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호거산 운문사 (제2부)

2020. 11. 24. 20:35국내 명산과 사찰

구름 나그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태어남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오.

 

바람 따라 왔다가

바람 따라 가는

구름 같은 인생

 

사대(四大)가 모이니 생(生)이요

사대(四大)가 흩어지니 사(死)라.

오온(五蘊)이 어디 주인 있던가요.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인생

 

인생 길다 하나

억겁의 세월 속에

찰나의 순간인데

 

하루가 길다고

하루가 짧다고

 

흐리다가 개이고

개였다가 흐리는

희비애락(喜悲哀樂)의 쳇바퀴

 

왜 그리 사느냐고 묻지 말게나.

한 세상 살다 가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소.

 

알면서도 그리 살다 가고

몰라도 그리 살다 간다오.

 

그래서 중생이라 한다오.

구름 나그네라 한다오.

 

 

대웅보전(大雄寶殿)

전면 7칸, 측면 5칸, 다포식 팔작지붕인 대웅보전은

1994년 건립되었으며, 대중 스님들이 조석 예불을 모시는 주법당이다.

 

 

상단에는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 불인 석가모니불,

미래 불인 미륵불이라는 삼세불(三世佛)과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등 사대(四大) 보살을 사이사이에 모셨다.

순천 송광사 대웅보전에도 같은 불상을 모셨는데

다만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둔 것과 차이가 난다.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측에는 53 선지식 탱화를 모셨다.

상단 뒤편에는 오백나한도와 관세음보살 보문품 변상도를 모셨으며,

2001년 상단의 좌우에 윤장대를 설치하고 경전을 봉안했다.

 

영산회상도

 

신중탱

 

 

 

관음보살상이다. 애기를 안고 있는 이런 관음보살을 별도로 애자모관음보살이라고도 부른다.

 

보물 제193호 청도 운문사 금당 앞 석등 (淸道 雲門寺 金堂 앞 石燈)

금당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의 높이 2.58m로

1963년 1월 21일 문화재 지정 보물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시대인 591년(진평왕 13)에 금당 옆 황금탑을 밝히기 위해 세웠다.

한국 석등의 기본 형태인 8각 석등으로, 바닥돌만 사각형이고

그 위의 부재는 모두 8각형을 이루고 있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하대석과 지대석(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8잎을 새긴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인 간주석(가운데기둥)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으며,

옥개석(위받침돌)에는 면마다 연꽃이 새겨져 있다.

그 위로 2단의 받침을 두어 화사석을 바치고 있는데,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면에 화창을 내었다.

지붕돌의 처마는 직선으로 두껍게 표현했으며,

꼭대기에는 보주(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다.

우아한 조각 수법과 균형 잡힌 모습에서 통일신라 시대 석등임을 알 수 있다.

 

응진전과 조영각

응진전(應眞殿)

이 건물은 한 건물에 응진전과 조영당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응진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이며,

옆의 조영당은 정면 2칸으로

창건주 원광 국사를 비롯하여 여러 대덕 승려들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셨다.

중앙에 현재불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 협시로 과거불인 정광여래와 미래불인 미륵불을 봉안하고

좌우에 나한상들을 배치하였다.

운문사 응진전에 모신 석가모니삼존불상은

경주 기림사의 응진전에 모신 불상과 흡사하다.

동호(사진출처: 문화재청)

보물 제208호 청도 운문사 동호 (淸道 雲門寺 銅壺)

조선 시대: 고려 문종 21년(1067) 이전

이 항아리는 전체가 검은 색조를 띠고 있으며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감로준(甘露樽)이라는 이름이 전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사찰의 불교 용기였다고 추측된다.

높이 55㎝, 구경의 지름 19.5㎝, 몸 지름 31㎝로

뚜껑 모서리 부분은 둥글게 표현하였고

위로 6장의 연꽃잎과 십자형으로 된 불꽃 모양의

화려한 손잡이가 위로 돌출되어 달려있다.

어깨는 넓고 밑에 굽이 달린 항아리로

몸체의 좌우에는 손잡이 구실을 하는 굵은 고리가 달려있다.

높이 33.5cm의 몸체 위로 납작한 뚜껑이 덮이고

중간에 특이한 뉴(鈕)가 장식된 점이 주목된다.

특히 뚜껑 손잡이의 불꽃 모양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에 걸쳐 만든,

스님의 사리를 모시는 부도의 머리 장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하여 어떠한 연관성이 짐작된다.

몸체의 어깨 부분에 제작 시기와 관련된 글이 위로 새겨져 있는데,

고려 문종 21년(1067)에 수리하였다고 기록을 통해

제작연대는 이보다 앞선 신라 말이나 고려 초 경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