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성 곤명기행(10) 서산 용문

2012. 2. 27. 00:24해외여행

 

 

 

운남성 곤명기행(10) 서산 용문

용문석굴은 곤명시의 남쪽에 위치한 중국에서 6번째로 큰 담수호인 곤명호를 끼고 있는 서산에 위치하고 있다.

서산은 미인이 누워있는 형상을 닮았다하여 미인산(美人山)으로 불리기도 하고,

부처가 누운 상을 닮았다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고 불리는 산이기도 하다.

용문석굴은 도교의 석굴이며 1840년부터 1853년까지

13년에 걸쳐 70여명의 석공들이 밧줄에 매달려 돌을 조각하고 길을 뚫고 석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용문 석굴을 보려면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데 약 20여분 걸린다.  

 

@서산이라 명명된 유래를 보면, 옛날에 한 어부의 딸이 있었는데 굉장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때가 되어 혼사를 치루고 신랑과 살고 있었는데 임신 6개월이 되던 어느 날

여색을 밝히는 이웃의 부자가 미모가 빼어난 그녀를 첩을 삼고자 흑심을 품고는

신랑을 곤명호에 익사 시켜버렸다고 한다.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어부의 딸은

남편의 장례를 치루고 신랑의 뒤를 따라 강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때마침 호수를 지키는 용왕의 막내딸 살려주었는데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는 원수를 갚아주기로 했다.

 그러나 용왕의 딸이기는 하지만 미물인지라 달리 방법이 없어 홍수를 일으켜서 복수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단다.

그리고 신비한 약을 어부의 딸에게 건네주면서 이르기를 만약 남자가 이 약을 먹으면 송이가 되고

 여자가 이 약을 먹으면 산이 된다고 일러주었는데 용왕이 홍수를 일으키자

어부의 딸은 약을 먹고 산으로 변해서 모든 물길을 부잣집으로 향하도록 하여 원수를 갚았다고 하는 전설이 서려있다.

 

 

 

@서산의 용문석굴은 돈황(敦煌)의 막고굴(莫高窟), 대동(大同)의 운강석굴(雲岡石窟)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석굴이라는 불리는 하남성 낙양의 용문석굴(龍門石窟)과 다르다.

서산의 용문석굴은 도교의 사원이지만 낙양의 용문석굴은 불상(佛像)을 모신 석굴이다. 


가는 길에 방치된 옛정자가 보인다. 리프트가 설치전에는 걸어서 다닌 모양이다.


 

 

용문석굴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정자. 활연정(活然停)이라고 한다.


 

서산에서 내려다 본 윈난 성[雲南省] 쿤밍의 남쪽에 있는 호수 곤명호다.

 서태후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었다는 북경 베이징(北京)의 만수산(萬壽山) 아래에 있는

인공호수 쿤밍호(곤명호)와는 이름은 같지만 다른 호수다.

운남성의 곤명호는 중국어로 뎬츠호라 하는데 뎬츠 호는 운남성 동부지역에서 가장 큰 호분군(湖盆群) 안에 있으며

고도 2,664m에 달하는 약왕 산맥[梁王山脈] 남쪽에 위치해 있다.

뎬츠 호는 남북길이가 약 40㎞, 폭이 12.8㎞이며 깊이는 약 7.5m이다.

호숫가 동·서부에는 약왕 산맥이 급경사로 솟아 있으나,

북쪽으로는 광활한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원대(元代 : 1279~1368)와 명대(明代 : 1368~1644) 초기 이래로 이곳에 집약적으로 관개(灌漑)를 해왔다.

그 이전에 이 지역은 때때로 중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갔을 뿐이었다.

이 지역에 정착 농경민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늦어도 BC 2세기부터이다.

이 지역은 BC 109년 이후로 한(漢 : BC 206~AD 220)의 조공국이 된

전국(滇國), 남조(南詔)의 여러 국가들(8~10세기), 대리국(大理國 : 10~13세기) 등

이 지역에 차례로 세워졌던 독립국의 중심부였다.<출처: 백과사전>


채운동이다. 징으로 쪼아 만든 흔적이 역역하다.


  절벽에 길을 낸 벽홍협 

 벽홍협에서 내려다 본 곤명호 운무가 낀듯 시계가 흐리다. 물빛도 녹조형상이 짙다.


 

                                

            

                               

                        아래로 내려가는 유학이라 명명된 석굴



   



 

달천각이라는 석굴이다. 천장의 돌을 쪼이면서 돌가루가 들어가지 않도록

천으로 눈을 가리고 쪼았다고 해서 맹각이라고도 불린다.

위의 작품은 스승이 했고 그 밑에는 제자의 작품이라 솜씨가 완전히 틀리게 보인다. 


용문입구는 달천문 옆에 세워져 있다. <용문(龍門>이라고 쓰인 글자 밑에

반구형의 돌출부분이 있는데 이게 여의주란다.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는 오른손으로 만지면 출세 할 수 있단다. 

모두들 호김심으로 만져보고 가는데.. 걸쎄.

<용문(龍門>이란 말은  평범한 잉어가 폭포를 뛰어 넘으면 용으로 변신을 했다고 해서 유래된 말인데

등용문의 길은 옛날에는 입신출세하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등용문에 오른다고 했다. 

과거급제도 장원급제, 방원급제, 타마급제라 하여 급제에도 급수가 있어다고 한다.


              

                                               

 

 

  

 

 

 

 

도교의 보타전인데 불교의 보타전과는 영 딴판이다. 보타전은 불교에서는 관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이다


 

바위에 암각한 <용등옥경>. 옥경(玉京)이란 말은 도교에서 유래한다.

도교의 경전인 도장(道藏)에 의하면 36천(天)의 천계(天界)가 있으며

 천국의 꼭대기에 대라천(大羅天)이 있다고 한다.

 그 수도를 옥경(玉京), 옥황(玉皇)이라고 한다고 했다.

 <위서>와 <석노지>에도 천지 사이에 36천이 있고

그 가운데 36궁이 있으며 궁마다 주재자가 있다.

최고의 주재자는 무극지존(無極至尊)이니 이는 곧 옥화상제다 라고 하는 그 옥경은

옥화상제의 거소의 의미도 되고 옥화상제를 가리키는 의미도 된다.


 

<불곡운심>이란 이 글귀는 원통사의 팔각정에도 걸려있다.

불곡이란 부처님이 거소를 말하면 이 부처는 관음보살과 연관된다.

 관음의 성지가 보타낙가라는 섬이기 신비한 구름이 짙게 덮고 있음을 표현한 것인데

도교에서 이른 말을 사용한 것은 도교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무당산의 깊은 운무를 의미하는 것인지...


 

                     도교사원인데 보타선경이란 현판을 새겼다. 걸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바위에 암각한 용이다. 색감이 없어 덧칠해 보았다.


           용문석굴 앞 풍경이다. 어느 여행사의 가이드인지 아님 관광객인지 폼이 그러듯하여.. 

 

 

효우천의 송아지다.

@옛날에 조오라는 백정이 살았는데 우시장에 가서 엄마소와 송아지를 사 가지고 왔다.

하루는 백정이니 소를 잡아 고기를 팔려고 엄마소를 죽이려고 칼을 빼들었는데

 밖에서 조오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봤더니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들어와 보니 방금 전에 있었던 칼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다보니 송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더란다.

배 아래에 칼을 감추고 있는 모습을 본 조오는 감동을 받고 그 길로 백정 일을 그만두고

소 두 마리를 데리고 서산으로 들어가 살았다.

 세월이 흘러 어미 소는 죽고 송아지는 어느새 어미 소가 되었다.

이곳에는 물이 나지 않아 산 아래로 내려가 물을 길어다 먹었는데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이를 느낀 소는 엄마소를 죽이지 않은 것에 보답하고자 자기의 뿔로 바위를 쪼아서

샘물이 솟아나게 해서 은혜를 갚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우물을 효우천(孝牛泉)이라고 했는데 송아지 옆 우물이 바로 효우천이다.

 

진무대제의 영상이다. 도교의 기록에 의하면 정락국(淨樂國)의 태자가

무당산에 와서 수행을 하는데 의지가 박약하여 속세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산을 내려갈 때 한 노파가 우물가에서 쇳덩이를 갈고 있었다.

호기심에 왜 쇳덩이를 갈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노파는 웃으면서 이 쇳덩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고 했다.

이 소리를 들은 태자는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무당산으로 돌아가 다시 각고의 수련을 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 태자가 바로 진무대제이다.

지금도 무당산에는 그 노파가 쇳덩이를 갈았다는 우물이 남아 있는데

그 우물을 마침정(磨針井)이라 불린다고 한다. 


 

도교는 중국 전통문화인 유(儒), 불(佛), 도(道)가 하나로 융합된, 중국 본토의 종교다.

주요 사상으로는 노자사상으로 당연히 고대사회의 귀신숭배사상과 무술문화,

전국시대의 신선사상등이 내포되어 있다. 노자가 말하길

도를 수련하면 능히 160~200세지 살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로불사를 추구하는 신선학과 노자의 도교사상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자는 도교의 교주라 불린다.

 

도교의 창시자는 동한말의 장능(張陵)으로, 장사제라 불린다.

그의 손자 장노(張魯)는 한나라 중엽 정교를 건립하고 정권을 잡았는데,

 후에 조조를 따랐다고 한다. 장노의 아들인 장성(張盛) 역시 4대 장사제로

강서 용호산(龍虎山)에서 존엄함을 빛내고 수련하였으며,

용호산 역시 최고의 도교 명산으로 유명하다.

무당산은 중국 3대 도교명산중의 가장 으뜸으로 명성조 주제(朱梯)와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다.

당 승조 때, 강서 용호산(龍虎山)은 장(張)천제가 수련하던 곳으로 추앙받던 곳이다.

명성조인 주제(朱梯)는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을 스스로 진무전세(眞武轉世)라 칭했다고 한다.

후세에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주제 본인은 정락국(淨樂國)의 왕태자였으나

 왕을 이을 생각이 없고 오직 신선이 되고 싶어 했다.

주제는 무당산에서 수련을 하여 도(道)를 얻었으며,

주제가 왕위를 버린 후로 무당산은 초목이 무성하여 크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재물신이다. 호랑이 아가리에 손을 깊어 넣으면 재물이 생긴다나... 

 

삼청각입구다. 도교에서는 삼청이란 말을 사용하는 데 

삼청(三淸)은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는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의 3궁을 가리키는 말이다.

 

 

 

                    곤명이 자랑하는 백일홍이다. 정월에 붉은 꽃이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