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기행 (4/6) 암마이산에서 은수사(銀水寺)로

2018. 11. 28. 00:36국내 명산과 사찰



마이산기행 (4/6)  암마이산에서 은수사(銀水寺)



마이산기행 제3부에 이어 제4부는 암마이산에서 천왕문을 거처 은수사로 이어진다.  

암마이산에서 천왕문까지는 체 10분도 소요 되지 않는다.

천왕문(天王門)이라고 하여 특별한 어떤 대문인줄 알았는데

마이산의 천왕문은 그런 문()이 없고 태조 이성계가 꿈에 하늘로부터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상징하는 금척(金尺)을 받은 후

이곳에 올라 왕이 하늘로 올랐다는 의미에서 천왕문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천왕문 전경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상징한 조형물이다.









@지질학조사에 의하면 마이산의 지질은 약 1억 년 전후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것으로

자갈, 모래 등으로 구성된 역암 덩어리로 된 산이라고 한다.

마치 자갈과 시멘트를 함께 부어 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란 곧 공룡이 활동하는 시대가 된다.

그때의 진안 일대는 산어귀의 호숫가로 산에서 침식되어 돌과 모래가 바로 쌓이는 곳이었다고 한다.

1억 년 동안 그 쌓인 두께가 자그마치 1500m나 된다고 하며,

땅속 깊이 들어가 바위가 되었다가 다시 위로 솟는 지각변동을

8번 이상 반복하여 지금의 마이산이 되었다고 한다.

 


천왕문에서 은수사로 내려가는계단길




@은수사(銀水寺)는 개인사찰로 지금은 태고종 소속으로 되어 있다.

은수사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는데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正明庵)이라 하였다.

그러나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마이산 아래

진안읍 단양리 사양동에 살던 이규헌(李圭憲:1853~?)이라는 사람이 중창하면서

사명(寺名)도 은수사라 개명했다. 은수사는 1970년경 처음 사찰로 등록할 때는

 조계종에 전통 사찰로 등록되었으나, 조계종단과 성격이 맞지 않아

1985년경 당시 주지인 황혜수스님이 태고종으로 종적(宗籍)을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적광전>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이전에 있던 약사전과 극락전을 함께 수용한 것으로 정면 5, 측면 3칸 맞배지붕이다.

법당에는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협시로 모셨다.

그리고 우측 한 편에 동자상을 조성하고 그 밑에 반가미륵상과 포대화상, 나한들을 모시고 있다.


법당에는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협시로 모시고 있다.




칠성탱


  

후술할 탑사 역시 태고종 소속인데 진안 지역에 유독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 많은 이유에 대하여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세워진 근현대의 불교 사찰로는 탑사, 보흥사, 은수사, 남암,

약수암, 심원사, 운봉사, 구암사, 은선암, 광명암, 마이사, 천황암, 법장사,

영각사, 수신사, 금영사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선 사찰들은

 주로 태고종 소속인 경우가 많고,

사찰의 규모가 작고 아직 인법당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다수 있다.

 또한, 기복적이고 무속적이고 민간 신앙의 요소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은수사(銀水寺)란 이름은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 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대적광전(大寂光殿), 무량광전(無量光殿),

태극전(太極殿), 산신각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대가람으로 도약을 기약하고 있다.




 

이 은수사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법고(法鼓. 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다.

한편,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 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 (천연기념물 380),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이다.

춘향전에 보면 이 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

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청슬이’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靑實梨)라 한다.

돌배나무 중에서 특히, 맛좋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청실배나무. 개량배에 밀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청실배나무는 이성계가 배를 먹고 뱉은 씨앗이 자라서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청실배나무 아래 약수터에는 정화수를 떠놓은 스테인리스 그릇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곳에 정화수를 떠놓으면 겨울에는 정화수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어붙는 역()고드름이 어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마이산 계곡이 협곡이라 바람이 솟구치면서 일어나는 마이산의 진풍경이기도 하다.


<무량광전>

무량광전(無量光殿)은 정면 5,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모시고 있고 그 옆에 지장보살을 따로 모시고 있다.

 

아미타불 삼존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삼존불 오른쪽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아미타불삼존불(대세지, 아미타, 관음)


지장보살




신중탱


용왕상 옆은 샘으로 섬진강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용왕상 쪽에서 바라본 무량수전과 암마이산




산신당


산신당은 산신과 칠성신들을 모셨다.


















대적광전 뒤는 숫마이봉이다.

숫마이봉 중간에 드러난 상이 묘하게도  사람이 팔을 벌린 형상을 하고 있다.


































<태극전>

또한, 태극전에는 조선 이태조(李太朝)와 마이산에 얽힌

설화들에 관한 자료인 <금척수수도(金尺授受圖)>라 부르는 모사된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단군 







@금척수수도(金尺授受圖)는 일명 몽금척도(夢金尺圖)라고도 부른다.

조선 건국 설화를 내용으로 한 상상도이다. 이는 불교를 국시로 삼았던 고려 시대에

구산 팔 해 중의 하나로 섬겨져 온 마이산의 신앙적 위치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이곳에서 머물며 기도를 올릴 때

 제일봉 아래의 천연수가 은수(銀水)라 하여 즐겼다는 전설에 따라

사찰 이름을 은수사(銀水寺)라고 불렀다.

금척 수수도는 은수사의 태극전에 봉안되어 있는데,

이성계가 미시에 이미 백일기도를 통해 꿈속에서 마이산 산신으로부터

새 왕조 창업의 천명을 받았다는 조선 건국 설화를 내용으로 한 상상의 그림이다.

 1983년에 한국화가 강장하가 그린 작품이다.

 

[형태 및 구성]

금척수수도는 가로 1.50m, 세로 2.10m이다.

화면의 왼편에 머리에 두광을 지닌 흰색 도포를 입은 신인이 석장을 짚고

화면 오른편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금척을 주는 장면이다.

앉아 있는 사람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이다.

이성계는 청색의 두건과 도포를 입고 정중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성계가 있는 쪽은 소나무가 그려져 있고 신선은 물 위에 서 있다.

화면의 중앙과 오른편에 속금산이 청색과 백색, 황색으로 표현되었고

화면의 상부에 구름이 표현되어 신비함을 더하고 있다.

이성계가 신인(神人)에게 금척을 받았다는 내용을 가지고 상상으로 그린 이러한 그림은

조선 시대 안견이 안평 대군의 꿈 내용을 듣고 그린 몽유도원도와 같은 상상도이다.


암마이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