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수덕사 (제1부) 부도전과 이응로화백의 불화

2021. 6. 27. 19:30국내 명산과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本寺)인 수덕사는

우리나라 8대 총림(叢林) 중 하나로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덕숭산(德崇山)에 있는 사찰이다.

사기(寺記)에 따르면 백제 말 숭제(崇濟)가 창건하고,

제30대 왕 무왕(武王) 때 혜현(惠顯)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강설하여 이름이 높았으며,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 때 나옹(懶翁:혜근)이 중수하였다.

일설에는 599년(신라 진평왕 21년)에 지명(智命)이 창건하고

원효(元曉)가 중수하였다고도 전한다. 조선 시대 제26대 왕

고종(高宗) 2년(1865)에 만공(滿空)이 중창한 후로

선종(禪宗) 유일의 근본 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문화재로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15호인 봉정사 극락전과 국보 제18호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꼽힌다.

이 밖에 대웅전 양옆에 승려들의 수도장인 백련당(白蓮堂)과

청련당(靑蓮堂)이 있고, 앞에는 조인정사(祖印精舍)와 3층 석탑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나라 최고의 사면석불인

예전 화전리 사면석불을 모본으로 조성된 석조사면불과,

1,020계단을 따라 미륵불입상(彌勒佛立像)·만공탑·금선대(金仙臺)·

진영각(眞影閣) 등이 있고, 그 위에 만공이 참선도량으로

세운 정혜사(定慧寺)가 있다. 부속 암자로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見性庵)과 비구니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했던 환희대(歡喜臺)가 있으며,

선수암(善修庵)·극락암 등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특히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선 정진하는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설립되어 있다.

 

수덕사는 일주문이 3개다. 첫 번째 문은 산문으로 <덕숭산수덕사>라는 편액이,

두 번째 문은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이고,

세 번째 문은 <덕숭산수덕사>와 <해동제일선원>이란

두 개의 편액이 걸린 일주문이다.

이 세 번째 일주문이 수덕사의 주 일주문으로

금강문과 사천왕문과 황하정루와 일직선을 이루고

대웅전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참고로 총림은 선원 · 승가대학 ·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종합수행도량을 가리키는 말로, 현재 전국의 8대 총림이 있다.

 

① 해인총림 해인사 ② 조계총림 송광사

③ 영축총림 통도사 ④ 덕숭총림 수덕사

⑤ 고불총림 백양사 ⑥ 팔공총림 동화사

⑦ 쌍계총림 쌍계사 ⑧ 금정총림 범어사

 

 

일주문은 도톰하게 깎은 돌기둥 두 개에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지붕의 처마에는 붉은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다.

수덕사 일주문은 1960년 신축되어

1998년 법장스님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는데

일주문에는 덕숭산수덕사'란 현판과

전서로 된 '동방제일선원'이란 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글은 소전 손재영 선생의 작품이라고 한다.

소전(素荃) 손재영(孫在馨:1902~1981) 선생은

추사 김정희가 19세기 근대서화계를 대표한 예술가였다면

소전은 20세기 현대 서화계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칭송되는 인물이다.

그는 또한 1944년 일본 소장가로부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찾아온 분으로 알려져 있다.

@부도전

수덕사의 부도전에는 수덕사의 1.2.3대 대종사 승탑과

미완성의 승탑 부재들이 모여 있다.

승탑(僧塔)은 고승의 사리(舍利)나 유골을 안치한 석조물이다.

탑이 주로 사찰 안에 있지만, 승탑은 사찰 밖에 있다.

승탑의 구조는 탑의 구조와 같이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고,

형태는 탑형. 구형(球形), 석종형(石鐘形) 등이지만

수덕사 3분의 대종사 승탑은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다.

3분 대종사의 승탑은 좌로부터 초대 방장 혜암현문, 2대 방장 벽초경선,

3대 방장 원담진성 대종사 승탑이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초대 방장: 惠庵 玄門(혜암현문: 1884~1985)대종사의 오도송

 

語默動靜句 個中唯敢着

問我動靜離 卽破器相從

어묵동정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나에게 묻는다면 침묵도 움직임도 여의고

한 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저절로 맞추지 못하리라 하리라

 

2대 방장: 碧超鏡禪(벽초경선: 1899~1986)대종사

3대 방장: 圓潭 眞性(원담진성:1926~2008) 대종사

 

 

 

 

부도전을 나와 경내로 진입하는 숲속에 조성된 조형물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 三日脩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

 

@금강문 안은 아금강, 훔금강 2분의 금강역사를 봉안했다.

사천왕이 동서남북 방위에서 가람을 수호하는 신이라면

금강역사는 대체로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구실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된 사적(事迹)을 알고

5백 야차신(夜叉神)을 거느리면서 천불(千佛)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탱화로는 8대금강이 묘사되지만 사찰에서는 두 분의 금강역사를

일주문 옆이나 금강문에 봉안한다.

 

보통 사찰 문의 왼쪽에는 밀적금강(密迹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서 있다.

이 중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고 한다.

나라연금강(아금강)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보통 밀적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나라연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밀적금강(훔금강)

흔히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이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의를 입지 않고 옷을 허리에 걸친 채 주먹을 쥐어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을 취하기도 한다.

 

@사천왕문

 

1999년에 건립한 수덕사 사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을 봉안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찰의 천왕문을 보면 경주 불국사,

팔공산 은해사, 순천 송광사와 같이

서방 광목천왕은 탑과 창을, 남방 증장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동방 지국천왕은 칼을,

북방 다문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는 데 반하여,

조계사, 하동 쌍계사, 김천 직지사나 대구 동화사, 선운사,

중국 보타산 혜제사 등의 사천왕은 동방 지국천왕은 비파를,

남방 증장천왕은 칼을, 서방 광목천왕은 여의주와 용을,

북방 다문천왕은 보탑과 당(幢)을 들고 있다.

앞의 형태는 주로 조선 시대에, 뒤의 형태는 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인데

수덕사의 천왕상은 선운사의 유형과 같이하고 있다.

 

 

 

생령좌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조선 시대 이전에는 주로 동물을 밟고 있는 데

반해 조선 시대에는 민간인의 형태 또는 전형적인 악귀의 모습을 취한다.

양쪽 발밑에 모두 8구의 악귀를 밟고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밟지 않고 있는 예도 있다.

수덕사의 생령좌는 천왕상과는 달리 조선 시대의 유형을 취하고 있다.

 

@칠층석탑

충청문화재자료 제181호로 1930년에 조성되었다.

이 칠층석탑은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천장사(天藏寺)의

7층 석탑(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2호)을 모본(模本)으로

만공스님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천장사는 633년 백제의 담화선사[운화선사]가

수도하기 위하여 창건된 사찰로 이 절에서

경허(鏡虛:1849~1912) 스님과 그의 제자였던 만공(滿空:1871~1946)스님 이

함께 머물러 수행하던 곳으로, 만공스님은 이곳에서 도를 깨쳤다 전한다

@포대화상

2003년에 조성되었다.

(포대화상에 대한 것은 본방 <대자유인 포대화상> 참조)

 

@고암 이응로 선생사적지

건립 시대: 일제강점기

문화재 지정: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103호

면적: 1,504.15㎡

 

충청남도 기념물 제103호.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 1904-1989)는

홍성 출신으로 필묵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시도와

시대정신에 투철한 작품세계로, 국내는 물론 프랑스와 유럽 화단에

큰 영향을 미친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정신세계를 접목 승화시킨

근현대 미술사에서 선구자적 예술가이다.

수덕여관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초가집 여관으로,

이응로화백이 1944년 사들여 6·25전쟁 당시 피난처로도 사용하였으며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수덕사 위쪽에서부터 내려온 좁은 개울물이 집 앞으로 흘러 지나가고

개울 건너편에 여관을 배치하였다.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ㄷ’자 초가가

감싸고 있는 여관은 일제강점기 때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여관만 아니라면 소담하면서 궁색하지 않은 전형적인 농가 모습이라 하겠다.

 

여관 전면에는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두었는데

이 문을 중심으로 좌우 입면이 다르다.

한쪽은 방 앞쪽으로 바닥이 높은 베란다를 설치하였고,

반대쪽은 베란다 없이 유리 창문을 달아두었다.

이 정면 모습이 농가와 달리 보이게 하는 이유이다.

수덕여관 앞 오른쪽 옆에는 1969년 작곡가 윤이상을 비롯한

예술인, 유학생들이 서독에서 유학할 당시에 비롯된 동백림사건으로

1967년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2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 나와 요양하며

삼라만상의 영고성쇠를 문자적 추상으로 표현한 작품인 암각화가 있다.

이 작품은 덕숭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수덕사의 장엄함과 여승의 청아함,

수덕여관의 초가지붕, 노송, 그리고 그 앞의 계곡과 함께 어우러져

그 멋을 더하고 있다.

수덕여관과 우물, 암각화를 포함한 일대 1,504.15㎡가 1

996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근대사의 한 장면을 기록해 주고 있다.

@수덕사 선(禪)미술관의 여러 작품 중  

고암 이응로화백이 그렸다는

불화(佛畫)가 눈길을 끌어 담아 보았다.

 

아미타삼존불

유희좌를 한 지장보살과 협시(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관음도
관음도
아미타여래7존도
아미타살존불
종이로 만들었다는 동자상
소그림

@황하정루

대웅전을 보호하고 사세를 안정시키는 전위누각으로

'황'은 부처님의 정신을 '하'는 큰 강이 흐르듯 정진한다는 의미가 있다.

지하에는 박물관인 근역성보관이 있고 1층은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

2층은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지종찰수덕사', '덕숭총림',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황하정루> 현판은 원담(圓潭) 진성(眞性) 스님이 쓴 글씨라 하며,

황하정루에 있는 근역성보관은 불자들의 정성과

일본 최초의 사원인 비조사의 지원으로 1997년 완공하여

1999년 개관하였는데 근역이란 백제불교의 원류지인

덕숭총림 수덕사가 우리나라의 꽃인 무궁화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전통불교운동을 주창하신 경허, 만공 양대 선사의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붙인 것이라고 한다.

 

@법고각(法鼓閣) 편액은 원담 진성 스님의 作이다.

법고각에는 운판, 목어, 법고가 조성되어 있다.

법고를 받치고 있는 좌대가 용의 형상으로 특이하다.

범종은 따로 지은 범종각 안에 있다.

운판
목어

 

 

범종각
범종의 비천상

 

~예산 수덕사 제2부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