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 20:26ㆍ문화재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
승탑명: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
크기: 2.9m
조성시대: 신라 경명왕 7년(923)
문화재지정: 보물 제362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 후기의 고승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의 사리탑으로,
그의 탑비(塔碑, 보물 제363호)와 함께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1919년 경복궁으로 옮겼다 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전형적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지만,
표면의 장엄조각은 적은 편이어서 석재의 색조와 아울러 청초한 감을 준다.
진경대사 심희(審希)는 신라 말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였던 봉림사의 개조(開祖)로,
비문(碑文)에는 출가 후 명산을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고
국왕들을 귀의시킨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923년 봉림사 선당(禪堂)에서 입적하자,
왕이 ‘진경’이란 시호(諡號)와 ‘보월능공(寶月凌空)’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8각의 지대석(地臺石)은 장식이 없고 그 위에 8각 하대석(下臺石)을 놓았는데,
하대석의 옆면에는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이는 큼직한 안상(眼象)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상면에는 모퉁이마다 귀꽃이 장식된 반원형의 테를 두르고
그 안에 작은 연판(蓮瓣)으로 장식된 굄을 마련하였다.
중대석(中臺石)은 상하가 편평한 공모양(扁球形)인데
옆면에는 마름모꼴의 안상 안에 꽃 모양을 양각했으며
넓은 안상 4구와 이를 연결하는 2줄의 띠장식이 있어 불탑(佛塔)의 복발(覆鉢)과 비슷하다.
상대석(上臺石)은 원형이며 밑에는 8개의 올림연꽃[仰蓮]을 단판중엽(單瓣重葉)으로 부조하고
그 사이에 작은 잎을 중첩시켜 다소 형식적인 면을 보여준다.
밑에 3단의 받침이 얕게 표현되었다.
탑신(塔身)은 8각이며 모서리에 기둥을 모각하고
각 면석의 상하에 횡대를 돌렸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다.
옥개석은 높고 큰 편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고 있다.
낙수면은 8각의 굵직한 지붕선이 꼭대기에서 아래로 이르렀고,
옥개석(屋蓋石)에는 밑의 서까래모양이나, 낙수면의 기왓골 표현은 없고
다만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이 굵게 표현되었을 뿐이고
8각의 우각마다 큰 귀꽃이 있었으나, 현재 많이 파손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귀꽃이 새겨진 8엽의 화형을 조각한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와
화염보주(火焰寶珠)화염보주: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로 되어 있는 데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다.
이 승탑이 조성된 연대는 탑비의 내용에 의해 진경대사가
입적한 후인 923년(경명왕 7)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
아래받침돌의 안상에서 이미 고려시대의 특색이 보이고 있다.
기단 가운데 받침돌이 낮고 작은 것이나 탑신의 몸돌이 가늘고 긴 것에 비해,
지붕돌이 지나치게 커서 비례의 균형을 잃고 있다.
조각수법이 강하지 않고 전체 형태가 길쭉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는 등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양식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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