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9. 23:23ㆍ국내 명산과 사찰
노강서원(鷺江書院)
2월의 두 번째 일요일 아침, 수락산을 가보려고 하다가 몸도 그렇지만 날도 너무 춥고 해서 등산은 포기하고 꿩 대신 닭이고 노강서원과 석림사를 찾았다. 수락산 등산코스로 장암 쪽으로 내려오기는 아마도 내 기억으로 서너 번 밖에 없다.
항상 원점회귀 산행을 즐기는 편이라 수락산역에서 시작하여 이곳을 내려오면 늘 늦은 시간이라 스쳐지나왔기 때문에 미련이 남았던 곳이다. 작년에도 이 코스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노강서원이 수리중이라 보지 못한 미련이 더 했나 보다.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오전에 들렸지만 서원의 출입문이 자물쇠로 꽉 채워져 있어 안을 들어가지 못했다.
궤산정(簣産亭)
수락산을 가다 보면 노강서원 가기 전 개울가에 다 허물어져가는 정자가 하나 있다.
옛적에는 무심히 보았는데 이 정자는 박태보의 부친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이 조정에서 물러나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라고 한다. 이 정자의 이름은 궤산정이라고 하는 데 궤산으로 지은 것은
『아홉길 높이의 산을 쌓는데 흙 한 삼태기(簣:삼태기 궤)가 모자라 그 동안 쌓은 공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위산구인공휴일궤 爲山九仞功虧一簣)
경기도 기념물 제41호로 지정(1977.10.13.)된 노강서원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본관은 반남, 字는 (士元), 호(號는 정재(定齋) 판중추부사로 지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현령 남일성의 따님이다. 중부(仲父: 작은 아버지)인 세후(世垕)에게 입양되었다.
숙종1년 1675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7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호남 암행어사, 파주목사 등의 벼슬도 역임하였고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 가는 도중 노량진에서 순절하였다.
학문에도 깊고 성품도 강직한 분으로 알려졌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숙종 21년(1695)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23년(1697) 노강(鷺江)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박태보의 친필
노강서원은 영조 30년(1754년)에 중건되었고 정조 때에 전국에 650 여개의 서원이 있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원래는 노량진에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1969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 동재, 서재, 고직사 등과 출입문이 있으며 박태보의 위패가 사당에 모셔져 있다.
청풍정(淸風亭)
서계 박세당 선생이 매월당 김시습을 추모하기 위해 충렬사(忠烈祠)를 짓고
그 앞에 정자를 세워 유생(儒生)들과 함께 학문을 논강(論講)하던 곳인데 지금은 정자의 주춧돌만 남아있다.
위치는 의정부시 장암동산 161-1번지로 노강서원 바로 아래 맞은 편 개울가에 있다.
해마다 비바람 언덕 위에 몰아치고
왕은 영영 꽃구경을 하러 오지 못하누나.
천년토록 나그네들 이곳에서 슬퍼하니
꽃들아 강기슭에 무심히 피지마라
풍우년년만고대(風雨年年滿古臺)
군왕불복상화래(君王不復賞花來)
천추과객상심지(千秋過客傷心地)
막유잔방근수개(莫遺殘芳近水開)
~정재 박태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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