庵), 원효암(元曉庵)등 2개의 암자가 창건되어
모두 13개소 된 것인데 대부분 갑오경장 이후에 폐사되고
일부가 복원된 것인데 서암사도 그 중 하나인 모양이다.
얼어 붙은 계곡을 따라 겨울 풍경을 즐기며 시름시름 걷다보니
그만 국녕사 가는 길을 벗어나 중성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리턴하여 국녕사로 올랐다.
국녕사 입구에 다달으니 산속에서 개한마리가 물끄러니 처다 본다.
이 추운 겨울날에 무엇을 찾으려고 왔는냐는 듯
짖지도 않고 물끄러미 나를 처다만 본다.
묘한 생각이 불현 듯 스쳐간다.
미물(微物)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인가?
아둔한 중생이라 머릿속에 찬 바람만 인다.
국녕사는 조선시대 숙종 때 북한산성 내에 건립한
13개의 승영사찰(僧營寺刹) 중 하나로
국령사(國靈寺), 국녕사(國寧寺)라고도 한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축성한 후
산성의 방어를 위해 성 안에 건립한 승영사찰(僧營寺刹)인 국녕사는
1713년(숙종 39) 청철(淸徹)과 철선(徹禪)이 창건한
86칸 규모의 절로 당시 국령사는 절과 인접한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현 가사당암문)을 중심으로 하여
북한산의 의상봉(義湘峰)과 용출봉(龍出峰) 사이에 있는
산성의 성곽을 방비하는 것이 주 목적이였다.
조선후기의 승영사찰은 19세기 말 갑오개혁 때
승군의 해산과 함께 대부분 폐사되었는데,
국녕사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폐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경준(申景濬)이 쓴 『가람고(伽藍攷)』에
국녕사가 소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까지는 절이 존립하였음이 분명하다.
갑오개혁 이후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폐사된 국녕사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중창되었다고 하나,
1991년에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고 말았다.
이것을 능인선원(能仁禪院)이 1998년 10월부터 중창하기 시작하여
2004년에 중창 불사를 마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녕사에는 24m 크기의 국녕대불(國寧大佛)이 있고
그 주위에는 만불(萬佛)을 모신 만불전(萬佛殿)이 에워싸고 있다.
이와 함께 대웅전, 산신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산 국녕사는 능인선원 소속의 분원이다.
국녕사 대불
대불의 봉안된 바닥은 대리석이라 상당히 미끄러웠다.
대불 입구는 아예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말과 함께 줄까지 처 놓았다.
만불전은 생략하고 멀리서 합장만 했다.
높이 24m인 이 대불은 보살이 아닌 부처가 합장인을 하고 있는
독특한 대불(大佛)인데 이를 환희불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부처가 합장을 한 이유를 안내서에는
「환희불을 모신 이유는 바라보는 즉시
만중생들에게 합장하는 마음을 일깨우게 하고
모두를 부처로 대하는 합장불의 염원을
이 세상에 떨처 보이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했다.
合掌은 좌우의 손바닥에 열손가락을 合하여
내마음의 專一함을 表하는 敬禮法인데
<觀音義疏上>에서는
「손은 본래 둘인 것을 지금 合하여 하나로 하는 것은 敢히 散亂하고
虛誕하지 않음을 表 하는 것. 오로지 一心이 되고
一心에 相當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敬을 表 한다.」고 했다.
참고로 합장인과 비슷한 비로자나불의 수인을 비교해 보면
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은
理와 智, 중생과 부처를 상징하는데
오른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왼손은 중생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의미한다.
보살의 경우는 판교출토 청동비로자나불과 함께 출토된 지장보살 2분도
합장인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예외적인 것으로 보인다.
지장보살이 합장을 하고 있는 형상은 아미타불의 협시로 봉안될 때이다.
보살의 경우는 이해가 가지만 부처가 합장인을 한 것은
분명 독특한 것으로 사료된다.
좌로부터 염초봉, 백운대, 만장대, 우측은 노적봉
국녕사 전각을 둘러보기에 앞서 의상봉으로 향했다.
국녕사 전각을 둘러본다. 참배객도 있어
코로나 여파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법당 참배는 포기했다.
범종각
대웅전
삼성각
산신각
내려오면서 둘러 본 범용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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