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31. 21:13ㆍ국내 명산과 사찰
광주 무등산 원효사
@오전에 선암사를 탐방 하고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인
무등산의 규봉암을 보기 위해서 광주에 이르니 이미 오후 2시가 넘었다.
무등산은 초행이라 무등산의 산세(山勢) 탐색 겸해서
규봉암 가는 들머리로 잘 알려진 원효사를 들러 보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 원효사를 들렀다.
@광주 무등산은 해발 1,187m로 무등(無等)이란 이름을 붙여질 정도로
산세가 웅대해 성산으로 알려져 있는 산이다.
옛적에는 무진악·무악·서석산·무정산·무당산·무덕산 등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무등산에는 증심사·원효사 등 많은 절과 유적 등 명승고적이 많아
1972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총면적 30.23㎢로 넓은 고산초원지대를 이루는 장불재와
주상절리로 이름난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가 유명하다. 규봉암은 바로 그 광석대를 등지고 있는 암자다.
원효사는 규봉암 오르는 코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다.
회암루는 2층으로 되어 있고 아래 층에는 두분의 금강역사와 용을 조성해 놓았다.
밀적금강
나라연금강
@무등산 원효사의 홈피에 의하면 무등산 원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 지증왕 또는 법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문무왕대에 원효국사가 이전부터 있던 암자를 개축한 뒤 머무르면서
원효사, 원효암, 원효당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고려 충숙왕 때 화엄종의 한 승려가 이곳에 절을 짓고 원효대사의 이름을 따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감로정)
그 뒤 정유재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609년(광해군 1)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한 석경(釋經)스님이 건물들을 다시 세우고 천왕문을 건립했다.
1636년(인조 14)에는 신원(信元)대사가 중수했고,
이듬해 9월에는 왕견(王堅)대사가 32불을 조성하여 안치했다.
1685년(숙종 11)에는 신옥(信玉)과 정식(淨式)이 지붕을 고쳤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회운(會雲)이 선방(禪房)을 중창한 후
1802년(순조 2)에 법당을 다시 지었다.
1831년과 1847년(헌종 13)에는 내원(乃圓)과 의관(義寬)이 각각 중수했으며
1927년에는 원담(圓潭)대사가 계속 중수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1954~60년에 걸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1980년 5월 대웅전 중창불사(重創佛事) 때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소조불상군·토기·와당·철불두상·고려자기 등 시대가 다른 각종 유물이 140여 점 출토되었다.
또한 절 주변에는 고려시대 부도(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를 비롯하여
조선 중기의 회운당부도와 원효대사부도 등이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원효가 머물었다는 광주 무등산에 있는 원효사는
1980년 5월 대웅전 신축 작업 중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팀에 의해 발굴된
청동, 청동불 입상, 동경(구리거울),각종 소조불 등 백여 점의 유물은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것들로서 원효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발굴된 유물 중 금동·청동불상 12점, 소조불상 18점, 청동거울 2점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근래에 8∼9세기의 해무리굽 청자 조각이 발견되어, 이 절의 창건연대를 높이는 단서가 되었으며,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파편들이 다수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대웅전
구 대웅전을 헐고 1980년에 새로 신축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삼존상과
불화로는 아미타후불탱,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1.5m높이의 축대위에 현대식 대리석기단을 쌓고 대리석 다듬돌초석을 놓은 다음
기둥을 세운 정면 5칸․측면 3간의 단층8작집이다.
배흘림이 약한 기둥위에는 창방과 주두가 결구되고, 그 위에는 평방이 놓이며 외2출목,
내3출목의 공포가 짜인 다포식 건물이다. 내부구조를 살펴보면 내진간에 고주가 없이
변주인 평주위에 주두와 공포를 포작하여 그 위에 직접 대들보를 얹었다.
대들보위에 동자주없이 별장혀(別長舌)와 같은 부재를 도리방향으로 얹어놓고
그위에 우물천장을 얹었는데 평7량으로 보인다.
또 보간의 공포와 대들보를 연결시켜주는 형량을 얹고 그 밑은 코끼리․호랑이 등으로 장식하여 결구하였다.
창호는 빗살창문으로서 어간은 3분합문이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이 건물도 증심사, 약사사의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80년대초에 건축된 것으로
후기적 양식을 뚜렷이 드러낸 건축수법을 지닌 건물이라 하겠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로 봉안했다.
@삼존불 뒤 봉안된 탱화는 아미타후불탱화 (1954년 작, 인조견,143.8 *191.8cm)이다.
후불탱화란 전각내 불상 뒤편에 걸리는 불화로 전각에 따라
대웅전에는 석가모니후불탱, 극락전에는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된다.
아미타후불탱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주협시보살로 하여
보살과 사천왕, 부처님의 제자, 신중 등이 그려진다.
이 불화는 본존 오른쪽으로 보관에 화불이 그려진 관음보살을 배치시켜,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지만 아미타후불탱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아미타불은 화면 가운데 원형의 연꽃 대좌 위에 앉아 계시고 그 좌우에 각각 세분의 보살상이 서 계신다.
그리고 부처님의 두광좌우로 네자와 동녀, 동자를 배치시켰다.
아미타불은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위로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도록 옷을 걸치고 있으며,
길고 가느다란 눈썹과 엄정한 눈맵시 등은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킨다.
뿐만 아니라 삼곡자세를 취한 좌우의 보살상은 일본 법륭사 금당벽화 보살상의 유려한 선맛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조선불화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화사의 기량이 떨어지고
약식 화되거나 여러 개의 양식이 혼합되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오지호 화백은
당시의 불화가 아닌 완벽한 조형감각을 보여주는 7~8세기의 작품을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다채로운 광배, 청색하늘 위로 표현된 밝은 분홍빛 구름 등은
역시 유화가다운 개성을 잘 보여준다. 현재 물감의 박람이 심하지만,
뛰어난 데생과 능숙한 필선에 의해 채색 감각이 잘 살아 보인다.
1954년 오지호 화백이 후불탱을 그리고, 돌아가신 후 49재에 그의 아들들이 화기를 적은 것이다.
@대웅전 신중탱화
(1954년, 인조견, 114.1 * 143.8cm)
신중이란 고대 인도신화에 등장한 신들로 불교 교리에서는 불, 보살보다 낮고,
육도중생보다 높은 단계에 위치한다.
그 역할은 불법을 수호하고 일체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고유의 토속신과 밀교신이 합쳐져 한국 특유의 신중탱이 널리 유행하였다.
신중탱은 대게 천부, 천룡부, 명왕부로 이루어지는데,
천부에는 보살형으로 표현된 제석, 범천, 마혜수라천을 주존으로 하고
보살, 일월천자, 주악천녀나 시왕등이 권속으로 등장한다.
천룡부는 위태천을 주존으로 하고 화엄팔부중, 산신, 조왕신 등을 권속으로 등장한다.
위태천은 사경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으로 머리에 새깃털을 꽂고 삼지창을 든다.
화엄팔부중은 용, 가루다, 아수라, 건달바 등이 해당된다.
그리고 험상궂은 인상을 한 예적금강과 호위병처럼 무기를 든 금강이 있는 명왕부가 있다.
이상의 각 부는 그림에 따라 특정부분이 강조되어 선택되며 매우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작품은 한 중앙에 그려진 위태천을 중심으로 좌우 상단에 연꽃을 든 범천, 제석을 배치하였으며
주변에 동녀, 동자가 있다. 위태천은 귀 뒤로 새깃털을 꽂고 삼지창을 들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권속들이 표현되었다. 그리고 위태천 아랫단에 있는 6금강은
무사형으로 갑옷을 입고 푸른 칼날이 선 무기를 들었다.
@대웅전에 배치된 이 범종은 1710년(숙종 36) 제작된 것으로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86cm. 이 종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18세기 초반부터 많은 수의 범종을 제작한
사장(私匠) 김성원(金成元)이 옥천사종(玉泉寺鐘)보다 2년 뒤인 1710년에 만든 종이다.
명문에 따르면, 원래는 담양 추월산(秋月山)의 만수사종(萬壽寺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989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던
이 범종은 원효사 대웅전에 보관해왔으나, 새 종을 주조하여 대체하였다.
현재는 요사채 무등선원(無等禪院)으로 옮겼다.
성산각(星山閣))
삼성각이라고도 하며 독성. 칠성. 산신이 모셔져 있다.
탱화도 각각 모셔져 있는데, 모두 1995년에 조성되었다.
대웅전 좌측에 위치하는 성산각은 전면 3칸․측면 2간의 단층 맞배집으로서
대웅전과 같이 2단의 높은 축대위에 놓여 있다. 낮은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전면에는 원형기둥을, 배면에는 방형기둥을 세웠다.
지붕의 측면에는 풍판이 있으며, 겹처마로 연등천정을 둔 5량가이다.
외양으로 보아서는 제일 오래된 건물로 여겨지는 고졸한 건물이다.
약사전
약사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일광, 월광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과 명부시왕을 모시고서 돌아가신 영가들을 위한 천도제와 사십구재 등을 하는 이 지장전은
1982년에 건축되었으며, 지장탱화는 1990년에 조성되었다.
정면 3칸․측면 2간인 건물로 맞배지붕이며 측면에는 풍판을 두었다.
낮은 기단위에 원형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익공식가구를 하고 있다.
내부는 내진간에 고주가 없이 변주인 평주위에 주두와 공포를 포착하여 그 위에 직접 대들보를 얹었다.
대들보위에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걸친 다음 판대공을 얹고
그 위에 첨차형 부재를 놓고 장설와 종도리 순으로 가구했다.
지장보살을 중앙에 모시고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협시하고 있으며 좌우에 시왕이 배열되어 있다.
개산조당(開山祖堂)
개산조당은 원효사의 창건주로 숭상되는 원효국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90년 5월에 건축되었다. 원효국사의 진영은 세 가지 형태로 모셔졌는데,
각각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조성되어졌다.
그리고 이 전각 내에는 1710년 추월산 만수사에서 조성되어졌다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원효사에 소장되고 있는 시 지정 유형문화재 15호인 만수사 범종이 있다.
원효상
오층석탑
회암루에서 바라 본 무등산
회암루를 오르면서 바라 본 대웅전쪽 전경
회암루 아래층 두 분 금강역사 옆에 조성된 여의주를 움켜진 용의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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