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화산 미타사
2020. 8. 24. 23:25ㆍ국내 명산과 사찰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 개화산에는 두 개의 사찰이 있다.
개화산의 방화동 쪽으로는 약사사가, 개화동 쪽으로는 미타사가 있다.
약사사가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사암(寺庵)이듯
미타사 역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사암(寺庵)이다.
두 사찰 모두 석불을 봉안하고 있는데
그 조성 시기나 석불의 형상 또한 동일하다.
석불의 조성 시기는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로 추정되며,
형상은 둘 다 석주형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40호와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타사의 창건 역사는 약사사와 같이 알려진 것이 없고
다만 이 석불의 조성 시기를 추정하여
약사사와 같은 고려말 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는 것은
아마도 사찰의 석불과 한강 변을 끼고 있는 개화산 둘레길 때문인 듯하다.
「서울지명사전」 에 강서구의 개화산에 얽힌 이런 이야기가 있다.
《개화산은 강서구 개화동에 있는 산으로서,
開火山, 주룡산, 開化山, 봉화뚝이라고도 한다.
개화산의 원래 이름은 주룡산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 때에 主龍 선생이라는 한 도인이 이 산에 살면서
매년 9월 9일에는 동자 두세 명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구일용산음이라 하였으므로 주룡산이라고 하였다.
선생이 돌아간 후에 그 자리에는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개화산이라 일컬었다.
선생이 살던 곳에 언제부터인지(고려 때) 절이 생겼고 절 이름을 개화사라고 하였다.
개화사 절에는 약효가 좋다고 하는 약수 때문인지
조선 말기쯤에 절 이름이 약사사로 바뀌었다.
산 정상에는 조선 시대 사용했던 봉화대가 있었다.
또 산의 형상이 꽃피는 형국이라 하여 개화산이라고 한다.
전남 순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하였다. 》
개화산 약사사는 그나마 약간의 기록이 전하고 있으나,
미타사는 한국전쟁 발발할 때 이곳을 수호하려는
육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던 격전지로
그로 인해 절의 모든 당우들이 전소되어 일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석불과 사찰에 관련된 내력을 알 수 없다.
현재 미타사의 당우는 작은 법당과 요사가 전부인 단촐한 가람을 이루고 있다.
사찰의 석불이 있는 위쪽에는 한국전쟁
당시 이곳을 수호하기 위한 산화한 1.100의 호국영령들을 위한
개화산 호국공원과 호국충혼위령비가 조성되어 있다.
이번 미타사 탐방은 약사사 앞에 주차하고
약사사를 거처 옆의 개화산 둘레길로 미타사를 탐방했다.
개화산 둘레길의 정상인 신선대에서 10분 정도 거리다.
@서울 미타사 석불입상(─彌陀寺石佛立像)
시대:조선전기
문화재 지정: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9호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로13길 56-33, 미타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9호. 불상의 높이 340㎝, 어깨 폭 92㎝.
석불입상은 원래 요사채로 사용되던 건물 안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야외에 모셔져 있다. 미타사 석불입상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석불의 성격과 조성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원래의 팔각연화대좌는 따로 보관되어 있으며,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근년에 후보한 것이다.
석불입상이 언제부터 미타사에 봉안되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미타사 석불입상은 옥개형의 원형 보관을 제외하고 하나의 돌을 다듬어 만들었다.
보관의 아랫부분을 불상의 정수리가 맞닿는 크기에 맞춰 파낸 다음,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보관은 원래 불상 위를 장식하던 보개나
천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되며, 고려 시대 불상에서부터 나타난 전통인데
대개 팔각원형이나, 방형(方形)인 데 반하여 원형을 하고 있다.
석불입상은 7등신의 늘씬한 신체 비례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음각으로 얕게 표현된 상호(相好)와 굵고 둥근 목,
장방형의 몸 등 다소 경직된 모습이며, 살짝 살이 오른 듯한 양 볼,
장방형의 신체, 면을 살린 조각 기법 등에서 조선전기 불상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불상의 법의는 양쪽 어깨를 덮는 통견(通肩)식이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 쪽으로 가로지르는 대의(大衣) 자락으로 인하여
얼핏 보면 편단우견(偏袒右肩)식 착의법을 한 것 같이 보인다.
대의는 복부 중앙에서부터 무릎까지 U자형으로 반복해서 흘러내린다.
그 아래에는 자를 대고 음각한 것처럼 수직으로
딱딱하게 그어 표현된 군의(裙衣) 자락이 보인다.
불신(佛身)을 감싸고 있는 법의는 그다지 유기적이지 못하여
법의 주름이 부자연스러우며 팔이나 손도 신체와 비교하면 상당히 큰 편이다.
미타사 석불입상은 뒷면과 측면에도 조각되어 있으나
정면 위주의 조형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또한, 미타사 석불입상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선(線)보다는 면(面)을 살려 조각하여 평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타사 석불입상은 원형의 보관, 가늘게 뜬 눈,
어깨까지 닿아 있는 큰 귀, 후덕해 보이는 양 볼,
굵고 둥근 목, 장방형의 몸을 갖추고 있다.
4m가 넘는 장방형의 돌을 잘라서 대충 다듬은 다음,
상호는 부드럽게 표현하고 불신은 돌의 크기에 맞춰 대충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미타사 석불입상은 옥개형 보관, 후덕한 모습의 상호(相好),
다소 경직된 불신(佛身), 면(面) 위주의 조각 기법 등에서
고려말 내지 조선전기 경기도 지방에서 조성된 석불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석불입상은 구체적인 조성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경기도에서 고려 시대 거불(巨佛)의 전통을 계승한
대규모의 석불이 조성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어서 주목된다.
@개화산 호국공원과 호국충혼위령비
신선대 전망대에서 바라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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