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8. 00:03ㆍ국내 명산과 사찰
상주 노악산 남장사와 부속 암자 관음전
사불산 대승사를 탐방하고 상주 노악산 남장사로 향했다.
상주의 노악산(露嶽山. 725.4m)은 노음산(露陰山)으로도 불리며,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보은읍 방향으로 4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산세가 부드러운 산으로 상주시의 진산이다.
이곳 상주에는 남장사(南長寺), 북장사(北長寺), 갑장사(甲長寺),
승장사(勝長寺) 등 사장사(四長寺)가 있는데 노악산 중턱 산자락에 자리한 남장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7년(832년)에 진감국사(眞鑑國師:774~850년)가
북장사와 더불어 창건한 가람이다.
진감국사는 신라 후기의 승려(774~850)로. 속성은 최(崔). 법명은 혜소(慧昭).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者)로 중국 당나라에 가서 범패(梵唄)를 배우고 돌아와,
지리산에서 옥천사(玉泉寺: 현 쌍계사)를 창건하신 분으로 알려진 고승이다.
(본방 하동기행(2/5)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령탑비와 사산비명참조)
남장사는 특히 어산(범패) 불교음악의 최초 전래지로 알려져 있으며,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할 때는 사명은 장백사(長栢寺)였다.
남장사로 불리게 된 것은 1186년(명종 16) 각원(覺圓)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지은 이후라 한다.
@그 뒤 1203년(신종 6) 금당(金堂: 법당)을 신축하였고,
1473년(성종 4) 중건하는 등 신라 시대에 창건된 남장사는
고려 때까지는 번성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1635년(인조 13) 정수(正秀)가 금당 등의 중창을 시작으로
전각들은 세월과 더불어 증·개축을 통해 하나둘 복원되었으며,
복원된 전각들은 비교적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노악산 남장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보광전·금륜전(金輪殿)·향로전·
진영각·강당·일주문·불이문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관음선원(觀音禪院)과 중고암(中高庵)이 있다.
남장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990호 보광전 철조 비로자나불 철불상,
보물 922호 보광전 목각탱, 보물 923호 관음선원 목각탱,
보물 1635호 극락보전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상, 보물 1641호 남장사 감로왕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68호 일주문, 이밖에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된 석장승이 있다.
보물 제990호로 지정된 상주 남장사 철불좌상인 비로자나불이 땀을 흘리면 병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남장사의 전각은 일주문을 지나면 남장사 종각과 극락보전이 나오고
이어 설법전 계단을 오르면 보광전, 진영각, 교남강당, 보현당,
금륜정, 역성당 등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극락보전 오른편에 영산전이 있다.
상주 남장사 일주문(尙州 南長寺 一柱門)은 조선 시대의 건축물로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시기는 1889년(고종 26)에 다시 건립된 보광전(普光殿)보다는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잡석(雜石)으로 낮게 쌓은 축대 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양쪽에 놓고 세웠다.
건물의 특색은 양쪽 기둥 앞뒤로 모난 기둥을 붙여 세우고
다시 또 하나씩의 활주(活柱)를 고여서 중압을 받쳐 주고 있는데
그 주두(柱頭)가 용(龍)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단히 사실적이다.
정면 추녀 밑에는 '광서8년(光緖八年)'(1882)에 '노악산남장사(露嶽山南長寺)'란 편액은
해강(海岡) 김규진의 글씨다.
이 건물의 양식은 일자형에 정면 1칸(4m), 측면 1칸(2.6m) 형태의 3평으로서
전체적으로 건축 외형에서 균형감과 풍만감이 있으며
특히 구조적인 면을 고려한 까치발의 조각 수법이 특이하다.
<범종루>
이층누각으로 조성된 범종루에는 불전사물(佛殿四物: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갖추고,
그 아래 벽 좌우에는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과 청사자를 탄 문수보살 벽화가 있다.
범종루 계단을 오르면 바로 극락보전이다.
<극락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법당 앞에는 삼층석탑 1기와 2기의 석등과 수각이 있고,
법당 안에는 아미타 삼존불(보물 제1635호)과 삼장탱이 조성되어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제1635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139㎝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가 128㎝이며,
목조 대세지보살 좌상은 높이가 131㎝이다.
이 삼존좌상은 조성 원문을 통하여 1645년에 청허(淸虗) 등 6명의 화승이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불상 속에서 발견된 조성 원문에 따르면, 순치 2년(조선 인조 23, 1645)에
많은 사부대중이 발원에 참여하고, 지희(智熙) 스님의 증명 아래
청허(淸虛), 영색(英賾), 현욱(玄旭), 천휘(天輝), 나흠(懶欽), 법찬(法燦) 등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 조성을 주도했던 조각승 청허는
조선 시대 17세기의 대표적인 조각승인 청헌(淸憲)과 같은 인물로 추정된다.
(아미타불)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통견식의 착의 형식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 비례가 적절하며,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가락을 구부린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원통형 정상계주가 있고, 나발 사이에는 반달형 중앙계주가 있다.
얼굴은 비교적 넓은 방형으로서 뚜렷한 인중과 작은 입술에서 근엄한 모습이 나타난다.
넓은 이마와 부풀어 오른 눈꺼풀, 살짝 뜬 눈, 돌출한 코 등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체는 다부진 모습으로, 가슴이 편평하며 아랫배가 살짝 나와 있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무릎이 낮고 넓어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통견 형식으로 착용하였다. 내의는 가슴까지 올려 수평을 이루며,
왼편의 대의 자락은 발가락을 덮고 있으며, 오른편의 것은 부채살 모양의 주름으로 형식화되었다.
(대세지보살)
목조 대세지보살 좌상은 상호와 신체 비례, 수인, 착의법 등 형식적인 특징은 목조아미타불좌상과 동일하다.
그러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수인과 신체 비례, 상호 등이 아미타불상, 대세지보살상과 같지만,
착의법에서 차이가 난다. 비록 관음보살좌상이 통견형식으로 법의를 입었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곳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여러 명의 조각승이 일을 분담하여
여래삼존상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관음보살)
두 보살좌상의 세부 모습을 살펴보면,
정수리에 틀어 올린 보개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보발은 어깨에 닿아서 세 개의 원형을 이룬 후 다시 세 가닥으로 흘러내린다.
또한, 꽃문양의 귀걸이와 팔찌를 착용하였고, 목걸이는 하지 않았다.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청허가 조성한 불상 가운데
삼존의 형식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는 점 외에도
상호의 표현과 안정된 신체 비례 등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즉 조선 시대 17세기의 조각승 청허의 역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청허 유파에 의해 조성된 불상 중에서 다소 연대는 늦어나
조각적인 완성도가 가장 높은 불상이다.
이들 불상은 조각승의 이름과 조성 연대가 분명하여
조선 시대 조각사 연구의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삼장탱
삼장탱은 하늘, 땅, 지하 삼계(三界)를 제도하는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지보살(地持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묘사한 불화(佛畫)다. 이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 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로 확대시켜 나간 것처럼
지옥계의 주존(主尊)인 지장보살을 확대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삼장탱의 도상(圖像)은 조선 전기에서 나타나는데,
조선 시대 불화에 영향을 끼쳤던 명(明)나라의 수륙재(水陸齋) 그림에도 삼장보살이 등장하고는 있다.
이로 보아 삼장탱은 망자(亡者)의 혼(魂)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의 천장보살은 천부중(天府衆)을 거느리고 진주보살(珍珠菩薩)과
대진주보살(大珍珠菩薩)이 협시로 등장하며, 좌측의 지지보살은 지부중(地府衆)을 권속(眷屬)으로 삼고
용수보살(龍樹菩薩)과 다라니보살(陀羅尼菩薩)을 협시로 대동하고 있다.
그리고 우측의 지장보살은 왼손에 석장을 짚고, 오른손에는 보주(寶珠)를 쥐고 있다.
권속으로는 명부중(冥府衆)을 대동하고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로 배치되어 있다.
삼장탱은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탱화로
현재 전통적인 우리나라 사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는 탱화이지만
다른 탱화와는 달리 신앙의 표상으로, 혹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의미는 이미 잃은 지 오래이다.
<설법전>
범종루에서 보면 2층이고, 보광전에서 보면 1층이다. 계단을 오르면 보광전이 나타난다.
<보광전>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보광전은 처음에는 무량전으로 불렀으며 내부에 아미타불을 안치했던 곳이다.
그러나 극락보전이 본전으로 되면서 무량전은 보광전으로 편액이 바뀌었다.
법당 안에는 철불비로자나불(보물 제990호)이 모셔져 있고
후불탱으로 아미타목각탱(보물 제992호)이 봉안되어 있다.
보광전 좌측에 보이는 가람은 교남강당이다.
교남강당은 옛적 청천료(淸泉寮)로 불리었으며,
승려만이 아니라 상산 선비들의 문회, 시회의 공간이 되어 많은 시문을 탄생시킨 건물이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990호.
상주 남장사 보광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상 뒤 원광인 광배(光背)가 없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다.
크기는 불상 높이 133㎝, 머리 높이 34㎝, 어깨 폭 58㎝, 무릎 폭 103㎝이다.
온화한 얼굴에 길쭉한 신체 비례, 주름 간 간격이 넓지만 부드러운 옷 주름, 둥근 조형감 등이 특징이다.
특히 상반신이 길고 어깨와 무릎이 좁아 신체가 길어 보이는 비례를 보인다.
손 모습은 지권인으로 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좌상 같은 수인을 취하고 있다.
왼손이 오른손을 감싸고 있는 이런 좌권인 수인은 주로 조선 후기 작품에서 보이지만
통일시대의 작품에서도 나타나 아직 명확한 그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다.
머리에는 육계, 중간 계주, 정상 계주가 없는 점이 독특하며 나발을 촘촘히 표현하였고
얼굴과의 경계선인 이마선은 일직선을 이룬다. 작은 얼굴에는 기다란 눈과 귀,
오뚝한 코, 입꼬리가 올라간 입술 표현으로 온화하면서도 단아한 인상을 준다.
착의법은 통견식 대의이며 안에 승각기가 보이며 군의는 매듭끈으로 묶어 고정하였다.
대의는 목 밑에서 V자형으로 굵직하게 접혔는데
팔 아래로 흘러내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옷자락이나 겨드랑이 아래로 U형의 옷 주름과 대조적이다.
길쭉한 신체 비례는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천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15세기 불교 조각의 특징이며 V자형 목깃과 겨드랑이 아래 접힌 U형의 옷 주름은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과 같은 통일신라시대 철불에 나타나는 요소로서 복합적인 특징을 보인다.
철불임에도 외면에 돌출된 분할선이 확인되지 않은 점은 독특한데, 앞으로 면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작품이다.
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유행했던 철불의 전통을 이어주는
조선 시대의 유일한 철불 사례이다. 철불임에도 단아하고 부드러운 얼굴 표현,
둥글고 부드러운 조형 감각이 우수한 작품이다.
@보광전의 비로자나 철불상은 나라에 심한 가뭄이나
병란의 위기가 닥치면 땀을 흘린다고 상주 향토지 상산지에 기록돼 있다.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제922호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후불탱으로 봉안된 작품이다.
보물 제922호. 높이 236㎝, 두께 10∼12㎝, 너비 226㎝이며,
불화와 불상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목각탱이라고도 불린다.
아미타를 주제로 한 목각탱이 걸린 보광전은 원래 무량전으로 아미타를 봉안한 도량이었으나,
현재는 편액명이나 주존불의 도상에서 화엄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남장사보광전중건여단청기(南長寺普光殿重建與丹靑記)」를 통해
1891년 중건 불사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의 조성과 관련된 기록은 없지만,
1675년 조성된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구도와 형식, 조각 기법 등이
유사하여 제작 시기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엽으로 추정된다.
유리벽 안에 모셔진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중심부를 이루는 7매의 장방형 판목과
상부 1매를 합친 총 8매의 나무판으로 이루어졌다.
중앙에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를 배치하고, 상하 4단으로 나뉘어 아래에서부터
사천왕상, 8대 보살과 범천·제석천, 10대 제자가 좌우 대칭 구조를 이루며 나란히 있다.
가장 윗부분은 본존불의 머리에서 뻗쳐나가는 서운과 천개가 장식되었고
그 아래로 조각된 존상들 사이에는 연봉우리, 연잎과 넝쿨들로 구획하며 빈 곳을 메웠는데
연화세계에서 아미타가 설법하는 모습을 극대화한 것이다.
아미타여래상은 불꽃무늬가 장식된 배 모양의 광배를 지니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으며
머리와 육계의 불분명한 경계, 방형의 큰 얼굴, 변형편단우견식 대의와 꽃잎 형으로 주름 잡힌 승각기,
간결한 옷 주름 등 전형적인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인다.
8대 보살은 본존을 에워싸듯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는데
1단에 2구, 2단에 2구, 3단에 4구씩 배치되었으며 모두 꽃잎처럼 생긴 독특한 광배가 표현되었고
신체 비율, 옷과 얼굴 표현 등이 본존불과 닮았다.
본존의 좌우에 앉아 있는 관음과 대세지보살은 각각 연꽃 가지 위에 경합, 버들가지를 들었다.
나머지 보살들도 연봉우리와 같은 지물을 들었는데,
관음과 대세지보살의 옆에 있는 보살 한 구는 합장인을 취하였고
다른 한 구는 보살과 다르게 천의와 복갑을 입고 있어 범천, 제석천으로 추정된다.
보살과 범·제석천의 외곽으로 10대 제자가 합장하거나 지팡이, 연봉우리,
여의와 같은 지물을 든 모습이며 무릎을 꿇거나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장 아랫단의 오른쪽에는 보당과 탑을 든 서방 광목천왕,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 증장천왕,
왼쪽에는 장검을 든 동방 지국천왕과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을 좌우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이 사천왕들의 표정은 다채로우며 증장천왕과 지국천왕은 투구,
광목천왕과 다문천왕은 보관을 써서 달리 표현되었다.
(칼을 든 동방지국천왕과 비파를 든 북방다문천왕)
아미타의 권속으로 등장하는 24구의 존상을 네 단으로 나누어 나란히 배치한 구도와
단신의 신체 비례 그리고 광배와 좌우 일렬로 배치된 사천왕상 등이
1675년의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비교된다.
(대승사 목각 아미타여래설법상)
조선 후기의 목각탱으로 보물급으로 지정된 6기가 있다.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7세기 말, 보물제922호),
문경 사불산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75년, 국보제321호),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84년, 보물 제989-2호),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7세기 말경, 보물제748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94년, 보물제922호),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782년, 보물제421호) 등이 있다.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아미타극락구품도를
조각으로 옮긴 회화이자 조각의 특징을 지닌 목각탱이다.
평면성과 입체감이 공존하는 목각탱은 대부분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에서 조성되었는데,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제작되었던 독특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6점 정도만 남아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금륜전과 산신각
금륜전과 산신각의 2개의 편액이 붙어 있지만
법당은 일반가람의 삼성각과 같이 중앙에 치성과여래, 좌우에 독성과 산신을 봉안했다.
다향각
남장사 후문이다. 편액은 금난방(禁亂榜)으로 되어 있다.
주차장이 바로 이 아래에 있어 후문으로 들어가 극락보전과 종각 일주문까지 역으로 움직여야 한다.
포스팅은 편의상 일주문에서 시작했다.
탐방을 마치고 후문으로 돌아와 남장사의 부속암자인 관음전의 목각탱을 보러 가기 위해
길을 찾았지만 안내판도, 물어 볼 사람도 만나지 못해
한참 헤매다가 포기할까 망설이다가 대충 짐작으로 더듬어 간 길이 요행히도 관음전 가는 길이였다.
관음전 경내는 해탈문으로 시작한다.
@남장사 부속암자 관음전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인 남장사(南長寺)의 부속 암자다.
통일신라 말기에 진감(眞鑑)이 창건하였고, 그 뒤 중건 및 중수를 거듭하다가,
1668년(현종 9) 의익(義益)이 중창하였으며, 1752년(영조 28) 환응(喚應)이 조실(祖室)을 중건하였다.
1797년(정조 21) 보인(寶印)이 관음전을 중건하였고, 1802년 청파(靑坡)가 조실을 중건하였으며,
1878년(고종 15) 치능(致能)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관음전을 비롯하여 2층의 누각과 승방·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관음전 내에는 관세음보살좌상과 목각탱화·청동반자(靑銅飯子) 등이 있다.
관세음보살은 토불이며, 목각탱화는 본래 천주산 상련암(想蓮庵)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을
1819년에 옮겨온 것으로서 제작연대는 1694년(숙종 20)이다.
관음전의 가람들은 아주 단출하다. 요사채를 비롯하여 2개의 전각뿐이다.
암자이면서 선원이기 때문에 가람에는 별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모양이다.
관음전의 목각탱은 이 전각에 모셔져 있다.
사전에 종무소를 먼저 들려 양해를 구했더니 사진촬영을 엄격히 금한다고 거절당했다.
초상권으로 등록하면 사찰이 보유한 목각탱의 소유권까지 넘어간다나..
황당한 소리에 인연이 닿지 않음을 직감하고 돌아서 나왔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상주까지 내려와, 그것도 무더운 날씨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굽은 몸으로 간신히 찾아간 관음전인데...
동불원을 비롯하여 40여년 불자의 인연도 이렇게 허망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무더운 여름날씨에도 스산한 한기가 온 몸으로 파고든다.
하여, 관음전의 목각탱은 생략할까 하다가
그래도 6대 목조아미타탱화 중 하나라는 생각에
필자와 같이 극락정토의 꿈을 꾼다면
그 길을 가는데 작은 오솔길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려놓았다.
아래 사진들은 펌한 것이다.
보물 제923호로 지정된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관음전 관음보살상의 후불탱으로 봉안된 작품이다.
흔히 목각탱이라 부르며 이는 불화와 불상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관련 기록으로는 「尙州露岳山觀音殿佛像及後佛木幀改金記(상주노악산관음전불상급후불목정개금기)」가 있고,
『天柱山北長寺事蹟記(천주산북장사사적기)』에는 더욱 확실한 내용이 남아 있다.
즉, “木幀後佛甲戌年造成化主僧熙善也(목정후불갑술년조성화주승희선야)”라 하여
목탱후불이라는 명칭과 함께 갑술년인 1694년 화주 희선에 의해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1819년 천주산 상련암에서 남장사로 이안되었음도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의 조사에서 목각탱 뒷면에서 ‘康熙三十四年乙亥(강희삼십사년을해)’라는 묵서가 발견되어
1695년이라는 정확한 제작 연대가 다시 밝혀졌다.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높이 162㎝, 너비 195㎝로
중심부를 이루는 5매의 판목과 상, 하부 각 1매를 합친 총 7매의 나무판으로 이루어졌다.
관음전의 이 목각탱은 전술한 6대 목각탱 중 가장 단순한 배열을 하고 있다.
중심의 3판목에는 불, 보살을 2단으로 배치하고 좌우 판목에는 나한상과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본존불은 아미타여래이며 그 옆으로 4대 보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사천왕을 조각하였다.
윗부분에는 아미타여래의 두광에서 뻗어 나가는 서광과 그 양 끝에 타방불을 3구씩 조각하였고,
아랫부분에는 커다란 연잎과 연꽃, 연봉우리를 좌우로 넓게 배치하여
아미타가 서방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아미타상은 배 모양의 광배를 지니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으며
머리와 육계의 불분명한 경계, 방형의 큰 얼굴, 변형통견식 대의, 간결한 옷 주름 등
전형적인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인다. 좌우에 배치된 네 구의 보살들은 얼굴이나
옷 표현 등이 본존상과 유사하며, 2단으로 배치되었다.
앞줄의 두 보살상은 각각 연꽃 가지 위에 놓인 정병, 연꽃 가지를 받쳐 들고 있으며,
그 뒤의 두 보살상은 모두 합장을 하고 있다.
(대승사의 목각탱과 같은 구도라면 합장한 두 보살은 제석천과 대범천으로 추측된다.)
노인의 모습인 가섭존자와 젊은 스님의 아난존자 역시 합장인을 취하였는데 늙고 젊음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목각의 네 가장자리에는 부릅뜬 눈에 갑옷으로 무장한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본존 오른쪽의 위, 아래 2단으로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 증장천왕,
보당과 탑을 든 서방 광목천, 그 왼쪽에는 장검을 든 동방 지국천왕과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이 조각되었다.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아미타극락회상도를 조각으로 옮긴 후불 목각탱으로,
조선 시대에 7점 정도만 남아 있는 희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목각탱의 내력을 담은 기록을 통해 1694년에 조성되었고
상을 이안(移安)한 내용 등이 담겨 있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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