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나들이 남양주종합촬영소

2015. 12. 17. 20:27명승지

양평나들이 남양주종합촬영소

 

서울근교에서 가벼운 주말 나들이코스로 잘 알려진 양평은

물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물머리나, 세미원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남양주종합촬영소도 그 중 하나다.

 

남양주종합촬영소는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40만 평 의 부지에 영화촬영용 야외 세트와 규모별로 다양한 6개의 6실내 촬영스튜디오

그리고 녹음실, 각종 제작 장비 등을 갖춘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작시설을 갖추었다고 자랑하는 곳이다.

 

영화 서편제,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취화선, 음란서생, 형사, 미인도 등

한국영화의 대표작들이 이곳 남양주종합촬영소의 시설과 장비, 기술에 의해 제작되었다.

오늘 둘러 본 지역은 영화 취화선을 촬영한 민속마을세트장과 공동경비구역 JSA 를 촬영한 판문점세트장 2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세트가 판문점세트장이다.

박찬욱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위해 세밀한 고증 작업을 거쳐

판문점 팔각정, 회담장 등 판문점과 똑같이 만들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불행히도 보지 못했지만

잠시 이곳에서 남북분단의 그 아픔과 안타까움을 느껴본다.

 

 

 

 

 

 

 

판문점세트를 뒤로 하고 민속촌으로 향했다. 가는 입구에 선박조형물이 있어 담아 보았다.

어떤 영화에 이용된 세트장인지는 ...

 

 

 

 

 

 

 

 

취하선의 민속세트장이다.

 

 

 

이곳 민속마을세트장은 한국영화의 대표감독인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조선후기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취화선>의 세트로

19세기 말 종로거리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철저한 고증과 실제 건축방식으로 제작되어 세트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조선시대의 고을에 들어온 듯 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촬영이 오래 전에 끝난 지금은 민속마을세트장으로 탈바꿈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관리가 소흘하여 다소 부실한 느낌이 든다.

좀 더 알차게 기획관리 되었다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승업(張承業, 1843~ 1897)은 조선 말기의 화가이다. 호는 오원(吾園), 자는 경유(景猶), 본관은 태원(太原)이다.

도화서화원(畵員)을 지내고 벼슬은 감찰(監察)에 이르렀다.

 

 

남의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고 하며 술을 즐겨 그림과 바꾸는 일이 많았다.

지인의 추천으로 도화서화원(畵員)이 되었고 위안 스카이, 리훙장은 그의 그림을 얻어가려고

여러 번 청탁을 했다고 한다. 벼슬은 사헌부감찰(監察)에 이르렀다.

절지(折枝), 기완(器玩), 산수, 인물, 영모(翎毛), 사군자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데 뛰어났다.

 

 

 

필치가 호방하고 대담하면서도 소탈한 여운이 감돌아 조선 후기 말엽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안견(安堅),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화단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진다.

화적(畵蹟)으로는 덕수궁 미술관 소장의 기명절지도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풍림산수도(楓林山水圖)〉 〈산수영모절지 병풍(山水翎毛折枝屛風)

산수도(山水圖)개인 소장의 팔준도(八駿圖)〉 〈매화도(梅花圖)〉 〈교변람폭도(橋邊攬瀑圖)

수기화상포대도(睡起和尙布袋圖)〉 〈호산어은도(胡山漁隱圖)〉 〈수상서금도(樹上棲禽圖)

화조수도(花鳥獸圖)〉 〈노안도외 다수가 있다.

 

 

 

 

 

 

<취하선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서막은 1850년대, 청계천 거지소굴 근처에서 거지패들에게 죽도록 맞고 있던 어린 승업을 김병문이 구해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선비와의 인연은 시작되고 그에게 승업은 그의 그림을 그려 보인다.

세도 정치에 편승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김선비는 거칠지만 비범한 승업의 실력을 눈여겨보고,

5년 만에 재회하자 승업을 역관 이응헌에게 소개한다.

승업에게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를 추구할 것을 독려하고 선대의 명화가들처럼

훌륭한 화가가 되라는 뜻에서 오원이라는 호를 지어준 김선비는 승업 평생의 조언자였고 그런 승업은 행운아였다.

 

 

 

역관 이응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그림에 대한 안목을 키워가던 승업은

이응헌의 여동생 소운에게 짝사랑을 느끼지만 가슴 설레는 그의 첫사랑은 소운의 결혼으로 무참히 끝나고,

시름의 세월을 그림을 달래가던 중 화가로 이름이 알려지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몰락한 양반 가문의 딸인 기생 매향의 생황 연주에 매료되어

잠시 매향과 아스라한 인연을 맺었지만 이것도 허무하게 끝이 나고....,

 

 

 

연이은 간난, 그리고 계속되는 방황의 세월 속에 술에 취해야 흥이 나고 그 흥에 취해서야 신명나게 붓을 놀리는 신기.

오로지 술병을 들고 세상을 조롱하는 듯 한 표정의 원숭이를 그리고 자신의 필력을 확인하고 자위하지만

저 넘어 새로운 경지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홀연히 세상을 등지고 떠난 장승업... 아스라한 회한이 희날레를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