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향의 향수를 느껴보는 아산 외암마을

2021. 11. 12. 19:22명승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가을은 정지용의 시 <향수>가 더 살갑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저물어 가는 신축년 가을의 끝자락, 냉랭한 회색의 도시를 떠나

옛 돌담길을 길으며 세월의 뒤안길에 밀어두었던

옛 고향의 향수에 하루쯤은 젖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민속 마을은 어디를 가나 돌담길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산 외암마을은 충청지방 고유 격식을 갖춘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 정원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특히 돌담길이 눈길이 끄는 민속 마을이다.

 

아산 외암마을은 아산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설화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국가 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된 아산 외암마을은

조선 선조 때부터 예안이씨가 정착하면서 예안이씨 집성촌이 되었고,

그 후 예안이씨 후손들이 번창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양반 촌의 면모를 갖추게 된 마을이다.

외암마을이라 불리게 된 것은 성리학의 대학자인

외암 이간(巍巖 李柬: 1677~1737)) 선생이

이 마을에 살면서 더욱 널리 알려져

그의 호인 외암(隈庵)에서 따온 것으로 전하여진다.

 

또 다른 명칭 유래로는 외암마을 서쪽에 있는

송악면 소재지 인근에 조선 초기부터 시흥(時興)이라는 역(驛)이 있었다.

이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외양간이 외암마을에 있었다고 하여

예부터 ‘오양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외암’이라는 이름은 바로 오양골의 ‘오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암마을은 입구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개천으로 안과 밖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개천의 다리를 건넘으로써 마을로 들어가므로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아직 마을 밖에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개천은 마을의 경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요소다.

 

대부분의 전통 마을에는 다리를 건너기 전 효자,

효부의 정려각이 있기 마련인데 외암마을에는 안동 권씨의 정려각이 있다.

권 씨는 예안이씨 이용덕에게 13세 때 시집왔는데

불행하게도 다음 해에 남편이 요절했다.

청상과부가 된 권 씨는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면서

가사를 이끌다 86세에 사망했는데, 이것이 알려져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자 1978년에 정려각을 세운 것이다.

장승과 솟대도 세워져 있는데 마을 입구를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

마을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주는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돌담은 외암마을의 특징으로, 마을 내 모든 가옥은 돌로 담장을 둘렀다.

지질 조건상 마을 지표면에 수많은 괴석(塊石)이 형성되어 있는데,

담장에 사용된 돌은 마을 현지에서 채취된 것으로 총연장은 약 6㎞이다.

또한,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돌을 걷어내어 논밭의 축대를 쌓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