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8. 16:04ㆍ국내 명산과 사찰
청량산기행(3/3) 청량산 응진암과 청량산의 봉우리들
@청량산 연화봉(蓮花峰) 기슭에는 내청량사(內淸凉寺)가, 금탑봉(金塔峰) 아래에는 외청량사(外淸凉寺)가 있다.
외청량사는 응진암을 말한다. 두 절은 모두 663년(문무왕 3)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창건연대로 볼 때 의상은 중국에 있었으므로 원효가 창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창건 이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중건 등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창건 당시 승당(僧堂) 등 27개의 부속건물을 갖추었던 큰 사찰이었다는 것만 전하여지고 있다.
현재의 두 절은 비록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지만 상호 연관적인 관계에 있다.
청량산 청량사 고사목(枯死木)
청량산 깊은 골
연화봉 바라보며
천년을 하루같이
살다가 간 고사목이여
갈바람 가랑잎 소리
행여 님의 발자국 소리일까
금풍대 돌아 온 저 새가
님의 소식 전해줄까
북풍한설 긴 세월
가슴 졸이며
님 소식 기다리다
까맣게 타버린 숫한 나날들
무심한 세월의 풍상
독하고 모질어
육신은 문드러져
뿌리까지 곰삭았구나
흘러가는 세월이야
어쩔 수 없지만
숯댕이처럼 타버린 네 가슴
얼마나 서러웠을까
보살봉 떠도는
흰 구름아 너는 아는가
하루가 천년 같았을
님 그린 고사목 그 아픈 마음을.
청량산의 봉우리들은 흔히 육육봉(六六峰)으로 일컬어지는데
이는 퇴계 이황선생이 지은 <청량산가>에서 비롯된 것으로
원래 육육봉은 주자가 머물렀는다는 중국 복건성 무이산의 36봉에서 인용된 것이다.
6을 두 번 더하면 12봉이요, 곱하면 36봉이기 때문에 육육봉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청량산의 봉우리들의 옛이름은 불(佛)향기 가득한 이름이 있었지만
조선대 이르러 우리나라 서원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주세봉이
중종 36년 (1541)에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주자가 머물렀던
복건성 무이산의 36 봉우리의 이름을 본떠서 유교식으로 12봉을 개명한 것이다.
청량사 12봉을 소략(疏略)하면, 청량산 육육봉(12봉)은
주세붕 선생이 동방에 해가 떠서 빛난다는 뜻의 경일봉(擎日峰)과
아득히 먼 옛날에는 치원봉이라 불렸고 청량사의 동남쪽 층암절벽이 3층으로 이루는 금탑봉(金塔峯)이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신비로운 새가 춤을 추는 것 같은 곳이라는
자란봉(紫鸞峰)과 석봉이 마치 천길이나 허공에 솟아 탁립한 것 같다는 탁립봉(卓立峰)이 있다.
(탁필봉과 연적봉)
다음으로 청량산의 12봉우리 중 세 번째로 높은 봉이며,
푸른 바위 천척(千尺)이 공외에 빼어나 9층의 층암을 이룬다는 자소봉(紫宵峰)과
빼어난 형상이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다는 탁필봉(卓筆峰)이 있다.
또 산의 정상이 조금 평평한 형상이 연적(벼루의 물통)과 같다는 연적봉(硯滴峰)과
암벽의 층으로 된 것이 처음에 피어나는 연꽃과 같다고 하는 연화봉(蓮花峰)과
석봉의 모양이 향로와 같다는 향로봉(香爐峰)이 있다.
그밖에 남방의 불을 받은 화신(火神)이란 의미의 축융봉(祝融峰)과
중국 태산의 장악(丈嶽:큰 산)을 빗댄 장인봉(丈人峰)이다.
탁필봉(卓筆峯, 820m)은 필봉(筆峯)으로도 불렸다.
자소봉에서 서쪽으로 20~30m 지점에 봉우리 전체가 뾰족한 돌봉우리의 빼어난 형상이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아 옛날에는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이 '탁(卓)'자를 더하여 '탁필봉' 이라 하니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卓筆峯)'과 비교하였다. 또한 이 봉을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적봉(硯滴峯, 850m)은 탁필봉의 서쪽 바로 옆 5~6m 거리에 탁필봉과 나란히 솟아 있으며
정상이 조금 평평한 것이 흡사 연적(硯滴; 벼루의 물통)과 같으며
올라가서 보면 동남(東南) 천여 리(千餘里)의 산하(山河)를 바라볼 수 있다.
정상에는 바위가 평평하여 10여 명의 사람이 쉴 수 있다.
(자소봉)
자소봉(紫宵峯, 845m)의 옛이름은 보살봉(菩薩峰)
연대의 뒤(북쪽)에 위치하여 내산의 종주(宗主)가 되는 봉으로 돌봉우리로 되어 있다.
봉우리의 중간 동쪽에 평평한 반석으로 되어 있어 30~40명이 앉을 수 있는 터가 있어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청량산의 열두봉 중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며,
푸른 바위가 천 길이나 높이 허공으로 솟아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9층(九層)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치원대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9층 탑으로 백운(白雲), 만월(滿月), 원효(元曉), 몽상(夢想) 등
11곳의 암자가 각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으며
봉우리의 명칭이 옛날에는 보살봉(菩薩峰)이었는데 주세붕이 <자소봉>으로 개명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고 하며
가뭄이 들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었다고 한다.
자소봉
비오고 바람부니
댓님은 울고
자소봉에 날개짓하던 산새도
긴 잠에 빠졌나보다.
바람에 실린 풍경소리
옛꿈을 일구는 듯
허공에 맴돌고 있구나.
<금탑봉>
금탑봉(金塔峯, 620m)은 경일봉의 동남쪽에 있으며 옛날에는 치원봉(致遠峰)이라고 불렀다.
연대의 동남쪽 층암절벽(層巖絶壁)이 3층으로 이루어져 연대에서 바라보면 삼층탑과 같으며
중층(中層)에 치원암(致遠庵), 극일암(克一庵), 안중사(安中寺), 상청량암(上淸凉庵),
하청량암(下淸凉庵)의 5사(五寺)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응진전(應眞殿, 나한전)만이 남아 있는데 이는 외청량암(外淸凉庵)의 유적이다.
《오가산지(吾家山誌)》의 산천(山川) '대암집해(臺庵集解)'에 보면
"위에 있는 것이 상청량암(上淸凉庵)이요 그 동쪽으로 조금 아래 있는 것이
하청량암(下淸凉庵)"이라 하였으니 지세로 보아 응진전이 상청량암의 자리로 보인다.
자소봉의 중층, 만월대 앞에 있는 작은 돌봉우리는 기이하게 빼어나
예로부터 '옥소(玉簫, 옥통소)'라고 불려졌는데 주세붕이 명명한 열두 봉우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또 '원효봉(元曉峯)'은 장인봉의 아래에 있는 작은 돌봉우리로 열두 봉우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지금의 유리보전 뒤편에는 반야봉과 문수봉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주세봉이 명명한 열두 봉 중 옛날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금탑봉과 연적봉 두 봉우리이며,
옛날의 이름을 고친 것이 장인봉(구, 대봉), 자소봉(구, 보살봉), 연화봉(구, 의상봉)의 세 봉우리이고
이름이 없던 것을 새로 명명한 것이 선학봉, 자란봉, 축융봉, 경일봉, 향로봉, 탁립봉 등 여섯 봉우리이다.
이와 함께 옛날 이름에서 한 자를 더 보탠 것이 탁필봉(구, 필봉)이다.
이렇듯 청량산은 그 옛날 봉우리 자체가 부처와 보살의 현신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주세붕 이후 열두 봉우리가 명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응진전은 현재 청량사의 부속 암자로 응진암 뒤편은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아래로는 천길 낭떠리지의 절벽에 바위가 9층으로 마치 금탑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응진전 좌측 바위는 부처님 발모양을 닮은 불족암과
내청량사의 불수암이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이룬 불국토를 형성하고 있다.
응진암은 일찍이 고려말 노국공주가 몽진(蒙塵)을 피해
이곳에 머물었던 나한 기도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주심포(柱心包) 건물이다.
창호는 정자살창으로 짜여져 2분합의 문을 달았다.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구조이다.
안에는 석가삼존상(조선 시대, 75m)과 귀엽고 익살스러운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여기에 모셔져 있는 16나한은 노국공주가 홍건적 퇴치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손수 시녀들과 함께 상을 깎아서 모셨다고 전한다.
이로 보아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노국공주와 함께 공민왕이 청량산으로 피신했음을 알 수 있다.
법당 안에는 노국공주의 초상화도 모시고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별도 관리하는 지 몰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뒤쪽 절벽 위에 동풍석(動風石)이 있으며 좌측 바위는 부처님의 발모양을 닮은 불족암이 있다.
응진전 뒤편 바위위 올라앉은 작은 바위가 동풍석이다.
줌으로 당겨본 동풍석
<동풍석(動風石)>은 응진전 뒤편 바위 위에 묘(妙)하게 앉아 있는 이 바위는
한 사람이 밀어도 흔들거리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거리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바위를 동풍석(動風石)이라 부르는데 이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떤 스님이 절터를 찾아 응진암을 짓는데 절터 바로 뒤편 바위에 올라앉은 바위 하나가
위험하게 느껴져 올라가서 굴러 떨어트렸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면 떨어트린 그 바위가 다시 제자리에 올라와 있지 않은가.
누가 한 밤 중에 나를 놀리려고 장난한 것이 아니가 하고 이상하게 느낀 스님이
다음날 다시 올라가 바위를 밀어 떨어트려 놓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또 다시 처음 그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이를 괴이하게 느낌 스님은 누가 그랬나 하고 진범을 잡겠다고 다시 바위를 밀어 떨어놓고
숨어서 몰래 그 바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가자 이상하게도 그 바위가 스스로 바위를 타고 올라가지 않은가.
스님은 “허허, 묘한 인연이다.” 하고는 바위를 내려놓겠다던 생각을 포기하고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그 스님은 의상대사라고 하고,
어떤 이는 원효대사라고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절을 감독하는 공사 감독이라고 말하는데
천년이 지난 지금 전설은 그냥 전설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그 바위가 있던 자리는 도깨비들이 머무는 곳이였다고 전한다.
동풍석은 보는 사람마다 달리 보여 부처나, 사람, 동물, 물고기등 다양하게 보이는 데
이는 그 사람의 전생의 업을 따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풍석을 “환생의 바위”라고도 불린다.
응전전 옆 금풍대의 봉우리
무위당. 응진전 바로 옆 전각으로 둥근 돌담이 둘러처 있다.
<금탑봉>
澄公當日註華嚴(징공당일주화엄)
징관이 화엄경을 주석할 때
天竺微言手裏拈(천축미언수리념)
천축국의 은미한 말 손으로 잡았네
異迹千秋無處驗(이적천추무처험)
기이한 자취 천추에 증명할 곳 없는데
留看金塔一峰尖(류간금탑일봉첨)
머물러 바라보니 금탑봉 하나 뽀쪽하더라.
~출처: 유산기/ 권명구/ 문집명 구산집 권3~
<청량산 응진암3>
나무닭(木鷄)는 야반상경에 울고
띠풀개(蒭狗)는 대명천지에 짖는다.
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 있어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 중생
금당(金堂)의 옛소리는
먼 산의 메아리로 들리는구나.
가쁜 숨 몰아쉬며
불향기 더듬어 오른 청량산
천년의 긴 세월
금대봉은 올연(兀然)한데
응진암 뜰악은
덤풀만 무성 하구나
청량산 응진암 2
청량산 후미진 곳에
금대봉을 벗 삼아
천년의 세월
말을 잊은 응진암
화려했던 그 옛날의 추억도
망국의 한을 지닌
노국공주의 절규도
무심한 동풍석에 맡겨 버리고
오늘도 어제처럼
불족암만 어루만지며
적정(寂靜)의 늪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구나
허물어진 담장 넘어
덤불만 무성한데
길손 끊어진 빈 법당에
졸고 있는 16나한들
무상(無常)한 세월
아는지 모르는지
밤세 울던 풍경도
잠이 들었나 본다.
- 청량산가(淸凉山歌) -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나니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지지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하노라
@전문을 풀이 한다면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갈매기뿐
갈매기야 소문을 내었느냐 못 믿을 것은 복숭아꽃이로다.
복숭아꽃아 떠나지(일설은 떨어지지 마라) 말아라 어부가 알까 염려한다.’이다.
이 청량산가의 ‘지은이는 거의 李滉(이황)으로 되어 있으나
趙寅(조인)이라고 한데도 있으며, 또 周世鵬(주세붕)이 아닌가 하는 說(설)도 있다.’
따라서 작자는 퇴계선생으로 단정을 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어주자(魚舟子)는 고기잡이 즉 어부를 의미하는 말이고,
훤사(喧辭)는 요란스럽게 떠드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讀書如遊山(독서여유산)>
~ 이황(李滉)~
讀書人說遊山似(독서일설유산사)
사람들은 글 읽기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더니
今見遊山似讀書(금견유산사독서)
이제 보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구나!
工力盡時元自下(공력진시원자하)
공력을 다하면 스스로 내려오는 법
淺深得處摠由渠(천심득처총유거)
얕고 깊음을 아는 것 모두가 자기에게 달려있네
坐看雲起因知妙(좌간운기인지묘)
조용히 앉아 일어나는 구름을 보고 오묘함을 알고
行到源頭始覺初(행도원두시각초)
발길이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시초를 깨닫네!
絶頂高尋勉公等(절정고심면공등)
높이 절정을 찾으려 그대들처럼 힘썼지만
老衰中輟愧深余(노쇠중철괴심여)
늙어 중도에 그친 나를 깊이 부끄러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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