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비래암과 보물 제496호 구운리석등

2020. 10. 29. 20:33명승지

 

 

비래암(飛來岩:비래바위)이라 하면

붉은 비단에 쌓인 커다란 바위가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비단을 벗기니 4분의 여래가 부조되어 있었다는 전설을 지닌

문경 대승사의 사면석불이나,

도교의 팔선 중 철괴리라는 신선이 송나라 때 만복(萬福)이란 석공이

다리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돌을 옮기는 데 도와주기 위해

도술로 부채를 사용하여 바람을 일으켜 바위들을 강으로 옮겼는데

그중 바위 하나가 너무 커서 내려놓을 곳이 없어

황산에 내려놓았다는 전설을 지닌 중국 황산의 비래석 등이 떠오른 데

화천에도 비래암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호기심이나 찾아 나섰다.

 

 

화천 비래암은 오지(奧地)에다

초행길이라 네비가 일러주는 주소를 따라가다 보니

화천 산약초마을이었다.

다행히 산약초마을의 직원으로부터

구운리 만산동 쪽으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고 나서야

돌아 나와 겨우 비래암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산약초마을을 벗어나니 바로 구운리의 만산동 이정표가 있었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가니 길은 외길인데

숲 사이로 비래암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비래암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포장도로는 끝나고

비포장 자갈길로 이어졌다.

화천 비래암은 오지의 산인 만산 등산의 들머리로

등산로 이정표와 정자가 하나 있었다.

 

화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는

비래암(飛來岩: 비래바위)의 비래(飛來)라는 말은

하늘에서 날아왔다는 의미다.

비래바위는 해발 650m의 화천 만산동 계곡의 정상부에 위치한

높이는 약 100m, 폭(幅)은 약 500m의 규모로

마치 병풍처럼 둘러차 있어 병풍바위라고도 불리는 모양이다.

주변 산중에 혼자 올연히 솟아 있고,

규모와 형상 위치 등에서 특이한 경관을 형성하여

이 지역의 랜드마크로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천문화원 기록 중에는 이 바위가 비녀처럼 생겼다 하여

비녀바위라 불렀다는 유례가 있어

비녀바위가 비래바위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지만,

비래바위라는 명명된 것은 금강산에서 바위가 날라와

이곳에 앉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고 통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비래암은 화천군 상서면의 구운리(九雲里)에 있다.

구운리라는 마을 이름은 아홉 겹의 구름에

겹겹이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의미다.

전설에 의하면 신선들이 풍광을 즐기려 이곳에 내려오면

구름이 겹겹이 산을 가리고,

큰 지네가 나타나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선녀들이 이곳 만산동 계곡으로 내려와

놀다가 하늘로 올라갈 때 떨어뜨리고 간 비녀가 비래암이 되었다고 한다.

 

 

 

 

화천의 비래바위는 광물의 조직이 치밀하고 견고한 석영반암인데

약 1억 년 전에 지하 100~350km 깊이에서

화강암 마그마가 분화화면서

원래 있던 변성 퇴적암류 암석 틈을 따라 들어가 굳어진 것이다.

이후 주변의 퇴적 암류는 침식되어 떨어져 나가고 석영반암만 남게 된 것이다.

 

 

 

 

 

화천의 비래암은 문경의 사면석불이나 황산의 비래석과는 달리

병풍 형태를 취하고 있다.

황산의 비래석

 

무이산 선장암

 

대승사 사면석불

 

올려다 본 대승사 사면석불

내가 본 최고의 병풍바위는 쇄포암(灑布岩)이라 불리는

중국 무이산 선장암인데

이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참 매혹적인 바위임은 확실하다.

혹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테이블마운틴이 세계 최고라고 말하지만

가보지 못해서…. 글쎄

 

@화천 구운리 석등 보물 제496호

 

화천 비래암 가는 길에 우연히

<보물 제496호 구운리석등> 이정표를 발견하고 찾아 나섰다.

이번 화천 기행에서는 화천에 이런 보물급 문화재가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에

사전 조사도 찾아가는 길도 준비하지 못했다.

주소도 몰라 네비를 이용할 수도 없었지만,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비래암 가는 길이라

혹시 다른 이정표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기대감으로 찾아 나셨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참 독특한 석등이라

아쉬움이 남아 훗날을 기약하며 먼저 문화재청 자료를 옮겨 놓는다.

 

 

『보물 제496호로 지정된 화천 구운리석등은

계성리 마을에 서 있는 고려 시대의 석등이다.

이 마을에는 계성사(啓星寺)의 옛터가 있으며,

절터에는 쓰러진 석탑 일부와 종 모양의 부도 등이 흩어져 있다.

이 석등은 일본 강점기에 절터에서 약 200m 밑으로 강제로 옮겨진 것으로

정확한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로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 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신라 시대에는 8각,

고려 시대에는 4각인 일반적인 것에서 벗어나

독특하게 6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래 받침돌은 거의 묻혀 있어 윗부분만 보이며,

가운데 받침돌은 원통형의 기둥에 띠를 두른 것으로,

띠를 이루는 부분에 각종 무늬를 새겨 놓았다.

원통형의 기둥은 고려 시대 석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그 모양이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했던 장구 모양을 닮아 있어 흥미롭다.

화사석은 특히 주목되는 부분으로, 6개의 돌을 세워 6각을 이루게 하였다.

각각의 돌은 좌우를 반타원형으로 깎아낸 것으로,

옆 돌과 맞추어져 6개의 타원형 창이 만들어졌다.

지붕돌은 각 귀퉁이 선이 뚜렷하고 추녀 위로는

꽃 조각이 작게 돌출되어 있어 멋스럽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를 놓았는데,

지나치게 커서 아래를 누르고 있는 듯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6각형 석등은

북한지역에 2기를 포함하여 모두 4기가 남아 있는데,

이 석등도 그중의 하나다.

높은 기둥 위에 놓여 있어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균형감이 흐르고 있으며,

건립연대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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