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무등산 규봉암(제2부)

2017. 11. 7. 21:37국내 명산과 사찰

광주 무등산 규봉암(2)


1부에 이어 제2부에서는 1부에서 누락된 사진과 규봉사 관련 시 한편을 올린다.

@고경명(高敬命)1574420일부터 24일까지 무등산과 주변 지역을 답사한 기록인

 유서석록(遊瑞石錄)을 통해 규봉암, 광석대, 문수암, 은신대 등을 유람한 기록을 남겼다.

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규봉암(圭峯庵)

금석사를 지나서 산허리를 감돌아 동쪽으로 나오니

이곳이 규봉으로 김극기의 시에 이른바 바윗돌은 비단을 마름질하여 장식하였고,

봉우리는 백옥을 다듬어 이루었네[石形裁錦出峯勢 琢圭成]’ 라 한 것이 빈말이 아님을 알겠다.

암석의 기묘하고도 오래된 품이 입석과 견줄 만하다고 할 수 있으나

 폭이 넓고 크며 형상이 진기하고도 훌륭한 점에서는 입석이 이에 따를 수가 없다.

규봉의 경치는 권극화(權克和)의 기록이나 동국여지승람에 자세하게 나와 있어 생략한다.

그런데 예로부터 전하기를 해동의 서성(書聖)이라 하는

신라 성덕왕 때의 명필 김생(金生)이 쓴 규봉암(圭峯庵)’이라는

삼대문자(三大文字)의 액자가 있었으나 훗날 어떤 자가 절취해 가버렸다고 한다.












@무등산의 생성 과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규봉암 경관의 아름다움이다.

과거 많은 선인들은 규봉암 일대의 경관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대표적인 시로는 김창흡과 기대승의 시가 있다.

이들은 규봉암의 주상 절리를 무수한 기이한 봉우리또는 암석의 기이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도규봉(到圭峯) 규봉에 이르다/기대승


하음탁동운(河陰擢同雲) 하음에는 동운이 빼어나고

사상치일관(泗上峙日觀) 사상엔 일관이 우뚝했네

최줄배고민(崔崒排高旻) 드높아 하늘에 꽂히고

등척대은한(騰擲帶銀漢) 날듯 은하수 닿았네


 

안지암석기(安知巖石奇) 어찌 알까 암석의 기이함

역수동해반(亦秀東海畔) 동해 가에도 빼어남을

리력절반공(峛屴截半空) 까마득히 반공에 횡단하고

표묘운우단(縹緲雲雨斷) 가물가물 운우도 끊기도다


 

평생모원유(平生慕遠遊) 평생에 먼 유람 생각하며

저립발호탄(竚立發浩歎) 우두커니 서서 탄식을 했노라

선심고정징(禪心古井澄) 선의 마음은 옛 우물이 맑고

세려춘빙반(世慮春氷泮) 세상 생각은 봄 얼음이 풀리네

분애방미활(氛埃方未豁) 흐린 기운 아직 열리지 않았으니

욕대동방단(欲待東方旦) 동방이 밝아짐 기다리련다.


 

강응망하궁(剛凝莾何窮) 강하게 응고됨 망망하여 알 수 없지만

차리기일관(此理期一貫) 이 이치 기필코 관통하리라.

랑곽무진경(朗廓無塵境) 명랑하여 티끌 없는 지경이고

청고불주천(淸高不住天) 청고하니 부주(不住)의 하늘이로세



 

유화의석하(幽花欹石罅) 그윽한 꽃 돌틈에 쓰러지고

고목의암변(古木倚巖邊) 고목나무 바위 가에 기대었네

일전남명활(日轉南溟活) 해는 도니 남명이 널찍하고

운이북두현(雲移北斗懸) 구름 옮기니 북두가 매달렸네



 

래유궁승상(來遊窮勝賞) 놀러와서 좋은 경관 모두 완상하니

혼각협비선(渾覺挾飛仙) 문득 나는 신선 낀 듯하여라

서석명산치해연(瑞石名山峙海堧) 서석의 명산 바닷가에 솟았으니

봉영풍일정의연(蓬瀛風日正依然) 봉래산 영주산 바람과 햇볕 참으로 비슷하여라

군선경막간청수(羣仙更莫慳淸邃) 뭇 산은 맑고 깊음 아끼지 마라

아역금래최상전(我亦今來最上巓) 나도 이제 가장 높은 곳에 왔노라.

~고봉 선생 문집 권1~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