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추조사(秤錘祖師) 이야기

2011. 2. 9. 01:08경전속의 우화들

 

                                                                                 <심천홍법사 와불>

 

칭추조사(秤錘祖師) 이야기

 

중국 운남(雲南)에 칭추조사(秤錘祖師)란 분이 있었는데

명나라 때 사람으로 성은 채(蔡)씨이고 곤명(昆明)의 소동문(小東門) 밖에서 살고 있었다.

채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답과 재산이 많아 부족함이 없었지만 검소하게 살았다.

틈틈이 채소를 가꾸어 시장에 내다 팔아 용돈까지 넉넉하게 챙기면서 살았다.

그런데 채 씨의 아내는 용모가 아름다웠지만 게으르고, 놀고먹기만 좋아했다.

거기다 얼굴값 한다고 끼가 있어 남편 몰래 동네 건달과 눈이 맞아 바람까지 피우곤 했다.

채 씨는 비록 그 사실을 알았지만 모른는 체 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점점 간이 커진 아내는 남편이 채소를 팔러 시장으로 나기기만 하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아예 그 건달을 집으로 데려다 놓고 놀아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채 씨는 일찍 일을 마치고 술과 고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건달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아나든 아내는 뜻밖에 일찍 돌아온 남편을 보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머지 건달을 침대 밑에 숨기고 남편을 맞이했다.

채 씨는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만들었다.

그의 처도 시치미를 뚝 떼고 남편을 도왔다.

음식이 다 되자 아내는 두 사람분의 수저를 놓았다.

그러자 채 씨가 하나 더 놓으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우리 둘뿐인데 웬 수저를 세 사람 분을 놓아요?」

「응, 내가 손님 한분을 초대했거든.」

아내는 더 말을 잇지 않는 게 좋겠다 싶어 더 묻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가자 채 씨는 점잖게 말했다.

「밑에 계신 분 나와서 식사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내심 불안해하던 아내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시치미 뚝 떼고 모르쇠로 나가렸다 사태를 직감하고는

「애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하는 생각으로 침대 밑에 숨어있는 그 건달을 불러냈다.

침대 밑에서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나온 건달. 그런데 호통을 칠 줄만 알았던 남편 채 씨가 술을 권하지 않는가.

「혹, 이잔에 독을 타서 나를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난 건달은 잔 받기를 주저주저하자 채 씨가 먼저 잔을 마시자 그때서야 잔을 받았다.

냉랭한 분위기였지만 술과 안주로 몇 순배 돌리고 나서 상을 물리더니

채 씨가 건달에게 머리를 땅에 대며 삼배를 올리지 않는가.

그리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좋은 인연을 만났습니다.

제 처는 젊고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데 당신이 돌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보답으로 저의 모든 전답과 처를 당신에게 드릴 테니 부디 받아주십시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요절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득지인데 재물과 자기 여인까지 내주겠다니...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나를 떠 보는 것인가?

이리저리 생각을 짜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무슨 낭패를 당할지도 몰라

그저 아연해 있는데 채 씨가 칼까지 드리대면서 거절하면 죽이겠다고 윽박질렀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미친 소리같지만 손해될 것도 없어 못이기는 척 수락해도 될 듯도 싶었다.

마음은 어찌하든 빨리 이 장소를 모면해보고 싶어 그러겠다고 건달은 고개를 끄득끄득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채 씨는 어젯밤 자기 말대로 모든 것을 두고 홀몸으로 집을 나와

장송산(長松山)으로 가서 서림암(西林庵)에서 출가했다.

그리고 그 암자에서 틈틈이 채소농사를 지어가면서 일심으로 수행에 수행을 쌓아갔다.

공부에 진전이 있어는 지 마침내 한 소식(깨달음)을 얻었다.

 

한편 밤길에서 횡재한 격으로 재물과 여인까지 얻은 건달은

옛습성 그대로 채 씨의 재산으로 호의호식으로 질탕 놀고먹는 바람에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얻은 아내까지 구박을 주더니 끝내 내쫓고 말았다.

쫓겨난 채 씨의 마누라는 후회막급이지만 이미 저질은 자기의 업을 어찌할 수 없는 일.

그래도 믿고 의지할 곳은 전 남편이라 생각하고 울며 용서를 구하면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받아주겠지 하는 가느린 희망을 안고 채 씨가 늘 즐겨 먹든 곤양(昆陽)의 금사잉어를 요리하여

서림암의 채 씨를 찾아갔다.

 

채 씨는 그의 아내가 들고 온 금사잉어를 받고는

<그대가 주는 것이니 받기는 받지만

이 고기는 내가 가지고 가서 방생(放生)하겠네.> 라고 했다.

그의 처는 놀라서

「 이 금사잉어는 귀한 고기이기만 하지만 이미 삶아버려서 발생을 못합니다.」

라고 했다. 그런데 채 씨가 그 고기를 강물에 놓아주자 다시 살아나지 않는가.

 

지금도 곤명의 흑룡담(黑龍潭) 고적(古蹟)에는 이 고기(금사잉어)가 살고 있다고 한다.


....

 

여기 인용된 고사는 속인(俗人)이었지만 재물, 처자식, 부귀 등을 놓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도를 닦아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전장(典章)에 나온 이야기를

중국의 허운(虛雲:1840~1959)선사가 <방편개시(方便開示)>에 인용한 이야기로

여시아문에서 대성스님이 옮겨 논 것을 축약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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