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만공탑(滿空塔)
2021. 6. 19. 15:35ㆍ국내 명산과 사찰
덕숭산 수덕사의 만공탑(滿空塔)은
경허(鏡虛:1849~1912)스님의 법맥을 이은
만공(滿空: 1871~1946)스님의 승탑(僧塔: 부도)이다.
만공스님은 1871년(고종 8년) 전라도 태안군 군내면 상일리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송신통(宋神通)이며 어머니는 김 씨였다.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본명은 송도암(宋道巖)이다.
법명은 월면(月面)이고 만공(滿空)은 법호이다. 따라서 월면 스님으로도 불렀다.
덕숭산에 전월사를 짓고 지내다가 1946년 10월 20일
나이 75세, 법랍 62세로 입적했다. 열반에 드신 후 덕숭산에서 다비하여
이듬해인 1947년에 정혜사 아래에 승탑이 세웠졌다. 스님의 진영(眞影)은
경허 스님의 진영과 함께 수덕사 금선대에 봉안되었다.
승탑(僧塔)은 고승의 사리(舍利)나 유골을 안치한 석조물이다.
탑이 주로 사찰 안에 있는 반면, 승탑은 사찰 밖에 있다.
승탑의 구조는 탑의 구조와 같이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천태산 영국사의 구형승탑(충북 유형문화제 제185호)에서와 같이
종(鐘)을 닯은 석종형이나 둥근 원반형의 구형(球形)으로 변화된 것도 많이 있다.
그러나 머릿돌(상륜부)을 올려놓은 것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만공탑은 구형(球形)이지만 머릿돌이 없는 독특한 구형승탑이다.
만공탑(滿空塔)은 만공 스님(滿空)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47년 세운 부도탑이다.
만공탑은 높이 3.1m, 폭 2.41m이다.
육각형 지대석(址臺石) 위에 원형 굄돌을 놓고,
굄돌 위에 세 개의 다각형 기둥을 세운 다음
각 기둥 사이로 세 개의 직사각형 검은색 오석(烏石)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보름달처럼 둥그런 조형물인 구체(球體)를 올려놓았다.
탑 정면 오석에는 한글로 ‘만공탑’이라고 새겼다.
왼편 오석에는 <世界一花(세계일화)>, <百艸是佛母(백초시불모)>과
<千思不如一行(천사불여일행)> 그리고 그 중간에 작은 글씨로
<三菩提者是甚麽(삼보리자시심마)
갈쌀보리, 봄쌀보리 륙모보리니라>라는 글이 암각되어 있다.
오른편 오석에는 만공의 간단한 행적을 적은 글과
그가 남긴 법훈(法訓)이 암각되어 있다.
만공탑은 충남문화재자료 181호
국가 등록문화재 473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 주위에 두른 육각의 돌난간은 후대에 만공탑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크고 적은 열두 모서리 기단은 육진(六塵), 육식(六識)과 12 인연(因緣)을 상징하고,
원반을 받치고 있는 3개의 석주는 3면이지만 위는 6면이다.
이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과 6바라밀(波羅密)을 상징하고,
세 개의 석주가 받치고 있는 보름달 같은 구체(球體)는
일진법계 평등 진여의 본각(本覺)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만월(滿月)은 온 대지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요, 희망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공탑(滿空塔)은 가운데 만월을 상징하는 둥근달을 두고
따로 머릿돌을 올려놓지 않은 모양이다.
만공탑은 전통적 승탑 형식을 탈피한 현대적인 기념탑으로,
불교 교리와 스님이 추구한 사상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 있어
근ㆍ현대 사찰 조형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각 부재의 구성 요소들이 안정감 있는 비례와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점 등도 눈에 띈다.
@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
어리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을 모르고 있어
그래서 나와 너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다투고 빼앗고 죽이고 있다.
하지만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라.
흙이 있어야 풀이 있고 풀이 있어야 짐승이 있고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는 법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어야 남편이 있고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어야 부모가 있는 법
남편이 편해야 아내가 편하고 아내가 편해야 남편이 편한 법
남편과 아내도 한 송이 꽃이요 이웃과 이웃도 한 송이 꽃이다.
나라와 나라도 한 송이 꽃이거늘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라는
이 생각을 바로 지니면 세상은 편한 것이요
세상은 한 송이 꽃이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하면
세상은 늘 시비하고 다투고 피 흘리고
빼앗고 죽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니라.
世界一花의 참뜻을 펴려면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참새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심지어 저 미웠던 원수들마저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요
다른 교를 믿는 사람들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니
그리하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
~만공선사(滿空禪師)~
@ 만공(滿空)스님 법훈(法訓)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다는 뜻은 나를 찾아 얻는데 있는니라
佛法은 理論이나 思量으로 아는 도리가 아니니라
虛空이 가장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物心이라면 宇宙의 總稱인 줄 알지만은 宇宙의 正體는 따로 있느니라
나의 法門을 못 듣는 것이 나의 臨終偈니라.
@百草是佛母(백초시불모)
百艸란 들판에서 자라는 온갖 잡초를 의미한다. 이는 곧 삼라만상을 의미한다.
백초는 또한 민초(民草)라고 하니 이는 뭇 중생을 의미한다.
<백초시불모>는 백초가 바로 불모(佛母)라는 것이다.
佛母(불모)는 3가지 의미로 쓰이는 용어이지만,
여기서는 반야(般若)를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도리는 <處處佛 處處道場>이요,
<天地與我同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佛母에 대한 세 가지 의미는 다음과 같다.
⓵ 법의 진리에 계합하는 지혜. 곧 반야(般若), 이 최상의 지혜를 얻은 것이 불타인 즉,
반야는 부처님들의 어머니란 뜻으로 불모라 함.
⓶ 석존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 혹은 부처님의 이모인 대애도(大愛道)를 일컫는 말.
⓷ 모든 부처님이 기류(機類)에 응하여 여러 가지 형체를 나타내는 덕을 말함.
또 이것을 1존(尊)으로 하여 불모존(佛母尊)이라고 하니
불안불모(佛眼佛母)ㆍ준제불모(准提佛母)ㆍ공작불모(孔雀佛母) 등이 그것이다.
보통으로 불모라고 할 때는 흔히 불안불모를 일컬는다.
@2012년 4월 10일 조계사에서 중앙종무기관 교역직 스님을 비롯해
종무원과 조계사 신도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단 출범 50주년 기념 법회를 봉행한 적이 있다.
이 법회에서 월탄스님이 이런 법어를 설하셨는데
“천지여아동근이요 만물여아동체로다. 행심동체대비하면 사바변화정토로다.
(天地與我同根이요 萬物與我同體로다. 行心同體大悲하면 娑婆變化淨土로다.)
이를 풀이하면:
하늘과 땅은 나와 더불어 한뿌리 생명이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뚱이로다.
그러므로 동체대비심으로 살 것 같으면, 사바세계가 변하여 극락정토가 되리라)”
여기에 설하진 <백초시불모>는 이 법어와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고 여겨진다.
@三菩提者是甚麽(삼보리자시심마)
갈쌀보리, 봄쌀보리 륙모보리니라
(세 가지 보리 이것이 무엇인가? 가을에 수확한 쌀보리,
봄에 수확한 쌀보리 이 모두가 육모 보리다.)
재배종 보리는 보리알이 배열된 열 수에 따라서
2조(두줄보리)와 6조(여섯 줄 보리)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열의 배열이 불규칙한 부제조종이 있다.
6조종은 가로 틈의 작은 이삭이 이삭 줄기에 배열된 형태와
밀도에 따라 이삭의 횡단면에서의 모습이 구별되어
육모 보리와 네모보리로 나누기도 한다.
또한, 씨방 벽에서 배출되는 끈끈한 물질에 의하여
성숙 후에는 껍질이 종실에 밀착하여 분리되지 않는 겉보리(皮麥:피맥)와
성숙 후 껍질이 종실에서 쉽게 분리되는 쌀보리(裸麥: 나맥)로 구별한다.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와 작물인 보리(麥)를 동음이의(同音異義)을 활용하여
<心佛如衆生>의 도리를 나타내는 법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千思不如一行(천사불여일행)
천 번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몸으로 한번 행함만 못한다는 의미다.
우리말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과 같이
행(行)하지 않은 생각은 공허한 것이 된다.
갈증이 나면 물을 마셔야지 마음으로 호수와 우물을 생각한다고 해서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불교의 최고 실천행은 무엇일까?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보살의 실천행은 육바라밀(六波羅密)이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 이상경인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실천수행법인
이 육바라밀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의미한다.
<만공 스님 일화>
어느 날 비구니 일엽(一葉-1896~1971)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물었다.
일엽 : "스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 스님께서 금강산 마하연에 계실 때도 그랬고,
이 수덕사도 그렇고, 스님이 계시기 전에는 끼니 걱정하기 바빴는데,
스님께서 머물기만 하시면 시주가 줄을 이어 양식 걱정을 안 하게 되니,
스님께서는 대체 전생에 무슨 복을 그리도 많이 지으셨습니까?"
만공 : "전생에 내가 고생고생해가면서 저축을 좀 해 두었더니
그게 지금 돌아오는 거야."
일엽 : "무슨 저축을 어떻게 하셨는데요?"
만공 스님은 잠시 허공을 쳐다보시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만공 : "전생에 나는 여자였느니라. 그것도 복도 지지리도 없는 여자였다.
부모복도, 형제간 복도 없는 박복한 여자였어.
그래서 전라도 전주 땅에서 기생 노릇을 했었지."
일엽 : "예에? 기생을요?"
만공 : "그때 내가 육보시(肉布施)를 좀 했지.
그리고 버는 돈이 있으면 굶는 사람들 양식을 사다 주고,
전주 봉서사에 계신 스님들 양식도 대어드리고….
그때 그 양식들이 저축되어서 이제 조금씩 돌아오는 거야."
만공 스님은 조금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전생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주는데,
스님은 3생 전에 전주에서 향란(香蘭)이라는 기생 노릇을 했는데,
그때 바로 진묵 대사(震默大師-1562~1633)가
전주 봉서사(鳳棲寺)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생에는 장수(將帥)였고, 바로 전생에는 소(牛)였다고 말했다.
일엽 : "아니 스님께서 바로 전생에 소였다는 말씀입니까?"
만공 : "그래. 전생의 빚을 갚느라고 소로 태어났었는데, 소 노릇을 하면서도
제대로 빚을 못 갚아 그 남은 빚을 갚으려고 중이 되었다."
일엽 : "소로 사셨으면 빚을 다 갚으셨을 텐데 무슨 빚이 또 남으셨다는 말씀입니까?"
만공 : "이 녀석아! 소도 소 나름이지. 여물만 배터지게 먹고 일할 때 게으름을 피우면 소 노릇을 하면서도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빚을 늘리는 거야.
그러니 너희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옛 스님들은 이렇게 경계하셨느니라.
출가승이라고 해서 신도들이 갖다 주는 시주물을 받아먹고
중노릇을 게을리해서 불도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이는 신도들의 재물을 도적질한 것과 같은 것이니,
마땅히 죽어서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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