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2019. 7. 21. 00:59국내 명산과 사찰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실상사 약수암은 신라 흥덕왕 3(828) 때 증각대사(일명:홍척대사)

당나라에 유학했다가 귀국해서 세운 절이라고 전해지는

 조계종 제17교구 본산인 금산사의 말사인 실상사의 부속 암자다.


 

약수암은 실상사에 약 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비포장도로로 승용차로 오를 수는 있지만 도로폭이 협소하여

 마주 오는 차와 교차하는 데는 애로가 있다.

실상사 홈피에 의하면, 1724(경종 4)에 천은스님이 처음으로 세웠고,

서영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실상사 창건 이후 거의 1,000년의 세월이 지나 창건된 암자임 셈이다.

약수암은 1901(광무 5)에 지월대사는 일당(一堂)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 예암 대유 스님이 개인 재산을 모아 보광전을 다시 세웠다.

 

(약수암 입구다. 일반 가람에서 볼 수 없는 싸리문이 고즈늑한 옛스러움을 풍긴다.) 


1937년에는 함양의 불자 한정희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 비구니 스님이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약수샘이 있어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기 때문에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보광전 오르는 돌담 아래 푸른 이끼가 서린 샘이 약수암이다.

약수암에는 목조 팔작지붕으로 된 보광전과 목조 요사채가 전부다.

실상사의 부속 암자인 약수암이 주목을 받는 것은

보광전 안에 조성된 1782(정조 6)에 만든 보물 제421호인 아미타목각탱화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사암의 요사채다. 약수암이란 편액이 걸린있다.)


약사암에서 유일한 전각인 보광전이다.


보광전 좌측에 있는 이 건물은 사용처를 알 수 없다. 편액도 걸려있지 않다.





보광전이라고 하면 석가모니불을 모시거나 <화엄경>의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다.

 남장사의 보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후불탱화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을 모셨는데

실상사의 약수암 보광전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만 봉안되어 있다.

 주존불은 없고 후불탱화만 있는 셈이다.

실상사 약수암(藥水庵) 보광명전(普光明殿)에 봉안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모사본(模寫本)으로 원본은 현재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보물 제421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다.




 

정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된 보광전에 모셔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비교적 작은 사각형의 목판 1매에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는데

아미타불과 8보살, 2비구가 표현되었다.

즉 화면을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하단 중앙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4보살과 2비구를 배치하였다.





(보물 제421호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목각 탱화는 불화의 내용을 부조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조각기법과 불화기법이 혼용된 것이다.

이러한 목각탱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것으로 현재 문경 대승사, 상주 남장사, 남장사 관음전,

 예천 용문사, 서울 경국사에도 남아 있다. 이들 6기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약사암의 목조탱화의 크기는 세로 181cm, 가로 183cm이며,

하단부에 "乾隆四十七 壬寅十一月方丈山實相寺□□□諸佛□□□□□"이라는 묵서명이 있어

 1782(정조 6)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의 목판에 고부조로 조각되었으며

현존하는 조선 후기 보물로 지정된 6기의 목각탱 중 가장 간단한 구도로 되어 있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아래쪽 중앙부에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팔대보살상(八大菩薩像)2구의 제자상(弟子像)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존상은 아래 중간 부분에서 솟아 나온 연꽃 줄기로부터 파생된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서 있다.

또한, 이들 보살상과 제자상 사이에는 작은 연꽃 속에서 지금 막 태어나고 있는

 화생(化生: 다시 태어나는 것) 장면이 9개 있는데,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9개의 품차(品次: 단계)에 따라 태어난다는

 구품왕생(九品往生) 단계를 설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목각탱의 상단 좌우에 각각 3, 상단 중앙에 3기 모두 9기가 된다)


 

구품연지(九品蓮池)는 불교 경전의 하나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의하면

 성격이나 행위의 차이에 따라 정토에서 태어나서 받는 과보(果報)에도 아홉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한다.

 . ·하의 삼생(三生)으로 나누고 이것을 다시 삼품(三品)으로 분류한 극락왕생의 아홉 가지 단계이다.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면 평생 지은 업()의 깊고 얕음에 따라

아홉 가지의 차등이 있는 연대(蓮臺)에 앉게 된다.

연지는 연꽃을 키우는 연못으로 연꽃은 불교의 연화세계(蓮華世界)를 상징하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연화장세계라고 칭한다.

 따라서 극락세계의 상징인 구품연지를 사찰 내에 배치하는 것은

 극락정토의 성중들이 연지에 둘러앉아 설법(說法)을 듣는

 연화회(蓮華會)의 모습을 나타내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의미를 상징하는 약수암의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의 구품연지는

조선 후기작으로 보물로 지정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6기 중에서도

가장 경전에 부합하는 독특한 구조로 조각되어 있다.

(9품 연지에 대해서는 본방 보물제748호 정릉 경국사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참조)


 

아미타여래를 팔대보살들이 협시하는 도상적인 근거는

불공(不空)이 번역한 팔대보살만다라경(八大菩薩曼茶羅經)이다.

 경전에 언급된 보살상은 관음보살(觀音菩薩), 미륵보살(彌勒菩薩),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제개장보살(除蓋障菩薩) 등이다.



이들 보살 중에서 도상적인 특징이 분명한 존상은 아미타여래상 좌측

첫 번째에 있는 보관(寶冠: 보배로운 모자)에 화불(化佛: 작은 불상)이 있고,

오른손으로 정병(淨甁: 깨끗한 물이 담긴 병)을 잡고 있는 관음보살과

윗줄 제일 우측에 있는 출가 승려의 머리를 한 지장보살이다.

 나머지 존상들은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어떤 보살상인지 알 수가 없다.

 2구의 제자상은 불상 위쪽 좌측에 있는 노인 모습을 한 가섭상(迦葉像)

우측에 있는 젊은 출가 승려의 모습을 지닌 아난상(阿難像)이다.





전체적인 구도는 2단으로, 하단에는 본존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2구씩의 보살상을 배치하고

 상단에는 지장보살을 포함한 보살상 4구와 나한상 2구가 있다.

본존상은 큰 광배를 갖추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어깨를 웅크린 듯한 자세에서 조선 시대 불상의 특징이 보인다.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 계주가 크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의 눈··입이 도식적으로 처리되었다.

법의는 통견이며 두 손은 따로 조각하여 끼워 넣었는데 아미타인을 결하고 있다.

통견(通肩: 옷이 양쪽 어깨를 덮는 것) 형식으로 법의를 착용하였으며,

내의(內衣: 속옷)와 군의(裙衣: 치마)가 모두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연화대좌의 꽃잎 사이로 물결치듯이 흘러내렸는데, 1

8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표현법의 하나이다.

본존불인 아미타불만은 몸 전체를 감싸는 광배를 지니고 있다.

 본존불은 사자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따로 조각하여 끼워 놓았다.




보살상들은 모두 장방형의 얼굴과 많이 노출된 가슴을 지니고 있지만,

손 자세와 장엄 표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일부 보살상의 장엄에서도 조선 후기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가섭 상과 아난상 바로 옆에 있는 2존의 보살상 무릎 아래를 두르고 있는 장식띠가 그것이다.



주위에 있는 보살상이나 나한상들은 모두 연화좌 위에 서 있는 입상으로

 손에 연꽃·정병 등을 들고 있거나 합장하고 있다.

얼굴의 표정이나 옷자락의 표현에서 획일화의 경향이 보이며

조선 시대 불상의 소박한 표현이 돋보인다.

주위에 서 있는 8 보살 중 관음보살은 보관에 화불이 있고 손에는 보병을 들었다.

지장보살은 스님의 머리 모양을 하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

합장한 2인의 비구는 아난과 가섭으로 생각되며 그 배경에는 연꽃으로 장엄하였다.

 

보살과 나한상의 배열은

@존상의 이름이 명기된 대승사의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과

아미타구존도의 도상(圖像)을 보면

지장보살(우측)과 미륵보살(좌측)을 대칭 시키고,

 합장한 제석천(우측)과 합장한 대범천(좌측)이 대칭으로 되어 있다.

또 관음보살(좌측)과 대세지보살(우측)을 대칭되고,

대세지보살 옆에 제장애보살(우측), 관음보살 옆에 금장장보살(좌측)을 대칭 시켰다.

(관음보살과 금강장보살) 

따라서 대승사의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의 도상이나 아미타구존등에서 나타난 도상(圖像)을 참조한다면

 대세지보살의 옆은 제장애보살, 관음보살 옆은 금강장보살로 추측할 수 있다.

대개 제장애보살은 왼손에 칼이나, 보주, 여의당(如意幢) 등을 들고 있고

금강장보살은 오른손에 청련화를 들고 그 위에 독고저를 올려놓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물을 든 좌우 손 모양은 같지만 금강장보살의 지물은 약수암 목각탱의 경우와 거의 동일하지만

제장애보살은 여의 가지를 들고 있는 것이 조금 다르다.


(제장애보살과 대세지보살)  

그 윗단은 우측에 아난존자 옆에, 제석천과 지장보살을 두고

좌측에 가섭존자, 대범천, 미륵보살과 대칭 시켜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근거는 대승사의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에서는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대칭되고,

제석천과 대범천이 대칭되어 있고,

또 제석천과 대범천이 합장(合掌)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약수암의 목조 탱화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맨 아래는 제장애보살대세지보살아미타관음보살금강장보살

그 위는 지장보살 제석천 아난존자 가섭존자대범천미륵보살이 된다.


산신과 독성


칠성탱





실상사 약수암의 목각탱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새로운 불상 조각의 한 유형이자,

1782년이라는 구체적인 조성 연대가 있어서 불상 연구의 중요한 기준작이 된다.

또한, 고려 시대 14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팔대보살의 도상이

조선 후기에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 표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광전에서 바라 본 요사채


약수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