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401호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2019. 4. 8. 22:02문화재

보물 제1401호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忠州 鳳凰里 磨崖佛像群)

 

마애불은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후 많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여래가 군집(群集)하고 반가사유상을 한 마애불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단지 2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197812월에 충주마애불상군이 발견됨으로 3곳이 되었다.

특히 충주봉황리마애불상군은 한강 유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마애불상군이라는 점에서

삼국시대 특히 백제 불교 전래를 이해하는데 학계에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국보 제199호 지정된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과

국보 제84호로 지정된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이며,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은 보물 제14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애불상군은 높이 170, 너비 약 500의 암벽에 불상·보살상·공양상이 부조되어 있고,

약간 간격을 두고 왼편에는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5구의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어 특이한 배치를 보인다.

이 불상군에서 중심이 되는 불상은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을 취한 불좌상과 반가사유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삼국시대에 유행한 미륵신앙의 미륵 상생 및 하생신앙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비슷한 구성을 보여주는 예로는 국보 제199호로 지정된 경주 근교의 단석산신선사마애불상군이 있다.

 

 

국보 제199호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78121일 가금면 봉황리 중턱에서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던

삼국시대에 조성된 이 마애불상군은 봉황리 내동(안골마을) 햇골산 중턱,

높이 약 80m 지점에 깎아지른 절벽 위에 정면 동쪽을 향해 모두 8구의 불상들이 양각되어 있는데

 본존불상이 삼국시대에 유행하던 반가사유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마애반가사유상은 지금까지 경주 단석산 신선사의 마애불과

충남 서산의 3존 마애불상의 2개의 예가 있을 뿐이며

 한강 유역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방 서산용현리마애삼존불 참조)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봉황리 마애불상은 햇골산 동쪽에 높이 1.7m 너비 약 5m의 널따란 바위에

 한 줄로 나란히 8개의 불상을 조각하였는데 1.4m 높이의 반가사유상은

양쪽에 협시보살을 거느리고 있으며 왼쪽에는 따로 3존보살 불상이 배치되어 있고

 왼쪽의 끝에 여래좌상이 있고 그 옆에는 여래상을 향하여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에 보주를 받치는 보살의 측면상이 조각되어 있다.

 

 

 

반가사유상은 얼굴이 파손되어 있고, 세부표현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높은 대좌 위에 어깨를 펴고 바로 앉아 있는 자세가 꼿꼿하고 당당하다.

보발이 어깨 위로 늘어져 있고, 옷자락이 대좌를 덮고 있다.

반가상의 왼쪽에는 1, 오른쪽에는 3구의 보살이 있고,

뒤에서 상체만 내밀고 있는 상도 있어서 배치가 매우 특이하다.

 

 

 

주존불이 되는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이후론 잘 만들지 않던 불상으로

한쪽 다리를 가부좌 자세에서 풀어 내리고 한쪽 손은 턱에 대고 깊이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말하는데

이 반가사유상은 머리가 떨어져 나갔으나 복련의 대좌 위에 걸터앉은 형태이고

천의 자락과 구슬 줄인 영락 등으로 장식하고 있어 조각 양식이 아주 고식임을 짐작게 한다.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내린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인상을 짓고 있는데

손은 비교적 사실적인 편이다. 왼 다리는 세웠고, 오른 다리는 꿇어앉아 무언가를 바치는 공양상이다.

 

 

 

반가사유상 옆의 협시보살들은 높이가 0.7m~1.2m로서 머리에는

 산모양의 삼산화관을 쓰고 있으며 좌측의 여래좌상은 높이 0.61m로서

어깨가 당당하고 눈두덩이 붓도록 조각하고 불상의 밑바탕이 연꽃으로 돌려져 있는 등

삼국시대 금동불상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8구의 불상이 새겨진 것을 보는 순간 조각이 아니라

마치 바위에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반가사유상이 있는 마애불 위쪽에 또 다른 하나의 큰 마애여래상이 절벽에 있다.

큰 절벽의 전면에 걸쳐 고부조(高浮彫 :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

큰 마애불을 새긴 것이다.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이 마애불좌상은

무릎이 넓고 높아 특이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머리는 나발의 머리칼에 육계는 얕으며, 얼굴은 둥글지만 네모난 모습에 가깝다.

·코는 길고 가늘며 입은 큰 편인데 고졸한 미소를 띠고 있다.

 

 

 

 

 

 

 

 

 

 

 

상체는 사각형에 가까우면서 다소 평판적인데 군데군데 파손이 있다.

하체의 무릎은 높고 넓어 신체 전체가 삼각형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머리 주위로 연꽃대좌에 묻힌 듯 앉아 있는 화불(化佛)들이 여러 구 새겨져 있는데,

연화생(蓮花生)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러한 수법은 봉화북지리 마애불상과 유사한 면이지만 이 불상이 좀 더 경직된 듯한 인상이다.

(본방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참조)

 

 

국보 제201호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충주 봉황리 마애여래불상군의 이러한 반가사유상은

죽령을 넘어선 한강 유역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큰 의의가 있지만

충주가 옛 고구려의 국원성으로 불렸고 남하 정책의 전진기지였던 이곳에서

 삼국시대의 마애불상이 발견된 것은 대륙으로부터 남쪽으로 문화 전래라든지

 불교의 전래경로를 규명하는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 분명하며

 삼국시대에 있어서 충주가 전략상 교통상의 중요지점은 물론

문화전파의 중계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1000여 년의 신비를 머문 채 햇골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위의 자료는 불교일보와 위키백과를 참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