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굴이 있는 용인 용덕사
2020. 12. 11. 21:45ㆍ국내 명산과 사찰
용인 용덕사(龍德寺)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성륜산(聖輪山)에 있는 통일신라의 문성왕[839~857년 재위] 원년에
승려 염거선사(廉居禪師 ?~844 )가 창건한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절 뒤편 산 언덕에 극락보전이 있는데 극락보전을 오르는 곳에
바위에 암굴(暗窟)이 있어 일명 ‘굴암절’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용덕사라는 사명(寺名)은 전설에 의하면
이 암굴에 1,000년이 다 되어 여의주를 얻은 용이
아버지의 병을 고치고자 치성을 드렸던 처녀에게
여의주를 주어 아버지의 병을 고치게 하였다는 설화에서
용덕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용인 용덕사는 신라시대 문성왕 때에 염거화상(廉居和尙)이 창건하고,
신라 후기에 도선국사가 중창한 것으로 전하고 있지만,
조선의 기록에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절에 전하는 유물들로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에는 상당히 번성했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용덕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대웅보전, 미륵전, 종각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앞에 종무소 겸 요사채가 있고 대웅전 뒤편에 사리탑이 있다.
대웅보전 뒤 편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희망의 종이 걸려 있고,
관음루와 용굴이 있고 왼쪽으로는 삼성각이 있고
제일 높은 곳에 극락보전이 있다.
용덕사는 1998년에 주지로 부임한 성효(性曉) 스님의 원력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조성했다는 3층석탑 1기와
석조여래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1호) 이 있고,
고려시대 조성된 나한상이 있다. 또 이 곳의 산세와 자리에서
솟아나는 지기(地氣)를 누르기 위해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철인(鐵人) 3위가 있다. 석탑은 종무소 앞 마당에 있고,
석조여래입상은 나한상과 함께 미륵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철인은 원래 암굴에 3위가 있었는 데
현재 수원용주사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보관되어 있다.
@일주문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북방 다문천왕,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동방 지국천왕
@미륵전
전면과 측면이 각 1칸으로 겹처마로 된 맞배지붕인 이 전각 안에는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한상과 경
기도 문화재자료 제111호인 용인 용덕사석조여래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본방 용덕사 석조여래입상 참조)
@대웅보전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다포식 팔작지붕 형태의 목조건물인 대웅보전은
2005년 중창된 것으로 용덕사의 본당이 된다.
법당 안은 중앙에 독특한 형태의 수미단(須彌壇)을 세우고
그 위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로 한 석가삼존상을 봉안하고,
석가삼존상 뒤로 새로 후불탱화(後佛幀畵)를 조성하였다.
대웅전 내부에는 110구의 나한상과 신중탱화, 동종 등이 있다.
대웅전 바깥 뒤쪽으로는 대웅전 건립과 함께 이루어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오층석탑이 있다.
1990년에 본래의 사찰이 자리하였던 산 아래에 대웅전을 지으면서
위채와 아래채로 전각이 나누어져 있다.
대중의 대부분은 대웅보전이 있는 아래채에서 기거하고 있다.
@극락보전
대웅보전 뒤쪽으로, 2001년에 정비된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극락전에 이른다.
극락보전은 현재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주포식 팔작지붕을 한 목조건물이다.
대웅보전이 짓기 전에는 극락보전이 용덕사의 주법당이었다고 한다.
원래 극락보전에는 57기의 나한상과 석가모니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는데
대웅보전을 새로 조성하면서 모두 대웅보전으로 옮기고
현재 극락보전 법당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모시고
양 옆으로 나한상 대신 여래상으로 조성되어 있다.
극락보전에 봉안되었던 57위의 나한상은
모두 화강암 석재로서 백분을 입혔으며,
고려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삼성각
극락보전 오르는 오른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주포식팔작지붕으로 된 목조 건물로
전각 안에는 산신, 칠성, 독성을 모시고 있다.
@용덕사 용굴(암굴)
암굴(용굴)입구에는 관음루가 있고, 암벽 앞에 보살상 1구가 있다.
암굴 안에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관음보살좌상 1기가 조성되어 있다.
보살상은 화염무늬의 거신광으로 두광과 신광을 모두 갖추고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왼손은 항마촉지인 형태를 하고 있고,
왼쪽 다리를 올린 반가부좌를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용덕사의 안내판에 의하면 「암굴 입구에는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는 보살좌상 1구가 있다. 머리와 오른손이 결손되었지만 반가사유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정교한 작품으로서, 가슴에 드리워진 영락(瓔珞)이 생동감 넘치는 귀중한 작품이다.」고 설명 되어 있다.
용굴에 봉안된 관음보살은 길상좌의 좌세로 왼손에 감로병을 쥐고 있고
그 아래 두 마리의 용이 혀로서 약함처럼 생긴 보함을 받치고 있다.
<용덕사 용굴에 얽힌 전설>
용덕사 용굴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이 내용은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된 것으로
1978년에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사는
장재우(학생, 18)의 할머니가 구연한 것을 채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굴암절이라고 불리는 용덕사 뒤로는 하늘을 향해 구멍이 뚫린 굴이 있고
이 굴 양 옆으로 샘이 흐른다. 모두들 용굴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옛날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인간세계로 쫓겨난 용 하나가
이곳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백 일 동안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수도를 하여야
다시 승천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옥황상제의 말대로 수도에 전념하여 백 일을 채운 다음 승천하려 하였다.
하늘에서는 벽력이 떨어지고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시끄러운 소리가 진동하여 마을 사람들은 무서워서
감히 밖에 나오지 못하였다. 이때 용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마을 사람 한 명이 나무를 하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땅바닥에 몸을 엎드리고 떨고 있었다.
용굴에서 막 용이 승천하려는 순간,
나무하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들고 용을 바라다보고 넋을 잃었다.
그러자 갑자기 용은 하늘로 올라가던 도중
괴음을 지르며 땅 위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용이 승천할 때 인간이 엿보아서
부정을 타 백일기도가 허사가 되고 만 것이다.
용이 용굴에서 하늘로 오르느라 용굴 위가 뚫어졌다고 하며,
용이 승천할 때 실수하여 한쪽 눈을 다쳐서 피를 흘렸는데,
용굴 밑으로 흐르고 있는 양쪽 샘 가운데 하나는
그 당시 흘린 피 때문인지 지금도 흙탕물처럼 뿌옇게 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이 용굴을 타면 탄 횟수만큼 생명이 연장된다고 하며,
옆으로 뻗은 굴은 아이들이 타고,
위로 곧장 뻗은 굴은 어른들이 타는 것이라 하여 구별하고 있다.
한편 용굴 양쪽으로 흐르는 샘물은 백 일 동안 용이 흘리던 눈물이라고 하는데,
이 샘물에는 여러 가지 영험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각자의 소원을 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전설은 설명하는 대상에 따라 자연 전설과 인물 전설로 나눌 수 있다.
「용덕사의 용굴」은 자연 전설 중 혈굴(穴窟)과 샘에 관한 전설이다.
또한 동물 중에서는 용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민속 조사에서 발견되는 ‘이무기’ 등은 뱀이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진 용이 되려는 뱀이고,
경상도 일대의 ‘꽝철이’는 하늘을 나는 능력까지 가진, 용이 채 못 된 뱀이다.
설화에서 용은 몇 가지 성격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지존자로서의 성격, 둘째는 물을 지배하는 자로서의 성격,
셋째는 예시자로서의 성격, 넷째는 인간적인 성격이다.
「용덕사의 용굴」에 나타나는 용은 그외의 성격으로,
바로 천상에서 죄를 짓고 인간세계에서 수도를 하여
다시 승천하기를 기다리는 수도자의 성격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금기 모티프가 더해져,
결국 금기를 깨서 승천을 하지 못하는 용의 이야기다.
용굴과 샘은 그 증거물인 셈이다.
@삼층석탑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는 이 3층석탑은
절에서 약 100m 정도 아래쪽에 있었는데,
병란을 겪으면서 도굴되고 파괴되었던 것을 뒤에 조합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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