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남사예담촌

2020. 9. 22. 18:01명승지

 

산청 겁외사를 나와 내원사 가는 길에 남사예담촌이 있어 잠시 둘러 보았다.

도로변에 바로 붙어 있어 주차하기도 어려움이 없었고,

이른 시간대라 그런지, 코로나 때문에 그런지 한산했다.

지리산 천왕봉의 정기가 스민 천혜의 승지에 조성된

옛 담장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는 산청 남사예담촌은

한국에서 가자 아름다운 농촌 전통테마마을 제1호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남사예담촌의 안내서는

「남사예담촌은 고색창연한 담쟁이 넝쿨과 토담,

수백 년 전통의 고가와 향기 그윽한 매화나무,

사대부가의 예절과 기상을 상징하는 부부회화나무(선비나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즐기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체험 휴양마을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타향살이가 길면 옛고향에 대한 향수가 더 깊어지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피폐해지는 인성은 편리함보다는

옛 전통에 대한 목마름이 더해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잿빛 시멘트와 차가운 대리석 더미에 묻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짬을 내어 전통한옥 마을을 찾게 되는 것은

아마도 메말라 가는 우리의 순수한 감성을 이를 통해 순화시키고자는 함이 아닐까.

 

사람들이 전통마을을 찾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고즈넉한 담장 너머 정감 있고, 고풍스러운

우리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있고,

내면적으로는 담장 너머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어찌 이런 이유뿐이겠는가?

 

지리산 초입에 자리 잡은 남사예담촌은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경상도의 대표적인 전통한옥마을이다.

경남 하면 산청 남사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옛날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던 이 마을은 양반 마을로

또한 전통한옥마을로 유명하다.

가는 길이 촉박하여 서둘러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둘러 보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내에게는 긴 추억으로 남았다.

 

 

 

 

 

 

 

 

 

 

 

 

 

@이제개국공신교서비(李濟開國功臣敎書碑)는 승탑비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수부(螭首部)는 쌍용에 구름무늬가 부조되어 있고

귀부(龜趺)는 거북이 형상을 취하고 있다.

비신(碑身)에는 1392년(태조 1) 이성계(李成桂)가

개국 일등공신 이제(李濟)에 내린 공신녹훈교서(功臣錄勳敎書)인

이제 개국공신교서(李濟 開國功臣敎書) 전문이 부조되어 있다.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국보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원본은 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정공신(正功臣)에게는 교서와 녹권(錄券)을 주고,

원종공신(原從功臣)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개국공신교서는 국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지만,

녹권은 공신도감(功臣都監)이 국왕의 명령에 따라 발급해 주는 증서였다.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1392년(태조 1)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 일등공신 이제(李濟, ?~1398)에게 내린 공신 교서이다.

이제는 태조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따님 경순궁주(慶順宮主)와 혼인한 뒤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을 개국하는 데

큰 역할을 해서 개국공신 1등에 기록된 인물이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교서는 국왕이 직접 신하에게 내리는 문서로서,

공신도감(功臣都監)이 국왕의 명에 의해 발급한 녹권(錄券)에 비교해 위상이 높다.

조선 초기 개국공신녹권으로는 국보 제232호

‘이화 개국공신녹권(李和 開國功臣錄券)’ 등 8점이 전하고 있으나

개국공신교서로 알려진 사례는 ‘이제 개국공신교서’가 유일하다.

 

 

교서에는 이제가 다른 신하들과 대의(大意)를 세워

조선 창업이라는 큰 공을 세우게 된 과정과

가문과 친인척에 내린 포상 내역 등이 기록되어 있다.

끝부분에는 발급 일자와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는

어보(御寶)가 찍혀 있다. 이 어보는 1370년(공민왕 19)

명나라에서 내려준 고려왕의 어보로

조선 개국 초까지 고려 인장을 계속 사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조선 최초로 발급된 공신 교서이자

현재 실물이 공개되어 전하는 유일한 공신 교서라는 점에서

조선 시대 제도사․법제사 연구의 중요 자료이다.

또한, 서예 사적 측면에서도 고려 말~조선 초 서예사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부부회화나무

연리지(連理枝)는 많이 볼 수 있다.

맞닿아 연이어진 가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냈으나

현재는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짙은 부부애를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산청 남사예담촌의 이 연리지는 부부회화나무라 불리며, 또 선비나무라 불린다.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서로에게 빛을 더 잘 들게 하려고 몸을 구부리고 있다.

그래서 부부가 나무 아래를 통과하면 금실 좋게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부부나무라고도 불린다.

 

중국 주(周)나라 시대에 회화나무 아래 삼공이 모여

정사를 논의한 것에서 유래되어 학자나무라고도 불린다.

부부회화나무의 수령(樹齡)은 31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