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5. 00:01ㆍ국내 명산과 사찰
영암기행(4/6) 월출산 기암과 국보 제144호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천왕봉을 내려와 구정봉에 도달했다. 긴 산행으로 몸은 파곤죽이 되고,
물까지 바닥이나 갈증이 엄습해 온다. 여기서부터 도갑사까지는 아직 5km나 남았다.
그렇다고 천왕사나 산성대 탐방지원센터로 돌아갈 수도 없다.
해는 기울어지고 다리는 마비도 일어난다.
마애불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오긴 왔지만, 꼭 보아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마지막 코스에서 포기할 수 없어 그래도 무거운 다리를 걸면서 걷다 쉬다 반복하면서 마애불을 향한다.
우리나라는 거대한 석굴은 드물지만, 석불이나 마애불은 많다.
이는 우리나라 산이 주로 다루기가 힘든 화강암 지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석불은 대개 사찰 안이나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마애불은 산의 중턱이나 정상 가까운 암벽에 조성되어 있어 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일례를 든다면 국보 제308호 해남 두륜산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해발 600m인 노승봉 바로 아래에 있고,
갓바위 부처로 알려진 보물 제431호 팔공산 관봉여래좌상은 팔공산 관봉 850m 아래에 있으며,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1092m의 월악산 중턱에 있다.
그 외 함안 방어산(530m. 보물 제159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상(466m. 보물 제1200호),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336m, 보물 제1200호),
이천 설봉산 영월암 마애여래입상(394m. 보물 제822호) 등도
그리 높지는 않지만 오르기 쉬운 산은 아니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월출산 구정봉에서 600m 아래 암벽에 조성되어 있다.
내려가는 길이 상당히 급경사이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천왕사나 산성대 코스로 들머리로 하면 구정봉까지도 힘든 코스인데
이곳에서 다시 600m 정도의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대개 마애불만은 보기 위해서는 경포대탐방지원센터를 택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구정봉 아래 마애불까지는 왕복 4~5시간 정도면 족하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에 조성된
높이 8.6m의 거대한 마애불상으로 1972년 3월 2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애불상의 얼굴과 팔, 다리 등은 고부조(高浮彫: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되어 있어
환조상(丸彫像: 한 덩어리의 재료에서 물체 모양 전부를 조각한 상)을 방불케 한다.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육계(肉髻)가 표현되어 있다.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하면서 지그시 내리뜬 눈과 오뚝한 콧날,
꽉 다문 입 등 얼굴은 박력 있는 표현이다.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길고 큰 편이며 짧은 목에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또한, 떡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풍만한 가슴은 이 불상의 위용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신체에 비교하여 팔은 가늘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쪽으로 하여 왼쪽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데,
얇아서 몸의 굴곡선이 잘 나타나 있다. 옷 주름은 날카로운 음각선으로 가늘게 묘사되었다.
대좌 아래까지 얇은 옷 주름이 흘러내려 상현좌(裳懸坐)를 이루고 있다.
광배(光背)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선각으로 따로 새긴 거신광(擧身光)이다.
두광에는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신광에는 덩굴무늬를 새겼다.
두광·신광의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신체와 비교하면 얼굴이 비교적 크지만, 전반적으로 안정감 있고 장중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리고 조각 수법이 섬세하고 치밀하여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 있다.
오른쪽 무릎 옆에 고부조로 높이 87㎝의 선재동자상(善財童子像)이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신체는 약간 마멸이 되었으나,
오른손에는 무엇인가 지물(持物)을 들고, 왼손은 배 앞에 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약간 아래를 향한 시선이라든지 입가의 부드러운 미소가
조용한 자세와 조화를 이루어 신심(信心)이 잘 나타나 있는 듯하다.
대좌 아래에는 배례석(拜禮石)이 마련되어 있고,
좌대 아랫부분에 여러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구(架構)가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장중한 인상을 주며, 조각 수법이 섬세하고 치밀하여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신체와 비교하면 얼굴이 비교적 크다.
그리고 신체 각 부분의 불균형한 비례와 경직된 표현 등은
고려 시대 거불(巨佛)들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이 마애불의 조성 연대는 통일신라 말기 혹은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지친 나그네 전송을 하는 듯 높은 바위 위에 학 한마리가 날개짓을 한다.
이제 억세밭(미왕재)를 넘어 도갑사로 향한다.
도갑사에 도달하니 어둠이 가람을 덮어 전각들은 희미하게 형체만 보인다.
시계를 보니 오후 7시가 훨씬 넘었다. 저녁 예불시간도 지났는데도
대웅전에는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스님들도 오늘 일과를 마무리하시고 있는가 보다.
어제가 한가위인데 달은 보이지 않고 대웅전 앞 석등은 졸리는 듯 희미한 불빛을 비추고 있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조명등이 보물 제1433호인 5층 석탑을 비추고 있다.
참았던 심한 갈증이 다시 엄습해 식수대를 찾았지만 어두워서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시던 연세 지긋한 도갑사 매표 소장님이
친절하게도 한 컵의 냉수를 주셨다.
늦은 산행에 갈증에 시달리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감로수였다.
소장님은 친절하게도 콜택시까지 연결해 주셨다.
이 기회를 빌려 도갑사 매표소 소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도갑사 탐방까지 오늘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산행이 지체되어 부득이 내일 귀경길에 일찍 들리기로 하고
어제 머물던 숙소를 다시 예약해 놓고 산성대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영암기행 제5부 월출산 도갑사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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