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567호 철조 아미타여래좌상을 봉안한 평택 무봉산 만기사

2019. 10. 15. 22:37문화재

보물 제567호 철조 아미타여래좌상을 봉안한 평택 무봉산 만기사

 

우리나라 불상은 대개 석불이나 목조불 등이 주를 이루지만

철불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것도 주로 충주 일대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는 데 반하여

 평택 지역에서 유일하게 무봉산 만기사에서 철불이 봉안되어 있어 방문했다.

 

 

 

 

평택 무봉산(舞鳳山) 만기사(萬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942(태조 25) 남대사(南大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세조 때 왕명으로 중수한 가람이다.

그 후 퇴락된 채 명맥만을 이어오다가 1972년 주지인 혜송(慧松)

 대웅전과 삼성각(三聖閣요사채 등을 중수하였지만,

1979년 실화(失火)로 요사채가 전소되어 1980년 크게 확장,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삼성각·극락전으로도 사용되는 동쪽 요사채와 서쪽 요사채 등이 있다.

정면 4,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567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後佛幀畫신중탱화(神衆幀畫)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절의 경내에는 석탑재(石塔材석등재(石燈材석불·부도 등

 고려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재(石材)들이 산재하여 있으나

결실된 부재(部材)들이 많아 대부분 복원이 불가능하다.

 어정(御井)이라고 불리는 우물은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마시게 되었는데

 물맛이 특이하였으므로 샘 이름을 감로천(甘露泉)이라고 명명하였으며,

후세 사람들이 세조가 마신 물이라고 하여 그 물을 어정수라고 불렀다.

 

 

 

 

 

중앙의 전각에 원이삼점(圓伊三點)이 도식되어 있다.

'원이삼점(圓伊三點)'은 보통 사찰의 지붕 합각에 그려진 것으로

 큰 원에 점 세 개를 그린 것을 말한다. 이는 이자삼점(伊字三點)이라고도 말한다.

실담(悉曇)의 이자(伊字)3점으로 이루어지고,

이들 3점이 세로줄도 가로줄도 아닌 형태이므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이 원이삼점(圓伊三點)이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설명이 있다.

먼저 원이삼점을 둘러싸고 있는 큰 원은 '우주법계'를 나타낸다고도 하고,

또 다른 설명으로는 큰 원은 '원융(圓融)'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여기서 원융이란 걸리고 편벽됨이 없이 모든 것에 가득하고 만족하며,

완전히 일체가 되어서 서로 융합하므로 방해됨이 없는 것을 뜻한다.

또 종파에 따라서는 불법승 삼보를 의미하기도 하고, 삼법인, 마혜수라(대자천)의 3안을 의미하기도 한다. 

 

 

@명부전과 천왕문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이고 위층은 명부전이다.

 

 

 

 

천왕문에 그려진  수호신 밀적금강

 

 

천왕문에 조성된 수호신 나라연금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

 

 

동방 지국천왕

 

 

 

 

 

천왕문 계단을 올라서면 경내 전각이 나타난다.

중앙 5층 석탑 뒤는 대웅전이고 오른쪽 팔각형 전각이 삼성각,

왼쪽은 범종각이다. 범종각 뒤편에 원통전이 있다.

 

만기사 5층 석탑이다. 조각 없이 조성되어 있고 상대석의 면석에 사천왕상이 부조되어 있다.

대개의 경우 하대석의 면석에 팔부신장이나 금강역사를, 상대석의 면석에는 사천왕상을 부조하는데

만기사의 이 5층탑은 상대석의 면석에만 사천왕상이 부조되어 있다. 

 

 

무봉선원 앞에는 연못이 조성된 것이 이색적이다. 연못에는 금빛 잉어가 유희하고 있다.

 

 

 

 

 

 

 

 

무봉선원

 

 

 

 

 

 

 

종무소와 감로당

 

 

 

정면 4,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567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後佛幀畫신중탱화(神衆幀畫) 등이 봉안되어 있다.

 

 

 

 

 

@만기사 철조여래좌상

대웅전 안에 봉안된 철조여래좌상은 보물 제56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철불의 높이 143이다.

후삼국 시대의 광주 철불 등의 양식을 계승한 철불로,

충주의 3대 철불과 같이 고려 시대에 조성된 철불이다.

 

 

 

철불은 조성한 후 회분을 칠하거나 도금을 하는 데

만기사의 철불은 두껍게 개금(改金)되어 원래의 세부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전형적인 고려 시대의 불상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불상을 받치는 대좌(臺座)는 없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 상태였으나 최근에 새롭게 보안조성한 것이며,

오른팔과 양손은 모두 나중에 보수한 것이다.

좌우에 협시불로 봉안된 관음과 대세지보살은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본존이 아미타불임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螺髮]을 붙여 놓았고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肉髻]가 큼직하게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계주(髻珠)도 표현되어 있다.

갸름한 얼굴에 알맞은 이목구비를 하고, 목에는 3줄의 삼도가 뚜렷하며, 귀는 긴 편이다.

어깨는 넓고 가슴이 발달되었고, 상체가 약간 긴 편이나 크고 넓은 결가부좌한 다리를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은 편이어서 안정감이 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옷 주름 표현은 왼쪽 어깨의 삼각형의 옷 접힘과 무릎 부분에 세 가닥으로 세로줄이 접혀 있는데,

약간 도식적으로 새겨졌다. 손모양[手印]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우견(右肩) 편단(褊袒)의 이러한 모습은 충주의 3대 철불 중 하나인

 백운산 철조여래좌상(보물 제1527)이나,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불상은 신라 말부터 유행하던 철불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양식적으로는 불국사에 있는 9세기경 금동아미타불좌상이나

금동비로자나불좌상,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등 장신 계통의 불상을 이어받은 고려 시대 불상이다.

당당한 형태이지만 도식적인 옷 주름의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 등에서 고려 시대의 양식이 잘 반영된 철불이다.

 

 

 

 

(아미타여래)

@우리나라 철불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철불(鐵佛)은 신라하대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는 이른바 나말여초기에만 유행했다.

보통 철불은 주조과정이 끝나면, 상 표면에 호분을 입히고 채색을 하거나,

옻칠을 입히고 그 위에 개금(改金)을 하므로,

상 표면의 도드라진 이음매가 감춰져 완성된 후에는

 원재료(原材料)가 철()인지 동()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세지보살)

중대 신라까지 금동과 소조, 목조, 석조불상이 주류를 이뤘던 것에 비해,

하대신라 9세기에 들어서 철불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 사회의 경제적인 측면과도 관련이 있다. 철은 예전부터 농기구나 무기를 만들던 재료로

 사용되었으므로 호족이나 지방민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금속이었으며,

신라말부터 철광채굴이 증가하여 철의 공급이 늘어났던 것도

 철불이 유행했던 이유의 하나로 작용했던 듯하다.

 

 

(관음보살)

철불이 집중적으로 造成되기 시작한 시기는 남북국시대 신라말로,

왕권의 약화로 중앙집권 세력이 약해지고 지방호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現世求福을 기원하는 현실적인 조형의 철불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불은 충청남도 서산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철제여래좌상이다. 이 철불의 제작 시기는 8~10세기경으로 추측되며,

오늘날 남아 있는 대부분의 철불은 9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위태천을 중앙에 배치한 목각 신중탱)

우리나라의 철불은 중국과 일본보다 제작 시기가 빠를 뿐만 아니라 규모나 주조 기술도 뛰어나다.

 한국과 일본에 현존하는 철불은 대략 신라철불 17점과 고려 철불 55점에 이른다.

특히 충주 지역에서 철불 3기가 함께 발견되어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충주의 3대 철불도 모두 고려 시대의 작품에 속한다.

 

 

 

 

 

석가모니 열반상을 도식한 탱

 

 

대웅전의 범종

 

 

대웅전에 바라 본 풍경. 5층탑 뒤가 천왕문이 된다.

 

 

범종각

 

 

 

 

 

 

원통전 안에는 목각으로 조성된 천수관음상을 봉안했다.

 

 

천수관음상이 특이하다.

 

 

 

 

 

 

 

 

 

 

 

 

 

 

 

 

 

 

 

 

 

 

팔각형 지붕을 한 삼성각이 특이 하다. 전각 안에는 치성광여래, 산신, 독성을 목각탱으로 조성하여 모셨다.

 

 

 

 

 

 

치성광여래

 

 

독성

 

 

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