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546호 지리산 천은사 금동불감(나옹화상원불)

2019. 12. 21. 15:59문화재

보물 제1546지리산 천은사 금동불감(나옹화상원불)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공간을 불감(佛龕)이라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셔진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리산 천은사 금동불감(求禮 泉隱寺 金銅佛龕)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금동불감이다.

 200831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546호로 지정되었다.

금동불감의 높이는 43.3cm, 폭은 34.7cm이고, 측면 너비는 21cm.

아미타여래좌상의 높이는 13.4cm, 무릎 폭은 7.4cm이다.

약사여래좌상의 높이는 13.7cm, 무릎 폭은 7.6cm이다.

전각형(殿閣形) 불감(佛龕)이며 2구의 불좌상 2구가 봉안되어 있으나 원래 3구였다고 한다.

 

 

전각형 불감으로 내부에는 두 구의 불상을 모시고 후벽과 좌우 벽에는

후불탱화의 역할을 하는 비로자나불·약사여래·아미타여래로 삼불회도를 타출기법으로 표현하였고,

 문 좌우에는 기운이 넘치는 근육질의 인왕상을 나타내었다.

이와같이 이 불감은 비로자나를 본존으로 하는 삼불을 봉안한 법당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고,

 벽면마다 고부조로 새겨진 후불도의 세부 표현 역시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다.

특히 불감의 뒷면 왼쪽 윗부분에는 선각으로

 불감 조성에 참여한 제작자, 시주자 등이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이 불감은 삼신불과 삼세불의 도상이 융합되어 도상적으로 매우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여말 선초의 조각, 회화, 금속공예, 건축양식, 문양 등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사진 및 자료출처: 천은사 홈피>

 

부언: 천은사 금동불감에 대한 문화재청의 해설을 소개한다.

 

지붕은 기왓골이 표시된 우진각(-: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 형식이며

치미(鴟尾: 대마루 양 끝에 세운 매 머리 모양의 장식)를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정면에 달린 두 짝의 문비(門扉: 문짝) 겉면에는 사격자문과 구름무늬,

연당초문이 정연하게 선각(線刻: 선으로 새김.)되었다.

  문비 안쪽 면에는 인왕상이 1구씩 거의 대칭형으로

타출(打出: 철판 밑에 모형을 대고 두드려 그 모형과 같은 모양이 나오게 함.),

양각(陽刻: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되어 있다.

 

내부의 정면 벽에는 불보살 삼존과 10구의 나한상, 사천왕, 타방불로 이루어진 군상이 타출되어 있다.

본존상이 비로자나불의 수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회도이다.

좌측 벽면에는 약합을 든 약사불을 주존으로 한 삼존불을,

우측 벽면에는 설법인을 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는 삼존불을 각각 부조(浮彫: 돋을새김)하였다.

그리고 화려한 구름 문양이 여백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내부에 봉안된 불좌상들은 앙복련이 상하 대칭으로 배열된 라마 불상식의 대좌 위에 앉아 있다.

두 불좌상의 손 모양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없어진 본존의 좌우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구품인의 하품하생인에 해당한다.

상체가 앞으로 약간 숙어진 자세로 높은 육계(肉髻)에는 중앙 계주(中央髻珠)가 있다.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의 아미타삼존불 ) 

 

불의 표현은 문수사 금동불좌상(1346)과 같은 고려 후반기 불상의 주된 흐름을 따르면서

조금 간략해지고 경직된 표현을 보인다. 그 밖에 감 내부의 천정에는 능화형(菱花形)을 타출하고

그 안에 봉황 두 마리와 구름 문양을 타출하였다. 밖에는 연당초문을 빈틈없이 선각하였다.

  천은사 금동불감은 전체를 볼 때 화려하게 장엄된 불전을 축소한 듯하다.

양식으로 볼 때 14세기 불상의 흐름을 따르는 불좌상들뿐 아니라

벽면 부조의 상들도 14세기 불화의 불보살상의 표현과 비교된다.

 

나옹화상과의 관련설이 있는 이 불감은 천은사 뒤 노고단 중턱의 상선암에 있던 것이라 전한다.

불감 뒷면에 있는 조성기(造成記)를 보면

 造像信勝造藏金致造手 朴於山施主朴氏兩主綠化信音重寶信禪海王

(조상신승조장금치조수 박어산시주박씨양주녹화신음중보신선해왕)”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불상은 신승, 불감은 김치·박어산 등이 만들었고,

 박씨 부부가 시주하였으며, 신음 등 네 승려가 참여한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조성 연대가 없어서 조성 편년에 난점을 남기고 있다.

 

43.3높이의 금동불감으로 정면 전체를 여닫이식 문으로 구성하여

예배나 의식 때만 열어서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좌우 문 안쪽에 칼을 든 인왕상이 1구씩 돋을새김 되어있는데

정교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정면 벽에는 중앙에 비로자나삼존상과 주위에 10대 제자상을 돋을새김하였다.

 

비로자나불상은 전형적인 8각의 연꽃무늬 대좌 위에 앉아 있다.

손은 양손을 가슴에 올리고 왼손 검지를 오른손이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의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손 모양이다.

얼굴이나 신체는 단아하며

대좌는 비교적 정교한 편이어서 격조 높은 조각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좌우 벽에는 꽃무늬들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고,

천장에도 여러 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어 화려하고 장엄한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입구 문을 열면 좌우에 금동불 2구가 모셔져 있는데,

위로 향한 연꽃무늬와 엎어놓은 연꽃무늬로만 구성된

고려말 조선 초의 전형적인 대좌 위에 앉은 같은 수법의 불상이다.

얼굴이나 신체는 단아하지만 다소 경직된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벽면에 돋을새김한 불상들은 비교적 얼굴의 형태나 옷 주름의 묘사가 유연하고,

꽃무늬 같은 무늬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인왕상의 힘차고 발랄한 표현 등은 이 불감이 뛰어난 작품임을 보여준다.

 

흔히 나옹화상의 원불(願佛)로 알려져 있으며,

불감 뒷면에 불상은 신승, 불감은 김치, 박어산 등이 만들었고,

박씨 부부가 시주하였으며, 신음 등 네 승려가 참여하였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어 흥미를 높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