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천성 기행(6/8) 청두 무후사와 금리거리

2013. 8. 18. 00:06해외여행

 

 

 

사천성기행(6/8) 청두 무후사(武候祠)와 금리(錦里)거리

 

청두(成都)는 민산산맥에 둘러싸인 쓰촨분지 서부, 청두[成都] 평원 중앙에 위치하며 

충칭, 상하이, 베이징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도시 중 하나에 속하며

청두의 인구는 1000만명에 달하는 큰 도시다.

예부터 청두는 하늘이 내린 천부의 땅이란 의미로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불리든 곳이며

 양자강, 민강, 튀장강, 자링강의 4개의 강이 여기서 합류하는 곳이다.

 전국시대부터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문화의 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수도였고,

진(秦)·, 전한(前漢) 때는 촉군(蜀郡)이 관할하는 청두현[成都縣]이 설치되었고,

 후한(後漢) 때에는 이저우[益州]의 통치도 겸하게 하였다.

삼국시대 때 유비(劉備)가 촉한을 통일하고 이곳에다 수도를 건립하였기 더욱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삼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의 중심지로서 번영한 청두는

당(唐)의 안사의 난 때에 현종(玄宗)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한 곳이다.

 수당(隨唐) 시대 때는 창안[長安], 양저우[揚州], 둔황[敦煌]과 같이 4대 도시로 알려졌으며.

 옛날부터 방직업이 발달되었고, 1928년에 성도가 설치되었다.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시되어 청대에는 쓰촨 총독 및 청두 장군을 이곳에 주둔시켰고,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선 뒤 1930년에 시제를 실시하였다.

 

 

역사가 있는 도시라 부근에는 사적이 풍부한데

그 중에서도 제갈 량(諸葛亮)을 모시는 무후사(武侯祠)를 비롯하여 두보초당(杜甫草堂)·

망강루(望江樓) 다쭈석각[大足石刻], 등이 있다. 항공, 전자, 강관, 제약, 면방직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농산물로는 유채, 참깨, 목화, 사탕수수 등을 산출한다.

민장[岷江]의 수운에 의하여 수륙교통의 요충을 이루며,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천부지국이라는 이름답게 부를 누리는 도시다.

특히 비단, 칠기 등이 예로부터 유명하며

중국 8대 요리 중에 하나에 속하는 쓰촨요리(사천요리)가 유명한 곳이다.

 

 

 

<무후사(武候祠)>

유비현덕과 제갈공명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사당이다.

원래는 유비와 공명의 묘가 각각 따로 있었는데 14세기에 합쳤다고 한다. 

원래의 명칭은 유비의 시호 소열제에서 따서 한소열묘였지만

제갈공명의 지혜를 숭상했던 사람들이 그의 시호인 충무후(忠武候)를 본떠서 무후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총면적은 3만 7천 평방미터로 현존하는 건물은 1672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사당 내에는 유비의 묘라고 전해는 혜능을 비롯하여 유비전, 제갈량전이 있다.

문장, 서법, 석각기술면에서 뛰어난 삼절비 등과 삼국지연의 곳곳에서 등장하는 관련자료등이 많이 있다.

 

@당비(唐碑)

당나라 원화(元和) 4년(829년)에 새운 비석으로 <촉승상제갈무우사당비(蜀丞相諸葛武候祠堂碑)로 불린다.

당나라의 유명한 제상 배도(裵度)가 문장을 짓고, 서예가 유공작(柳公綽)이 쓰고,

명장 노건(魯建)이 비석에 새겼다.

글, 서예와 더불어 조각기법이 뛰어나 <삼절비(三絶碑)>로 불리운다.

 

 

@명비(明碑)

명나라 가정(嘉靖) 26년(1547)에 세운 비석으로

장시철(장시철)이 문장을 짓고 고등(고등)이 비석을 세웠다. 


 

@출사표(出師表)

촉의 황제 유비가 죽자 그의 유지를 받들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유비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유선황제에게 올린 두 번의 북벌전쟁에 임하는 제갈공명이 올린

출전서로 첫 번 출사표는 전출사표라 하고 두 번째 올린 출사표는 후출사표라고 한다.

 2번째 북벌에 실패한 공명은 병을 얻어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2차 불벌시 언제나 물러설 퇴로를 마련한 공명이지만

공명의 수제자 마속의 교만으로 기회를 잃고 생긴 울면서 마속을 죽인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유명한 고사가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다.

 

무후사에 걸린 <명량천고(明良千古)> 현판.

明은 유비를 가리키고, 良은 제갈량을 가리킨다.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은 천고에 빛나는 영웅의 만남이라는 뜻인데

明 자의 明에는 날일(日) 변이 아닌 눈목(目) 변을 일부러 사용했다.

절세의 영웅 제갈량이라는 인재를 알아본 유비의 눈이 밝았다는 의미로

날일(日)자 대신 눈목(目)자로 의도적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무후사의 사당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촉의 명장과 책사등의 입상을 전시해 놓고

유비와, 장비, 관우의 입상은 따로 전각에 모셔져 있다.


 

 

@황충(黃忠 ?~220년)

자는 한승(漢昇), 원래는 유표의 신하였으나 유비에게 귀순하여

 관우장비 등과 함께 촉의 오호대장군에 오를 정도로 명장이다.

위나라와 전쟁 때 정군산(定軍山) 전투에서 조조의 유명한 장군 하우연을 창살함으로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의 석상은 청나라 도광(道光) 9년 세워졌다.

 

 

@손건(孫乾 ?!212년)과 조운(趙雲 157~229)

손건은 유비의 장수 중 하나, 그의 석상은 도광29년(1849)에 세워졌다.

조운은 삼국지에서 조자룡으로 불리는 유비의 오호장군 중 한 분으로 자룡(子龍)의 그의 字 이다.

상산진정(常山眞定 하북 정정) 출신으로 처음에는 공손찬의 신하였으나

 유비에게 귀순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촉의 장군. 유비의 북벌전쟁을 만류하기도 했다.

조운의 입상은 무인인데도 불구하고 문인으로 세워져있다.

그의 석상은 청나라 도광 29년에 세워진 것이다.

 

 

@장비(張飛? ~221)

장비는 관우와 더불어 삼국지에서 익히 잘 알려진 장수. 자

는 익덕(益德) 탁군(하북성 소재)출신으로 유비의 명장 관우와 더불어 도원결의 삼형제 중 막내가 된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하여 도망가는 중 장판교서 홀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 일화는 유명하다.

관우가 죽은 후에 그의 부하에게 또한 죽임을 당했다.

그의 석상은 청나라 건륭 53년(1788)에 세워졌다.

 

 

@유비(劉備161~223)

위의 조조, 오의 손권과 더불어 삼국지의 주역인 유비의 자는 현덕(玄德)으로

탁군탁현(하북탁군) 출생으로 한나라 말기 때 장비와 관우 삼형제 도원결의를 맺고

군사릉 일으켜 중원지역에 주둔했으나 각고 끝에 221년 성도(成都)에 촉나라를 세우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오나라 토벌 때 오의 명장 육손의 화공에 의해 참패하고

그 전쟁의 후유증으로 백제성(白帝城(중경봉절)에서 사망했다.

그의 석상은 청나라 강희 11년(1672)에 세워진 것이다.


             

            @유심(劉諶)

유비의 손자로 북지왕으로 불린다. 그의 아버지 유선이 위나라에 항복하자 이에 분노하여 자살하였다.

그의 석상은 청나라 건륭 53년(1788)에 세워진 것이다. 

 

 

@관우(關羽?~219)

유비와 도원결의 한 형제, 삼국지에 등장하는 촉의 명장,

위나라의 조조가 탐을 냈던 촉의 장군으로 자는 운장(雲長).

명나라 때부터 신격화 되어 관제(關帝)로 숭상되었다.

그의 석상은 청나라 건륭53년(1788)에 세워진 것이다. 


@의박운천(義薄雲天)

관우의 사당이 있는 정원당(靜遠堂)에 걸린 현판.

의리가 하늘의 구름처럼 두텁고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관우의 의리플 찬양한 것이라고 한다. 

 

 

@업려고광(業侶高光)

유비를 계승하여 한(漢)의 고조(古祖) 유방과 광무제 유수가 제업(帝業)을 크게 일으켰다는 뜻

 

 

@방통(龐統 178~213)

촉의 제갈량과 쌍벽을 이룬 모신(謀臣), 자는 사원(士元),

제갈량의 별호가 와룡(臥龍)이듯 방통의 별호는 봉추(鳳雛),

삼국지에 의하면 난봉파에서 죽었다.

삼국지에서는 그의 얼굴이 너무 추해서

 오나라 손권도 촉의 유비에게도 첫 대면 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여기 세워진 석상을 보니 그렇지도 않다.

 

 

@제갈량(諸葛亮 181~234)

자는 공명(孔明)으로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출사하여 세상에 이름을 날린 지략가이며 명재상.

234년 위나라 토벌 때 병사했다. 그의 시신은 섬서성 면현 정군산(定軍山)에 매장되었다.

그의 석상은 청나라 강희 11년(1672)에 세워진 것이다.


 

@명수우주(名垂宇宙) 

무후사에 걸린 현판으로 이름이 우주에 드리운다는 뜻인데

이는 제갈공명의 지헤를 찬양하여 세운 현판인 듯하다.

무후사(武候祠)의 무후는 제갈공명의 시호인 충무후에서 따온 것이다. 

 

  종루

 

   고루

 

청동양로

 

 

 

 

 

 

 

 

혜능은 유비의 묘를 일컫는 말

 

@천추름연(千秋凜然)

오랜세월 위엄이 있다는 의미

 

 

 

@금리(錦里)거리

옛 삼국시대의 촉의 수도인 성도의 당시 거리를 재현하여 만든 거리라고 한다.

우리네 인사동과 비슷하며 먹거리와 다양한 상품을 팔고 있다.

 

 

 

 

 

 

 

 

 

 

 

 

 

 

 

금리거리에 세워진 서촉제일상가문, 앞쪽은 금리라는 문패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