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2016. 8. 18. 06:11국내 명산과 사찰

백제의 미소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백제불교 문화유산으로 잔존한 마애삼존불이 서산지역에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서산면 운산면 가야산 용현계곡에 있는 국보 84호 지정된 서산 마애삼존불이고

다른 하나는 태안읍 동문리 백화산 태을암에 국보 제307호로 지정된 태안마애삼존불이다.

백화산 마애불은 마모가 심해 간신히 형태만 남아 감실 안에 보존 되어 있지만

가야산 마애불은 아직 온전하지 않지만 그래도 뚜렷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백제 불교석불의 대표적 마애불로 여겨지고 있다.

  


마애삼존불 가는 길

  

@마애불(磨崖佛)이란 바위에 부처를 바로 새긴 것인데 현재 국보로 지정된 것만 해도 28개 달한다.

서산의 마애불과 태을암의 마애불도 그 중 하나이다.

특히 서산의 마애불과 태을암의 삼존마애불은 그 형태가 여느 마애삼존불과 다른 형상을 지니고 있다.

    



 

@서산마애불은 본존불과 협시불은 입상으로 다른 하나는 반가사유상을 하고 있고,

 태을암의 마애불은 본존불 자리에 협시불인 관음불을 모시고 왼쪽과 오른쪽에 본존불과 보살을 모셔놓은 것이

마애불로서는 불교문화사로 볼 때 아주 특별한 형태에 속한다.

불교학자들은 서산마애불의 조성연대는 백제말기로 보는데 태을암의 마애불은 그 형태로 보아

훨씬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을암의 마애삼존불은 본방 <태안반도기행2 태을암 마애삼존불>참조)

   


마애삼존불을 관리하는 종무소

 

@중국불교문화가 백제에 전래된 경유를 보면

백제의 불교 최초도래지는 백제 침류왕 때 서기 384년에 남중국 동진에서 인도승 마라나타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한다.

그 첫 도래지는 아무포인데 아무포는 굴비산지로 유명한 지금의 법성면 법성포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백제 불교의 최초 전래는 고구려나 신라와 달리 육로가 아닌 해로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중국과 천축과의 활발했던 해상교역의 가장 가까운 중심 거점은 지금의 태안반도로 추정되고 있다.

태안반도는 동쪽의 예산읍에서 반도 말단 만리포까지 약 130에 달하며

행정적으로는 충청남도 서산시·예산군·당진시·태안군이 속한다.

    



 

마애불이 있는 서산시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부여로 가던 행로상에 있다.

즉 태안반도에서 서산마애불이 있는 가야산 계곡을 따라 계속 전진하면 부여로 가는 지름길로 이어지는데,

이 길은 예로부터 중국과 교통하던 길이었다. 이 옛길의 어귀가 되는 지점에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데,

이곳은 산세가 유수하고 천하의 경승지여서 600년 당시 중국 불교 문화의 자극을 받아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던 것이다.






마애삼존불상은 관리하는 사찰이 없지만 금당으로 보고 일주문을 겸한 불이문을 세웠다.














@서산용현리마애삼존불(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

충남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

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가야산 절벽에 새겨진 백제 후기의 마애불로서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산 마애석불> 또는 <서산 마애불> 또는 <운산 마애석불>이라고도 불리며

흔히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마애불이다  


  

@본존상의 높이는 280, 보살입상은 170, 반가상은 166이다.

중앙의 본존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보주를 든 보살입상이,

왼쪽에 반가사유상이 협시하고 있는 삼존형식이다.

7세기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조각의 대표적인 예이다.



<본존불>

묵중하고 중후한 체구의 입상인 본존(本尊)은 머리에는 보주형(寶珠形) 두광(頭光)이 있으며,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는 작다.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는 미소가 있고

눈은 행인형(杏仁形)으로 뜨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고 법의(法衣)는 두꺼워서 거의 몸이 나타나 있지 않다.

옷주름은 앞에서 U자형이 되고 옷자락에는 형의 주름이 나 있다.

수인(手印)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으로 왼손의 끝 두 손가락을 꼬부리고 있다.

발밑에는 큼직한 복련연화좌(覆蓮蓮華座)가 있고, 광배 중심에는 연꽃이, 둘레에는 화염문이 양각되었다.   


<우협시불>

이에 대하여 우협시보살(右脇侍菩薩)은 머리에 높은 관을 쓰고 상호(相好)는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으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목에는 짧은 목걸이가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보주(寶珠)를 잡고 있다.

천의는 두 팔을 거쳐 앞에서 U자형으로 늘어졌으나 교차되지는 않았다.

상체는 나형(裸形)이고 하체의 법의는 발등까지 내려와 있다. 발밑에는 복련연화좌가 있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 광배가 있는데, 중심에 연꽃이 있을 뿐 화염문은 없다.

  

 

<좌협시불>

()협시보살(脇侍菩薩)은 통식(通式)에서 벗어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배치하였다.

이 보살상은 두 팔에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전체의 형태는 충분히 볼 수 있다.

머리에는 관을 썼고 상호는 다른 상들과 같이 원만형(圓滿形)으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상체는 나형이고 목에는 짧은 목걸이를 걸쳤다. 허리 밑으로 내려온 옷자락에는 고식의 옷주름이 나 있다.

발밑에는 큰 꽃잎으로 나타낸 복련대좌(覆蓮臺座)가 있다.

머리 뒤에는 큰 보주형 광배가 있는데, 그 형식은 우협시보살의 광배 형식과 같다.



@ 삼존상은 모두 보주형의 두광을 갖고 있다. 대좌는 3상이 모두 단판연화좌이다.

 


서산용현리마애삼존불(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 불리는 이 삼존상은

 법화경의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 즉 석가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법화경사상이 백제 사회에 유행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가장 중요한 사료이다.

따라서 이 불상은 백제 불교사 내지 사상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조선시대 사찰에 건립된 응진전(應眞殿) 수기삼존불의 가장 오래된 원조로서의 의의가 있다.

 



바위에 새긴 불심, 서산마애삼존불 *

서산마애삼존불(국보 제84)은 백제의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는 백제 후기의 작품이다.

때로는 근엄하게, 때로는 온화해 보이는 얼굴은 해가 비치는 시간에 따라 달리 보여 더욱 신비롭다.

백제의 문화는 대체로 이렇게 세련되고 섬세한 것이 특징으로,

이러한 백제의 불교문화는 고대 일본 불교문화에 많은 영향을 준 사실은 이미 학계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은 대개 목조나 동()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유독 서산용현리의 마애삼존의 협시불로 제화갈라보살이 조성되어 있다. 제화갈라보살에 대해서 살펴보면.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은 범어 Dipamkara로 정광(錠光), 연등(燃燈)으로 번역된다.

과거세에 석가모니 부처에게 수기를 준 부처님이다.

<불광대사전>에 의하면 정광(錠光)의 의미를 (등의)발이 있는 것을 정()이라 하며,

발이 없는 것을 등()이라 한다고 했다.

석가불(釋迦佛)의 옛적 이름은 유동(儒童)이라 했는데 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실 때 다섯 줄기의 연꽃을 싸서 바쳤다.

그로 인하여 미래에 성불할 것을 석가모니에게 수기를 준 부처다.

<지도론9>에 연등불이 출생하실 때에 일체 신변이 연등과 같았기 때문에 연등태자(燃燈太子)라 이름 하였으며

부처가 되어서도 또한 연등불이라 했다고 했다.





<보행일(輔行一)>의 서응(瑞應)이 말하기를 옛난 정광불이 흥기(興起)했을 때에 태어난 보살이석가모니였다.

이름을 유동(儒童)이라 하고 정광불에게 꽃을 사서 공양하고 꽃을 뿌렸더니 꽃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허공중에 머물렀다.

부처님이 그 뜻을 아시고 찬탄하여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수겁(無數劫)에 청정(淸淨)을 배우리라하고

인하여 수기(授記)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로 인하여 91겁을 지나면 겁호(劫號)를 현()이라 하며

너가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문(釋迦文)이라 할 것이다.> 하였다.

  


  

@같은 이야기가 <불본행집경>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은 석가여래가 여러 전생 가운데 제2 아승지겁에 다섯 송이 연꽃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자신의 머리칼을 진흙에 깔아 연등 부처님이 밟도록 하였다.

이러한 인연 공덕으로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성불할 수기授記를 받고 미래불의 칭호를 얻었으니

수기를 내려준 분이 바로 연등불熱燈佛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재회갈라보살은 제원갈提洹竭보살로 번역되기도 하며, 또는 연등불燃燈佛, 정광불錠光佛로 불리기도 한다.

지도론(智度論)에서는 연등불이 생시에 일체의 주변(身邊)이 등과 같으므로 연등태자라 하고

성불해서도 또한 연등이라 하였다. 구명은 정광불錠光佛이다.라고 적고 있다.

정광불이라 하면 빛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라는 뜻이며

연등 역시 등불을 밝혀 중생의 앞길을 비추어 준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