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은 똥막대기이다.

2017. 12. 17. 23:48조사어록과 잠언


(도포입고, 썬그라스 끼고, 망또 두른 산타/포천 허브랜드에서)


불법(佛法)은 똥막대기이다.

 

옛적 밭농사는 거름을 측간의 변()을 이용했다.

가세가 궁한 운문선사가 어느날 밭에서 거름을 줄려고 똥통을 메고

 밭고랑 사이에 내려놓고 똥통을 막대기로 휘휘 젓고 있는데

어느 한 중이 불쑥 나타나 운문선사에게 묻는다.

불법(佛法)이 무엇입니까?

막대기로 똥통을 젓고 있던 운문선사는 막힘없이 바로 말하기를

「마른 똥막대기(乾屎橛)이다.

 

불법(佛法)이 똥막대기라. 사족(蛇足)이 필요 없는 직답인가.

운문(雲門)선사는 중국 당나라 말기의 선승(禪僧)(?~940)으로

중국의 선종(禪宗), 오가(五家)의 하나인 운문종의 창시자이다.

그런 그가 불법(佛法)은 똥막대기라 했으니 어찌 할꼬.

선종(禪宗)은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오도(見性悟道)를 중심 가르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교종과 비교되며,

그래서 참선과 수행을 중심으로 한다. 그리고 그 가르침 중에서 <노동>을 중시한다는 점이 또 다른 특징이다.

당나라의 고승 백장선사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선종에서는 노동을 수행의 일종이라고 보고,

수행자가 직접 일을 해서 자급자족하는 것을 중시했기에 운문선사 또한 그래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일대 종사가 불법은 똥막대기라 했으니 그 숨은 뜻이 있을텐데..



 

이 이야기는 무문관(無門關) 21칙에서 나오는 건시궐(乾屎橛)이란 화두인데.

원문(原文)은 보면:

雲門屎橛(운문의 똥막대기)

雲門因僧問 如何是佛 門云乾屎橛

@():, (): 말뚝, 그루터기

 

운문화상에게 한 중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운문이 대답했다. “마른 똥막대기니라.”

 

無門曰 雲門可謂 家貧難辨素食 事忙不及草書

動便將屎橛來 撑門拄戶 佛法興衰可見 頌曰

@탱문(撑門)문을 괴다. (): 떠받치다. 괴다.

 

무문이 평한다. 운문은 가세가 가난하여 소식조차 차리기 어려웠고,

일이 바쁘니 글쓰기조차 끄적거릴 겨를이 없었다고 하니 그리 할 만하다.

그러나 이 뜻을 모르는 자들이 자칫하면 이 똥막대기를 들고 나와서

문을 괴고 집을 받치니 불법의 흥망과 성세를 가히 알만하다. 송으로 이른다.

 

閃電光 擊石火 眨得眼 已蹉過

@(): 번쩍일 섬. ():부딛칠 격. ():눈 깜짝일 잡. ():넘어질 차.

 

번갯불이 번쩍이고 돌을 쳐서 불똥이 튄다

눈만 깜짝하여도 이미 어긋나느니라.

 

화두에 사족을 붙이는 것은 똥물을 뒤집어쓰는 꼴이라고 했던가.

@벽암록 제2칙 조주의 명백함도 필요없다(趙州不在明白)란 화두에 붙인

원오극근(圓悟克勤:1063~1135)선사의 수시가 도리어 귀감이 아닐련지.

 

하늘과 땅이 비좁고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일시에 어둡고,

설령 비 쏟아지듯 몽둥일 질을 하고 벽력같이 소리를 질러대도

끝없이 초월해 가는(向上) 일엔 당해낼 수 없다.

설사 3세의 많은 부처님이라도, 부처님끼리만이 알 수 있을 뿐이며,

역대의 조사도 온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일대장교(一大藏敎)로서도 설명하지 못하며,

눈 밝은 납승이라도 제 자신조차 구제하지 못한다.

여기에 이르러서 어떻게 법문을 청할까?

부처를 운운하는 것은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격이요,

참선을 운운하는 것은 얼굴 가득히 부끄러울 뿐이다.

오랜 동안 참구한 빼어난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후학으로서 처음 배운 이라면 모름지기 참구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