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18. 20:44ㆍ국내 명산과 사찰
속리산 기행(3/3) 속리산의 마스코트 문장대
@속리산은 최고봉인 천황봉(해발 1,058m)을 비롯하여 비로봉, 문장대, 문수봉, 신선대,
관음봉 등 아홉 개의 높은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리다가
신라 때부터 속리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을 지나면서 내륙으로 꺾여 흐르는 중앙부에 위치한 속리산은
금북정맥이 분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문장대를 중심으로 동쪽 천황봉에서 서쪽 관음봉까지 연결되는 산봉우리를 비롯해
능선의 남쪽과 북쪽으로 전개되는 넓은 사면 지역을 품안에 두고 있다.
신선대쪽에서 문장대 가는 길 음지에는 여전히 눈이 녹지 않았다.
문장대 가는 길에 숲속의 바위,
문장대를 향하며 뒤돌아 본 신선대쪽
신선대쪽에서 20여분 오르니 서서히 문장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는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도를 멀리했고
道不遠人人遠道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으나 세속이 산을 떠났도다
山非俗離俗離山
조선 중기의 시인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속리산을 보고 남긴 시의 한 구절이다.
속리산은 맑고 청량한 산이다. 그 옛날 이곳을 찾았던 백호의 시에 묘사된 것처럼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 피안(彼岸)의 세계다.
구름 속에 갈무리되어 마치 하늘나라처럼 신비스러운 유토피아, 곧 극락의 세계가 속리산이다.
속리산 문장대(文藏臺)의 옛 이름은 구름이 가득 서려 있는 곳이라는 뜻의 운장대(雲藏臺)였다.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장대에는 큰 바위가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데 마치 그 모습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것과 같이 매우 기묘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문장대는 바위 꼭대기에 100여 명이 함께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속세를 벗어난 아름다운 절경으로 속리산은 제2의 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속리’라는 이름은 신라시대에 갖게 된 명칭이다.
신라가 통일을 한 후 불교가 융성해졌던 784년(선덕왕 5)에 진표스님이 이 산에 이르게 되었다.
산 아래 밭에서 소들이 밭을 갈고 있었는데 스님을 보자 일하던 소들이 모두 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렇게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사람들은 반드시 부처를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이곳 사람들이 속세를 버렸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보다 오니(汚泥)로 물든 세상에서 깨끗하고
신성한 산이라는 의미로 생긴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날은 이미 저물고 ..
세심정 휴게소에 다달으니 어둠이 이미 길을 막고 있었다. 여기서 법주사 주차장까지는 20여분 거리.
그래도 느린 걸음으로 속리산을 그런대로 완주했다는 것이 웬지 마음 한 구석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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