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0. 21:47ㆍ국내 명산과 사찰
반달곰을 사육하는 지리산 문수사
피아골 단풍축제일 연곡사 탐방을 겸해 지리산 단풍 구경을 갔다가
소문과 달리 단풍이 제대로 물들지 않아 연곡사만 들리고 바로 방향을 바꿔 문수사로 향했다.
지리산 문수사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74(지번)에 있는 조계종 사찰로
그리 잘 알려진 사찰은 아니지만, 반달곰을 사육하고 있는 특이한 사찰이다.
사찰 안내서에는 백제 성왕 25년(서기 547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고 하는 데
사찰 관련 기록도, 소장된 보물급 문화재도 없어 사찰 내력을 유출해 볼 수도 없다.
현재의 전각들은 모두 1988년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창건주로 알려진 연기(緣起)조사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 때
천축(현 인도)에 건너온 고승으로 구례 화엄사를 창건하여
한국 화엄종의 시조로 불리는 인도의 고승으로 생몰(生歿)연대는 미상이다.
대각국사 의천이 밝힌 바로는 그는 3천 명의 제자를 길러
원교종풍(圓敎宗風)을 전국에 퍼뜨렸다고 하며,
저서로 《대승기신론주강(大乘起信論註綱)》·《화엄경요결(華嚴經要訣)》 등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문수사 계곡을 지나 상당히 가파른 언덕 위에 문수사가 있다. 문수사 입구는 대숲을 터널처럼 조성해 놓았다.
중앙에 문수사의 본당인 3층목탑이 있고 왼쪽에 반달곰 사육장, 우측에 와불이 있는 전각이 있다.
범종각
@반달곰 사육장
쇠 철장 속에 가두어 사육되고 있는 반달곰이다.
가까이 갈 수는 없고 더구나 철장이 너무 촘촘하여 인증샷을 남기기도 어려웠다.
반달곰은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되어 있고, 몸 전체가 광택 있는 흑색이며
앞가슴에는 반달 모양의 V자형의 큰 흰무늬가 있다고 하는 데
철장이 너무 촘촘하여 확인할 수 없었다.
반달 모양의 흰무늬는 변이가 심하여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으며,
희소하지만 흰무늬가 전혀 없는 개체도 있다고 한다.
문수사에서 어떤 연유로 반달곰을 사육하였는지 궁굼증이 남는다.
@대웅전
지리산 문수사의 대웅전 전각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삼 층 목탑으로 조성되어 있다.
목탑으로서 현재 잘 알려진 것은 법주사의 팔상전이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목탑은 전란이나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근세에 들어와 재건한 것이 전부이다.
그 대표적인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과 진천 보련산 보탑사의 목조 3층 탑이 전부라면 전부다.
문수사의 대웅전은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을 모본으로 한 것이 아닌가 사료될 정도로 거의 동일하다.
화순 쌍봉사 대웅전
(진천 보탑사)
문수사의 대웅전은 3층의 정방형 단칸집으로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그대로 지닌 목조타파형 건물이었다.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과 같이 이러한 목조타파형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을 간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법당에 봉안 여래는 화순 쌍봉사 대웅전의 석가모니불과 같은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이고 다만 쌍봉사처럼 가섭과 아난을 협시로 두고 있지 않을 뿐이다.
법당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
쌍봉사 대웅전의 석가모니불과 같은 수인을 하고 있지만
가섭과 아난을 협시로 두지 않은 것이 다르다.
칠성탱
신중탱이다. 위태천이 참 곱상하게 묘사되어 있다.
대웅전 옆 이 전각에는 보현이방, 와불전, 문수방이란 3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전각이라 명칭 대신 보현이방, 문수방 이란 편액이 순박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문수암
문수전
문수보살
삼성각 가는 길에 있는 쌍사자석등
옆에서 본 삼성각
고봉선원
@고봉선원(高峯禪院) 고봉화상의 법맥을 이은 것인지는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고봉화상(高峯和尙:1238~1295)의 내력을 보면, 고봉화상은 중국 소주(蘇州) 출생으로 속성은 서(徐), 이름은 원묘(原妙)이다. 스스로 고봉(高峯)이라고 불렀다. 15세에 밀인사에서 출가해 16세 때 구족계를 받고, 18세에 천태 교학을 공부했다. 20세 때 선을 배우기 위해 항주(杭州) 정자사(淨慈寺)에 들어간 고봉은 단교 화상 밑에서 ‘3년 안에 깨닫지 못하면 죽겠다’는 각오로 수행하였다. 3년 기한은 다가왔지만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던 고봉은 1260년 북간탑에 있던 설암조흠 선사를 찾아가 깨달음을 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1271년 임안 용수사에서 잠자던 도반이 떨어뜨린 목침 소리를 듣고 활연(豁然) 대오(大悟)하였다. 1279년 남송이 멸망하면서 고봉은 천목산 서봉 사자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고봉은 사관(死關)을 세운 뒤 산문 출입을 삼가고 정진에만 몰두하였다. 사관에서 15년간 수행하다가 1295년 12월 세수 58세 법랍(法臘) 43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그의 제자인 영중(永中)과 홍교조(洪喬祖)가 고봉 선사의 어록에서 요점만을 추려서 수행자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편찬한 『고봉 화상 선요(高峯和尙禪要)』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 일부 선방(禪房)에서 이를 수행의 모본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석부재를 모아 놓았다. 옛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문수사를 중건하기 위한 석부자재로 보인다.
석탑은 아니고 화사창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등인 모양이다. 군데 군데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지장보살인가?
탑신은 없고 상륜부와 상대석과 기단부만 남아 있다. 기단부와 탑신의 색깔이 많이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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