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기행(3/6) 비룡대에서 암마이산으로

2018. 11. 23. 23:53국내 명산과 사찰




마이산기행(3/6)  비룡대에서 암마이산으로


마이산은 두 개의 큰 산봉우리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으므로 용출봉(湧出峰)이라 하였고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였으며,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렀으나

조선 시대 태종이 남행(南幸)하여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지금은 속칭으로 동쪽을 숫마이산(680m), 서쪽을 암마이산(686m)이라고도 한다.

현재 암마이산은 등산로가 열려 있지만, 숫마이산은 등산로가 닫혀 있다.

암마이산을 오르는 최단거리는 북부주차장에 오르는 코스다.

남부 주차장에서 오르면 비룡대와 봉두봉을 거쳐야 한다.

 

@진안읍 내 어느 방면에서나 눈에 띄는 마이산은 이름이 철에 따라서 불리는 네 가지 이름이 있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 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다.


 

@말의 귀 모양을 닮았다는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넓게 펼쳐져 있으며,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마이산의 두 산봉우리는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여

진안읍 쪽의 북 사면과 마령면 쪽의 남 사면은 사면의 향()에 따라서

기후지형학적(氣候地形學的) 지형형성작용에 차이가 있다.

남사면에는 지름 수에서 수m에 이르는 풍화된 구멍인 타포니(taffoni)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 지름이 큰 까닭은 역암의 메트릭스(metrix: 자갈 사이의 충진물질)인 세립물질이 풍화되어

 역이 빠져나감에 따라 나타난 것이다.


 

@이 산 일대의 자연경관과 사찰들을 중심으로 197910월 전라북도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깎아지른 듯한 수마이봉 기슭의 숲속에 은수사(銀水寺)라는 절이 있고

그 밑에 또 다른 명물인 탑사(塔舍)가 있고, 탑영제 쪽에는 금당사와 고금당이 있다.




봉두봉에서 조망한 탑영제의 풍경


산위에서 바라보니 금당사 단풍도 아름답다.


지나온 비룡대도 조망한다.






고금당도 조망해 보고




암마이봉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봉두봉에서 암마이산 가는 길은 좁고 경사가 심하다.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해 겨울철 이 코스 등산은 힘들것 같다.


봉두봉에서는 암마이봉의 뒤편 이 길을 돌아서 올라가야 한다.


암마이산 가는 길에 뒤돌아 본 풍경이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이제 암마이봉 계곡으로 내려가 다시 올라 가야 한다.


암마이봉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의 단풍






숫마이봉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암마이봉 오르는 길. 좁은 가파른 비탈길에 자갈 너들길이다.


암마이봉을 오르면서 계속 숫마이봉이 조망된다.


암마이봉을 오르면서 조망한 진안읍 





기이한 봉오리가 하늘 밖에서 떨어지니

쌍으로 쭈뼛한 모양이 말의 귀와 같구나.

높이는 몇천 길이 되는데

연기와 안개 속에 우뚝하도다.

우연히 임금의 행차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이름이 만년에 전하네.

중원에도 또한 이름이 있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비슷하도다.

천지조화의 교묘함은 실로 끝이 없으니

천지가 혼돈했던 처음 일을 생각하도다.

~ <점필제(佔畢齊) 김종직(金宗直: 1431~1492)> ~


<숫마이봉의 화엄굴>

화엄굴은 마이산의 중턱 천왕문에서 수마이봉 쪽으로 100m가량 올라간 곳에

암벽의 침식 활동으로 형성된 자연 동굴이다. 수직의 절벽 면에는 타포니(tafoni)가 형성되어 있는데,

타포니가 점점 커지면 암벽의 붕괴로 이어져 결국 화엄굴과 같은 자연 동굴이 형성된 것이다.



입구는 높이 약 15~17m, 폭약 4~5m 정도이다. 동굴의 안쪽은 깊지 않으나 막다른 곳 아래에는 물이 고여 있다.

옛날에는 신비의 약수라고도 하여 마시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먹을 수 없다.

화엄굴에 설치된 입간판을 보면 화엄굴 내에서는 사시사철 약수가 흘러나오며

 24절기 중 춘분과 추분에만 약수까지 햇빛이 비치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고

이 약수를 마시고 치성을 드리면 수마이봉의 정기를 받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라고 적혀 있다.



마이산에는 예로부터 서낭당 또는 서낭 신앙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화엄굴이 만약 탑사와 관련이 있다면 불탑의 기능을 할 수도 있으나,

화엄굴은 민간 신앙과 불교 신앙이 만나는 장소라는 데 더 의의를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연화(蓮花)와 화엄(華嚴)의 두 경전을 이 굴에서 얻어 중대사(中臺寺)에 두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여지도서에는 경전을 금당사에 두었다고 하여 다소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으나,

굴에서 경전을 구했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옛 기록에는 굴의 이름이 화암굴(華巖窟)’로 실려 있기도 하나 ()’()’을 잘못 적은 것이다.


암마이봉 정상이다. 별도 구조물은 없고 표지석과 돌탑만 한 기 보이다.




내려가면서 바라 본 숫마이봉이다. 암마이봉은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정상에서 내려 가는 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길이 좁고 가파르기 때문에 그렇게 배려하고 조성한 모양이다.







<마이산에 얽힌 전설>

아득한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천상에서 쫓겨 난 천신(天神) 부부 내외가 이곳에 내려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참회하며 어느 날인가 자신들의 죄를 사면받아

하늘나라로 돌아갈 날이 있을 것으로 믿고 참회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세월을 흘러 두 아이까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천상계로부터 승천의 허락이 내려와 부부 천신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빨리 승천하고 싶은 마음에 남편 천신은 아내 천신에게 바로 승천하고자 말했지만

아내 되는 여천신은 지금은 칠흑 같은 밤인데 서둘 것이 뭐 있습니까. 새벽 일찍 승천합시다. 하는 것이 아닌가.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해서 새벽에 승천하기도 했다.

 새벽이 되자 승천을 할 준비를 마치고 막 하늘을 오르려고 하는 데

 때마침 마을에서 새벽 치성을 드리러 온 아낙네가 이 승천하려는 두 천신을 보고 기겁을 하고 소리를 쳤다.

천년의 수행을 거쳐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했던 뱀이

사람들에게 들켜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었다는 전설처럼

 두 천신은 아낙네의 비명에 부정을 탔는지 몸이 굳어져 그토록 기다리던 승천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져 지금의 암, , 마이봉이 되었다고 한다.

 

승천하지 못해 화가 난 남편 천신은 두 아이를 아내로부터 빼앗아 버리고

아내를 홀대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의 수마이봉은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는 데 반하여,

암마이봉은 수마이봉을 등지고 앉아 고개를 떨군 모습을 하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제 천왕문으로 내려가 은수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