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입석사와 홍양리마애불 좌상
2020. 10. 21. 17:30ㆍ국내 명산과 사찰
입석사는 상원사와 비로봉에 오르는 중간 지점인
치악산 입석대 아래에 있는데
신라의 고승 의상(義湘)이 토굴을 짓고 수도하였다고 하는 가람이다.
경내의 연화대좌와 광배, 절 앞에 있는 석탑의 연꽃 받침 탑신은
고려 전기의 조각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절의 서북 방향인 입석대 옆에는 마애불 좌상이 있는데,
‘원우오년경오삼월일(元祐五年庚午三月日)’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고려 전기인 1090년(선종 7) 무렵에
불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중기 인헌왕후의 부친인
팔곡(八谷) 구사맹(具思孟, 1531∼1604)이 저술한
『팔곡집(八谷集)』에 이 절에 관한 기록이 있다.
즉, “입석대는 원주의 동쪽 20리에 치악산 위에 있는데, ···(중략)
··· 이른바 입석이라는 이름은 그 아래 정사가 있어
또한 입석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立石臺在州東二十里雉嶽山上 ···(중략)···
所謂立石者也 其下有精舍 亦以立石爲名) ”이다.
이러한 사실로 입석사가 조선 중기에도 사세의 명맥을 이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입석사의 전각은 사력(寺歷)도 짧지만
장소의 협소함 때문에 전각들이 단출하다.
현대에 이르러 1957년 요사가, 1992년에는 대웅전이 건립되었고.
대웅전 위쪽에 삼성각이 전부다.
입석대 앞에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된 석탑이 있다.
입석사에서 서북 방향으로 약 30m쯤에 있는
입석대 옆의 마애불좌상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7호이다.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1992년에 건립된 것이다.
수미단에는 항마촉지인을 한 본존인 아미타불을,
좌협시로 관음보살과 우협시인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항마촉지인의 수인만 보면 석가모니불로 볼 수 있지만,
좌협시의 보살 보관에 아미타상이 있어 이는 관음보살이다.
따라서 좌협시가 관음보살이면 본존은 아미타불이 되고,
우협시는 대세지보살이 된다. 불상 뒤에는 영산회상도가,
옆으로는 신중탱과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의 삼존불은 점안식을 2020년 5월에 가졌다고 한다.
삼성각
높은 축대 위에 전각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주포식 맞배지붕으로
법당에는 산신과 독성 칠성을 탱화로 모셨다.
산신은 남산신과 여산신을 모신 것으로 보아
치악산 산신은 두 분인 모양이다.
칠성탱은 법륜을 든 치성광여래를 중앙에 모셨다.
@입석대
대웅전 옆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가파른 절벽 위에
10m 높이의 화강암으로 된 네모꼴 바위가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입석대가 있다.
숲에 가려 위용이 가려지기는 했지만 거대한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입석대 앞에는 무너진 석탑의 부재를 다시 쌓은 석탑이 있다.
@입석사석탑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9호 입석사석탑
조성시대: 고려 시대
입석사에 있는 탑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세워 둔 것인데,
2기의 석탑 부재가 섞여 있는 듯하다.
부재들은 두툼하고 네모난 연꽃 받침이 2개,
얇은 연꽃 받침이 1개, 각 면에 기둥 모양을 새긴 탑신(塔身)의 몸돌이 3개,
네모난 판돌이 4개이다.
연꽃무늬 조각이나 탑신의 몸돌을 다듬은 솜씨로 보아
고려 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왕위에 오른 후
어린 시절의 스승 운곡 원천석을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며 나타나지 않으니,
그를 생각하며 이 탑을 세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온다.
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원주 치악산에 있는 이 마애불은 대웅전 뒤편 언덕에 있는
입석대에서 20m 정도 떨어진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흔히 치악산 마애불로 불리는 이 마애불의 공식명칭은
원주흥양리마애불좌상이다.
조성 시기는 부처가 대좌(臺座)의 오른쪽 밑에 새겨진
‘원우(元祐) 5년’ 문구로 보아 1090년(선종 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마애불은 전체적으로 저부조(低浮彫: 얕은 돋을새김)로,
전체 크기는 117cm, 불상 높이는 62cm이다.
광배(光背)는 주형(舟形)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선각으로 얕게 부조되어 있다.
얼굴은 풍만하며, 전체적으로 눈, 코, 입의 비례가 잘 맞는다.
귀와 머리가 약간 큰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양어깨,
양 무릎으로 이르는 신체 비례가 안정감 있다.
머리 가운데에는 계주(髻珠:상투 구슬)가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어깨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왼손은 배 앞부분에 놓고 손바닥을 위로하고 있다.
양쪽 어깨를 덮은 옷 사이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내의 자락,
왼쪽 어깨의 가사는 접힌 매듭형식을 드러내고 있다.
표현된 옷 주름, 머리의 상투 구슬, 둥글넓적한 얼굴 모습 등
양식적으로 보면 도식적이긴 하지만
고려 전기 불교 조각의 일반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조성 시기가 고려 시대 전기라는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치악산 마애불(흥양리마애불)은
고려 전기 불교 조각 연구의 기준 작품으로 그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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