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기행(4/12) 도화원기와 세외도원

2014. 8. 13. 07:19해외여행

 

 

계림기행(4/12) 도화원기(桃花源記)와 세외도원(世外桃源)  

전쟁이나 세상이 어지러울 때, 또는 자연 재앙으로부터 평화와 평온를 갈구하고

불로(不老), 불사(不死)의 장생(長生)의 꿈을 꾸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현실세계와 다른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낙원이니, 에덴동산이니, 꿀과 젖이 흐르는 땅으로 그려왔고

도가(道家)사상에 심취되었던 고대 중국은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여 무릉도원이란 곳을 꿈꾸어 왔다.

그 무릉도원의 이야기가 바로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비롯된다.

이 도화원기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푸른 눈의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튼이 쓴 책 <잃어버린 지평선>힘을 빌어

상그릴라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신비의 장소로 알려졌는 데

이는 바로 서양에 알려진 무릉도원의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한 것이다.

 

 

@샹그릴라(Shangrila, 香格里拉)

샹그릴라(香格里拉)는 영국인 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유토피아, 무릉도원등과 같은 맥락의 <낙원>을 상기시키는 이상향의 상징어가 되고 있다.

 

 

 

 

이 샹그릴라(香格里拉)의 어원은 장족언어의 한 갈래인 방언에서 온 것이라 한다.

그 가운데 "香"과 "格"는 중디엔(中甸)지역의 옛 장족의 발음이라 한다.

티벳트어로 샹그릴라는 <푸른 달이 뜨는 언덕>이라는 의미라 한다.

현지 장족의 마음 속에 <香格里拉">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로 자리잡고 있다.

 

 

 

 

 

위에 언급한 책 내용은 식민지의 반란으로 급히 피난하게 된 바스쿨의 영국 영사 콘웨이가 우연히 일행들과 납치되어

히말라야 산중에 있는 라마교 사원인 <상그릴라>에 도착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소설이 출판된 후, 1944년 할리우드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하여 샹그리라라는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은 현실 속에서 나타났다.

이후, 반세기 동안 실제로 수많은 탐험가, 여행가, 지리학자들이 소설 속에 나온 샹그리라를 찾아

인도, 네팔, 티벳 등지를 뒤졌지만 소설 속에서 묘사한 풍경과 일치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다시 반세기 후 중국 운남성 더친/장족 자치주 경내에서 샹그릴라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1997년 9월 14일 중국 정부는 비로소 샹그릴라가 중국 운남성 더칭 장족 자치주 경내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 근래 들어 샹그릴라(香格里拉)의 명칭을 들고 운남성과 사천성의 다툼이 있었지만

결국 운남성이 공식적인 지역명칭을 얻어 종디엔(中甸)이 샹그릴라(香格里拉)의 명칭을 얻게 되었으며,

현재 발간되는 운남성 지도에서는 이제 종디엔(中甸)현이라는 명칭대신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낙원인 샹그릴라(香格里拉)현 이라는 이상향이 지리적으로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하게 되었다.

 

 

 

 

1)도화원기의 저자 도연명(陶淵明:365~427)의 석상

강주(江州) 심양군(尋陽郡(지금의 장시 성[江西省] 주장[九江])) 시상현(柴桑縣:지금의 싱쯔 현[星子縣])에서 태어 난

도연명(陶淵明:365~427) 이름은 잠(潛).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연명은 자이다.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宋:劉宋이라고도함) 초기에 걸쳐 생존했던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분이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남방의 토착 사족(士族)으로, 북조로부터 내려온 귀족이 절대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당시의 남조 사회에서는 영달의 길에서 소외된 압박받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도연명이 평생 동경했던 증조부 도간(陶侃:259~334)은 동진 초에

장사군공(長沙郡公)·대사마(大司馬:최고군사령관)까지 승진했고,

할아버지 도무(陶茂)도 무창(武昌)의 태수(太守)로 재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은둔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어머니는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의 장사(長史:막료장)였던 맹가(孟嘉)의 넷째 딸이었다.

도연명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었던 것 같다.

 

 

 

 

도연명의 첫번째 관료생활은 29세 때 자기가 살고 있던 강주의 좨주(祭酒:州의 교육장)로 취임한 것이었으나 곧 사임했다.

2번째 관료생활은 35세 때 당시 진(晉)나라 최대 북부군단(北府軍團)의 진군장군(鎭軍將軍)인 유뢰지(劉牢之)의 참군(參軍:참모)으로

취임한 것인데 이것 역시 곧 그만두었다. 3번째는 유뢰지의 휘하를 떠난 직후,

36~37세 무렵 형주(荊州:지금의 장링[江陵]) 자사(刺史) 환현(桓玄)의 막료로 취임한 것이다.

그러나 며칠 안되어 모친상을 당해 고향인 심양으로 돌아가 3년상을 치렀다.

이후 강주자사·참군 및 팽택(彭澤) 현령(縣令) 등의 관료생활은 고향에서 가까운 심양군 안에서 지냈다.

 

 

 

 

도연명이 10여 년에 걸친 관료생활을 최종적으로 마감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 시기는 의희(義熙) 원년(405) 11월 41세 때였다.

그는 팽택 현령이 된 지 겨우 80여 일 만에 자발적으로 퇴관했다.

퇴관의 결정적인 동기에 관해서는 다음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해말에 심양군 장관의 직속인 독우(督郵:순찰관)가 순찰을 온다고 하여

밑의 관료가 "필히 의관을 정제하고 맞이 하십시오" 하고 진언했더니,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월급)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손가"라고 말한 뒤

그날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宋書〉 隱逸傳).

 

 

 

 

또 한편으로 이때의 사퇴 동기에 관해서 도연명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취임해서 어느 정도 되자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벼가 익거든 빠져나가려고 생각하던 차에 누이의 부음이 들려오자 조금도 참을 수 없게 되어

스스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왔다"(〈歸去來辭〉 序).

이때 나온 작품이 유명한 〈귀거래사〉·〈귀전원거오수 歸田園居五首〉이다.

 

 

 

이리하여 도연명은 이후 죽을 때까지 20여 년 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고향에 은거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갑작스런 화재로 생가가 타버리자

그는 일가를 거느리고 고향을 떠나 주도인 심양의 남쪽 근교에 있는 남촌(南村:또는 南里)으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만년을 보내게 되었다. 이사한 후 술을 좋아하던 그는 차츰 빈궁한 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사를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강주의 장관 왕홍(王弘)을 비롯해서

은경인(殷景仁)·안연지(顔延之) 등 많은 관료·지식인과 친교를 맺을 수 있었다.

 

 

 

 

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후에 남조 송의 내각과 문단의 지도자가 된

왕홍과 안연지를 친구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연명의 시문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4언시(四言詩) 9수, 5언시 115수, 산문 11편이다.

이중 저작연대가 명확한 것이나 대강 알 수 있는 것은 80수뿐이다.

그밖의 것은 중년기 이후, 즉 그가 은둔생활을 보낸 약 20여 년 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2)桃花源記 序文 (도화원기 서문)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達桃花林

(진태원중 무릉인포어위업 연계행 망로지원근 홀달도화림)

진(晉)나라 태원년간에 무릉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물길을 따라 갔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를 무렵

홀연히 복숭아꽃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來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내안수백보 중무잡수 방초선미 낙영빈분)

양쪽 강을 끼고 수백 보의 거리에 온통 복숭아나무뿐이며 다른 잡목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향기로운 풀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자랐고 복숭아 꽃잎이

펄펄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있었다.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便得一山. 山有小口 彷彿若有光. 便舍船從口入.

(어인심이지 부전행 욕궁기림. 임진수원편득일산. 산유소구 방불약유광. 편사선종구입.)

어부는 이상하게 여기고 계속 앞으로 나가 복숭아 숲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했다.

숲은 강 상류에서 끝났고 그곳에 산이 있었으며,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속으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즉시 배에서 내려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初極狹 才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良.

(초극협 재통인 부행수십보 활연개량.)

동굴은 처음에는 몹시 좁아 간신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십 보를 더 나가자 갑자기 탁 트이고 넓어졌다.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토지평광 옥사엄연 유량전미지상죽지속. 천맥교통 계견상문.)>

其中往來種作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초 竝怡然自樂

(기중왕래종작남여의저 실여외인 황발수초 병이연자락.)

토지가 평평하니 넓고 집들이 정연하게 섰으며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사방으로 길이 트였고

닭과 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마을에서 왔다갔다하며 농사를 짓는 남녀의 옷차림은

다른 고장 사람들과 꼭 같았으며,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다들 즐거운 듯 안락하게 보였다.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견어인 내대경 문소종래 구답지 편요환가 설주살계작식.)

사람들은 어부를 보자 크게 놀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부가 자세히 대답하자 그들은 어부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을 내고

닭을 잡아 대접을 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어부가 왔다는 말을 듣고 와서 저마다 물었다.

 

 

 

 

自云: 先世避秦大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자운: 선세피진대란 솔처자읍인래차절경불부출언 수여외인간격.)

問今世何世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爲具言 所聞皆歎완.

(문금세하세내부지유한 무론위진. 차인일위구언 소문개탄완.)

집 주인이 이르길 "우리 선조가 진(秦)나라 때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絶境)으로 와 다시 나가지 않았으므로 바깥 세상 사람들과 단절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때냐고 묻는 것을 보니, 그는 한(漢)나라가 있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그 뒤로 위(魏)나라와 진(晉)나라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하였다.

어부가 지난 역사를 하나하나 자세히 이야기해 주자 모두들 놀라며 감탄했다.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 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여인각부연지기가 개출주식. 정수일 사거. 차중인어운: 부족위외인도야.)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어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술과 밥을 대접했다.

어부는 며칠을 묵은 후 작별하고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誌之.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

(기출 득기선 편부향로 처처지지. 급군하 예태수 설여차.)

어부는 마을을 벗어나와 배를 얻어타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군데 표식을 했다.

읍에 이르자 태수를 찾아가 그대로 보고를 했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

(태수즉견인수기왕 심향소지 수미불부득로.)

태수는 즉시 사람을보내 어부가 표식한 곳을 찾아가게 했으나

결국 길을 잃고 도화원으로 통하는 길을 찾지 못하였다.

- 서문 끝 -

 

 

 

桃花源記 本詩 (도화원기 본시)

 

嬴氏亂天紀(영씨난천기): 진(秦)나라 임금이 천도를 어지럽히자

賢者避其世(현자피기세): 현자들이 세상에서 몸을 숨겼다

黃綺之商山(황기지상산): 은둔자들도 상산으로 갔지만

伊人亦云逝(이인역운서): 그들 역시 이곳으로 피해 왔더라

 

 

 

 

往迹浸復湮(왕적침복인): 은신해 갔던 발자욱은 묻혀 지워졌고

來逕遂蕪廢(내경수무폐): 도화원으로 오던 길도 황폐해 버렸다

相命肆農耕(상명사농경): 그들은 서로 도와 농사에 힘을 쏟고

日入從所憩(일입종소게): 해가 지면 편하게 쉬더라

 

 

 

 

桑竹垂餘蔭(상죽수여음): 뽕과 대나무가 무성하여 그늘이 짙고

菽稷隨時藝(숙직수시예): 콩과 기장을 때를 따라 심더라

春蠶收長絲(춘잠수장사): 봄누에 쳐서 비단실 거두고

秋熟靡王稅(추숙미왕세): 가을 추수에 세금 안 바치더라

 

 

 

荒路曖交通(황로애교통): 황폐한 길이 희미하게 틔였고

鷄犬互鳴吠(계견호명폐): 닭과 새가 서로 우짖는다

俎豆猶古法(조두유고법): 제사도 여전히 옛법 그대로이고

衣裳無新製(의상무신제): 옷도 새로운 형식을 따르지 않더라

 

 

 

 

童孺縱行歌(동유종행가): 어린아이들은 멋대로 길에서 노래하고

斑白歡游詣(반백환유예): 백발 노인들은 즐겁게 서로 찾는다

草榮識節和(초영식절화): 풀 자라니 온화한 봄철임을 알고

木衰知風厲(목쇠지풍려): 나무 시들자 바람이 찬 겨울임을 아노라

 

 

 

 

雖無紀歷志(수무기력지): 비록 달력 같은 기록은 없어도

四時自成歲(사시자성세): 사계절 변천으로 일년을 알 수 있노라

怡然有餘樂(이연유여락): 기쁜 낯으로 마냥 즐겁게 살고

于何勞智慧(우하노지혜): 애를 써서 꾀나 재간을 피우지도 않는다

 

 

 

 

奇蹤隱五百(기종은오백): 흔적 없이 가리워진지 오백년 만에

一朝敞神界(일조창신계): 홀연히 신비의 세계가 나타났으나

淳薄旣異源(순박기이원): 순박한 도원경과 야박한 속세가 맞지 않아

旋復還幽蔽(선부환유폐): 이내 다시 신비 속으로 깊이 숨었노라

 

 

 

 

借問游方士(차문유방사): 잠시 속세에 노는 사람에게 묻노니

焉測塵囂外(언측진효외): 먼지와 소음 없는 신비경을 아는가?

願言躡輕風(원언섭경풍): 바라건대 사뿐히 바람을 타고

高擧尋吾契(고거심오계): 높이 올라 나의 이상향을 찾으려 하노라

  ~끝~

 

@본시 윗 부분 첫머리에 영씨(贏氏)란 진(秦)나라 시왕제의 성씨를 일컷는 말이다

(아래 3가지 그림은 진체로 쓴 도화원기로 펌한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