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 00:20ㆍ문화재
국보 제99호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金泉葛項寺址東西三層石塔)
@국보의 지정기준과 그 절차, 그리고 관리 등에 대해서는
1962년 제정되어 2018년까지 57차례에 걸쳐 개정되어 온 <문화재보호법> 및
1964년 제정되어 2018년까지 56차례 개정되어 온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에 의거한다.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체육부 장관이 지정하며, 소유자에의 통지나 관보 고시로 그 효력이 발생한다.
국보의 지정기준에 대한 세부사항으로는
① 보물 가운데 특히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
②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제작연대가 오래되고 특히 그 시대에 대표적인 것,
③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제작 의장이나 제작기술이 특히 우수하여 그 유례가 적은 것,
④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형태·품질·제재·용도가 현저히 특이한 것,
⑤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특히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한 것 등의 시행규칙이 마련되어 있다.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 제2조)
2018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국보의 수는 국보 제1호인 서울 숭례문부터
국보 제324호인 고려 태조어진까지 복수 등록된 문화재를 포함하여 모두 336점이다.
이 중에서 국보로 지정된 석탑(전탑과 모전탑 포함)은 29기에 달한다.
(국보 제99호 갈항사지 동서삼층석탑)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갈항사터(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동 소재)에
동·서로 세워져 있었던 두 탑으로, 일본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하자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은 것이다.
<갈항사 쌍탑>, <갈항사 삼층석탑>이라고도 불린다.
동탑
갈항사(葛項寺)는 신라 32대 효소왕 때에 세운 절이며,
금오산이라는 산의 서쪽 기슭에 있었는데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갈항사를 세운 사람은 신라의 고승인 화엄법사 승전(勝詮)인데,
그는 692년(효소왕 1년)에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한 후 귀국하여 이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갈항사의 그 이후 역사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폐허가 된 절터에 이 삼층석탑 2기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서탑)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金泉葛項寺址東西三層石塔)은
국보 제9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탑의 높이는 4.3m, 서탑은 4m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갈항사지에 동서로 서 있던 것을
1916년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남북으로 세웠다.
두 탑의 규모나 양식은 동일하며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설치한 전형적인 신라식 석탑이다.
상하기단에 탱주를 2개씩 모각했으며,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옥개석의 하층 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다.
동탑은 3층 옥개석이 없어졌으며 양 탑 모두 상륜부가 없다.
각 층 옥개석 추녀 등에 수식을 고정하기 위한 많은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통일신라 초기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각 부분의 구성이 균형 있는 조화와 안정된 비례를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탑인 불국사 석가탑과 함께
8세기 중엽 석탑의 기준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동탑 상층 기단부에 음각된 명문은 신라 석탑 중에는
유일한 예로 이를 통해 758년(경덕왕 17년)이라는 조성연대와
영묘사 스님인 언적과 그의 두 자매가 탑을 세웠음을 알 수 있으며,
이두문를 사용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더욱 크다.
이전할 때 기단부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는데 동탑에서는 청동사리함·금동제사리병이,
서탑에서는 금동제병·동합·지편이 발견되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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