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2. 16:09ㆍ문화재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평택 심복사 비로자나불좌상
심복사(深福寺)는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광덕산(廣德山)에 있는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 소속으로 되어 있다.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미상이나 고려 시대의 사찰이라고 전한다.
창건 이후 1575년(선조 8)에 중건하였고, 1705년(숙종 31)의 중수를 거쳐
1767년(영조 43)과 1825년(순조 25)에 중건하였다.
그 뒤 1875년(고종 12)에 단청하였고, 1934년에 영조(永祚)가 중건하였으며,
1978년에 정준(正俊)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요사채와 주지실, 내원당(內院堂), 응화당, 향수해, 삼성각, 향림당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어부가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전설을 지닌
보물 제565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다.
응화당
내원당은 참배객을 위한 전각으로 옆에는 종무소로 활용되는 능인전이란 편액이 편액이 붙어 있다.
능인전
@향수해
전각명으로는 이색적이다. 심복사의 향수해는 2층 전각으로 심복사에서 가장 장엄한 전각이다.
향수해(香水海)라는 명칭은 화엄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80화엄경』의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제3권에 보면
비로자나불의 서원과 수행을 통해 완성된 연화장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연화장세계의 구조는 향수해(香水海)에 떠 있는
대 연화 속에 111개의 세계종[刹種]이 펼쳐지고, 각 세계종에 20세계가 중첩되어 있다.
심복사의 본당이 대적광전이고 법당 안에는 화엄의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어
심복사의 전각들은 화엄의 용어를 빌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입구 전면은 향수해라는 편액이 뒤편은 화장계라는 편액이 조성되어 있다.
대적광전
향림당
@삼성각
심복사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조성되어 있다. 중앙에 치성광여래 좌우에 산신과 독성을 모셨다.
삼성각에서 내려다 본 전경. 왼쪽이 대적광전 그 앞쪽은 향수해, 좌측은 향림당이다.
대적광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삼층석탑
대적광전 앞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조성된 내력과 연대를 알 수 없다.
옛적에 남은 석재 부조물을 짜 맞추어 놓은 듯하다.
상륜부의 보륜은 원래의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노반 위의 앙련은 거의 파손되어 있다.
탑신부의 옥개석은 파손이 심하고 특히 2층 옥개석은 귀퉁이가 모두 탈각되어 있다.
기단부는 2단으로 상대석은 완전하지만 면석에는 별도 조각이 없고
탱주는 1개가 면각되어 있다. 하대석과는 균형이 맞지 않고 지대석은 별도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조성연대는 조선 중기 때쯤으로 추정해 볼 수 있지만 확실치 않다.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심복사의 본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의 전각이다.
대적광전 안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보물 제565호인 석조비로자로불이 봉안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불상은 고려 말에 파주군 몽산포에 살던 천노인(千老人)이란 분이
덕목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이라고 전한다.
천노인이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끌어올리니 큰 돌이 올라왔으므로
생각 없이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자리를 옮겨 다시 그물을 쳤더니 그 돌이 또 걸려 올라왔다.
이상히 여겨 자세히 보니 불상이었으므로 육지로 모셔 와서 지게 위에 올렸는데,
불상이 너무나 가벼웠다. 모실 곳을 찾아 광덕산으로 올라오는데
지금의 심복사 자리에 오자 갑자기 무거워졌으므로 이 불상의 인연처라 생각하고 봉안하기로 하였다.
비슷한 이야기로 강화도 보문사의 석실에 봉안된 21기의 나한상의 전설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절을 지을 능력이 없어서 고심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바닷가에 큰 배 한 척이 있고 옆에 검은 소 세 마리가 있을 것이니
배의 목재를 이용해서 절을 지어라.”라는 계시를 받았다.
천노인은 꿈의 계시대로 바닷가에 있는 큰 배를 발견하고,
그 배의 재목을 소의 등에 싣고 와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부들이 건져 올린 돌부처님을 내려놓은 자리에 난파된 배의 목재를
소에 실어 와서 절을 지은 일행들은 부처님의 가피로 복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로
사찰 이름을 ‘심복사(深福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때 목재를 싣고 날은 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와
소의 무덤(尋牛塚)을 현재 심복사 입구에 조성해 놓았다.
보물 제565호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565호로 심복사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다.
광배는 분실되고 없지만, 불신(佛身)과 대좌(臺座)는 잘 보존되어 있다.
비로자나불은 철불(鐵佛)일 경우 흑색을 그대로 두거나 도금을 한 경우가 많고,
석불일 때는 대개 돌의 색깔 그대로 유지하거나 아니면 회분을 입혀 흰색으로 하는데,
심복사의 이 비로자나불은 석불임에도 불구하고 색은 검은색과 회색을 띠고 있다.
회색은 마모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비로자나불의 색은 본래 흰색으로 표현한다.
불상의 높이는 121cm, 대좌 높이는 107cm로 광배는 전하지 않고
불신과 대좌의 보존은 양호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법단에 대좌 부분이 가려 있다.
전체 크기 2.28m이다.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현재까지 중부권에서 석조 비로자나불이 발견된 것은 2기뿐이라고 한다.
하나는 안성 백운산 운수암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고
둘은 심복사의 이 비로자나불좌상이 유일하다고 한다.
안성 운수암 백운산의 비로자나불 좌상은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02로 지정되어 있다.(본방 안성 백운산 운수암참조)
이 불상의 머리에는 큼직하게 나발(螺髮)이 새겨져 있으며,
머리 정상에 표현된 살상투[肉髻]는 낮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우측은 마모가 되어 있고, 깨어진 코는 보수되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불상의 명칭은 수인(手印)을 통해 알 수 있는데
9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상의 수인인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다.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이 같은 수인이 뜻하는 바는
중생과 붓다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의미한다.
참고로 최고(最古)의 석조 비로자나불인 지리산 내원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33-1호),
축석사 석조비로자나불(보물 제995호), 동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는 동일한 우권인을 취하고 있지만,
홍천 내촌면 물걸리 석조비로자불(보물 제542호)은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과 같은 좌권인을 취하고 있다.
착의법은 양쪽 어깨를 감싼 통견(通肩)이며 대의(大衣) 안에 입은 내의(內衣)의 매듭이
배 앞에 리본처럼 양쪽으로 늘어져 있다. 대의에는 옷 주름이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한 띠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대의의 양쪽 깃과 소맷단에는 반원형의 꽃무늬가 서로 엇갈리게 새겨져 있다.
특히 대의의 양쪽 깃에 꽃무늬를 새긴 표현은
867년경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표현은 팔이 접히는 팔꿈치 부분에
꽃잎 두 장이 겹쳐진 모습으로 새겨진 독특한 주름이다.
이러한 표현은 867년경의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서산 보원사지 출토 철불좌상,
원주 출토 철불좌상과 같은 일부 10세기 전반 철불에서도 보여,
신라 하대의 불상 양식이 고려 시대에 도식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좌(臺座)는 불단에 가려져 있어 알 수는 없지만, 문화재청의 설명에 따르면
상·중·하대로 구성된 3단의 연화대좌로 상대(上帶)에는 두 겹으로 연화문이 새겨져 있고,
둥근 중대(中帶)의 앞면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상대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하대(下帶)에는 8개의 겹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867년경의 축서사 불상과의 유사성을 토대로 미루어볼 때,
심복사 불상의 조성 시기는 고려 초인 10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이 불상은 신라 하대 조각의 고려적 계승이라는 점에서
통일신라 말, 고려 초 석불의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법당의 신중탱
지장탱
@소 무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기 위해 배에서 뜯어낸 목재를
실어나른 소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덕비와 무덤이라고 한다.
공주 갑사의 공우탑(功牛塔)이나 해남 미황사의 창건에 얽힌 검은 소 이야기,
그리고 덕주사 극락보전 앞의 우공탑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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