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7. 19:14ㆍ국내 명산과 사찰
(문수봉에서 바라 본 삼각산)
삼각산(三角山) 도선사(道詵寺)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난
세월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삼각산 하면 떠 오르는 이 시(詩). 병자호란 때 결사항전을 주장하다 심양으로 끌려간 김상헌(1570~1618)의 시(詩)다. 오늘을 사는 데에 쫓겨 흘러간 역사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로 여기고 망각의 세월 속에 사는 이 중생이 얼마나 그 때의 처절한 심경을 알겠는가마는 북한산을 바라보묘 이 시를 생각하면 호연지기(浩然之氣) 보다 숙연해지는 것은 왜 일까? ...마음 속에 그래도 쬐그마한 호국정신이나마 남아서일까.
북한산 입구 우이동에 자리한 호국불교 참회도량으로 자리매김한 도선사(道詵寺)는 1100여년전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웅전 옆 마애불은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할 때 신통력으로 큰 바위를 갈라 주장자로 새긴 것이라고 전한다. 사찰의 규모로 보면 도선사라는 사찰이 그리 큰 것은 아닌데 우리에게 회자하는 것은 아마도 흘러간 옛 역사 속의 국사의 이야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다가 입적하신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청담대종사에 대한 추모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해충의 침입을 막기위해 그물망을 쳐놓은 사천상.
동서고금을 통해 사천왕상에 그물을 드리운 것은 도선사가 유일무이한 것이 아닐까?
허긴 옛 궁궐의 처마에도 <부시>라 하여 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그물망을 둘렀서니...
발우(鉢盂)
발(鉢)은 범어(梵語) patra의 약칭. 우(盂)는 중국말로 밥그릇이란 뜻. 이것은 범어(梵語)와 한어(漢語)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번역하여 응량기(應量器)라 한다. 비구가 걸식할 때에 사용하는 식기(食器)로 발우는 또 바리때라고도 한다. 세상을 담는 그릇이라고 명명한 이 발우 부처님의 발우이리라..
포대화상의 배꼽을에 손을 얹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번 돌리면 무병, 장수, 부귀가 따른다나 뭐라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대화상의 배꼽을 돌렸길래 저리 되었을까? 정녕 불교가 이런 것이 아닌데...
윤장대(輪藏臺)
윤장대의 유래를 보면 대층감(大層龕: 큰 감실)의 중심에 일주(一柱: 기둥 하나)를 세우고 팔면(八面)을 열어서 일체경(一切經)을 올려놓고 기륜(機輪)을 설(設)하여 시전(施轉)할 수 있게 한 것을 윤장(輪藏)이라 한다. 한번 돌리면 간독(看讀 :읽음)한 것과 그 공(功)이 같다. 양(梁)나라 전대사(傳大士)가 만들었다. 석문정통(釋門正統) 탑묘지(塔廟志)에「 다시 제방(諸方)의 불찰(佛刹: 불국토)에 장전(藏殿)을 세운 것은 처음 양조(梁朝)의 선혜대사(善慧大師)(전흡현풍 傳翕玄風)가 모든 세상 사람들이 비록 이 도(道)에 파지(頗知: 잘못 알음)하여 신향(信向)하나 그러나 법보(法寶)로 속명(贖命)하고 혹은 남녀가 나면서부터 글자를 알지 못하거나 혹은 글자를 알아도 타연(他緣)에 핍박(逼迫)되어 피열(披閱: 펼쳐 읽어 보는 것)할 겨를이 없는 것을 민망하게 여겨 대사가 이것을 위하여 특별히 방편을 베풀어 전륜(轉輪)의 장(藏)을 창성(創成)하여 신심(信心)이 있는 자가 한번 돌리게 되면 간독함과 공(功)이 같게 하므로 그 자서(自誓)에 말하기를 내가 장문(藏門)에 오른 것은 世世에 사람의 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것이며 능히 수없이 윤장(輪藏)을 돌리는 것은 이 사람의 쌓은 공덕(功德)이 송경(誦經)함과 다름이 없다.(이햐 생략)」라고 했다.(출처:불교대사전/불광출판사)
명부전
명부전에서 바라본 전경
범종각
반야굴이다. 세분의 보살을 모시고 있다.
반야굴의 3보살
중앙에는 일면관음보살을 오른 쪽에는 문수보살 그리고 왼쪽에는 보현보살을 모셨다. 반야는 큰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문수보살과 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모신 것은 이해가 가는데 석가모니가 아닌 일면관음보살을 모신 것은 왜 일까. 반야심경을 의식해서 관세음 즉 관음보살을 중앙에 모신 것일까?
그렇다면 사리자는 어디에 모셔져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심광명각
삼성각
마애불
대웅전
웬지 오늘따라 부처님을 담기가 불경스러운 마음이 들어 멀리서 망원렌즈로 담았다.
(청담대종사 동상)
잘 된다고 기뻐하지 말라, 모든 것은 내 마음의 그림자다.
망한다고 슬퍼하지 말라, 모든 것은 내 마음의 그림자다.
그림자가 굽었다고 미워하지 말고 바로 서라.
내 마음이 바로 서면 온 세상이 바로 선다.
청담스님의 생활 명상집 <마음꽃다발> 내용의 일부다.
그림자가 굽는 것은 그 모습이 굽어 있기 때문이듯,
세상 모든 일을 대할 때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마음 법문을 강조했던 스님은 1902년 진주에서 태어나 보통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3.1운동 당시에는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진주농업전문학교에 진학한 그는 집 근처에 있는 호국사를 자주 찾았다. 하루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있는데 등 뒤에서 한 노승이 말을 걸었다. 목이 타면 그처럼 물을 마시면 되네. 하지만 마음이 탈 땐 무엇으로 그 불을 끌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듣고 난후 여러 생각을 하게 됐고,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 하지만 2대 독자였던 터라 출가하려 하자 그의 아버지는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하지만 그의 출가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25살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와 경북 옥천사로 출가해 불경공부와 수행에 매진했다.
(스님의 탑비)
성불(成佛)을 한 생 늦추더라도 중생을 건지겠다.
다시 생을 받아도 이 길을 다시 걷겠다.
육신(肉身)은 죽어도 법신(法身)은 살아 있다.
비구승과 대처승의 대립 속에 불교정화 운동을 이끌면서
대한 불교 조계종의 기틀을 담은 청담스님(1902~1971)의 말이다.
청담(靑潭)은 법호이며 순호(淳浩)가 법명이다.
25세 때인 1926년 경남 고성군 옥천사로 출가한 스님은 박한영 스님과 만공스님을 사사했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회의장, 장로원장, 종정을 지냈으며
1971년 11월 15일 세수 70세, 법랍 45세로 입적하셨다.
우측 바위가 붙임바위다. 나무아미타불 글씨가 암각되어 있다.
길 옆에 세워져 있는 天地同根(천지동근) 萬物一體(만물일체) 석주
천지는 한 뿌리요 만물은 한 몸이라는 뜻인데 어이하여 이 내몸은 여기인데 산은 저기 있는가?
어이할꼬, 어이할꼬 이 두꺼운 업장을..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 三日脩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
백년 탐하여 모은 재산 하루 아침의 티끌에 지나지 않고
삼일 닦은 마음은 무량한 보배라는 의미다.
돈을 신으로 숭배하는 작금의 이 시대에 정녕 이 말이 가슴에 들어갈까?
재빛하늘 바라보며 홀로 웃을 수 밖에..
손삼각대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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