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성 곤명기행(8) 대관루

2012. 2. 19. 21:48해외여행

 

 

운남성 곤명기행(8) 대관루(大觀樓) 

곤명시 서쪽, 곤명호를 사이에 두고 서산과 마주하고 있는 대관루는

 곤명시내에서 서남쪽으로 약 2km정도 떨어진 곤명호 호수변 대관루공원 안에 있다.

 대관루공원은 근화포(近華浦), 누외루(樓外樓), 화원(花園) 등의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다.


 

대관루는 1682년 청나라 강희제 때 관음사라는 절이 있던 곳에 조성되고

1695년 2층 목조로 증축했다가 효실된 것을 1883년 3층 건물로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처음 현판은 곤명의 서예가 육수당(陸樹堂)이 새긴 것이라 하며

이는 1857년 전쟁으로 소실되고

지금의 현판은 1888년 조번(趙蕃)이라는 민족 시인이 다시 새긴 것이라 한다. 


 

대관루는 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물로 3개의 층으로 되어있는데,

위층에는 <발랑천층(拔浪千層)>이라고 새겨진 편액이 걸려 져 있다.

이 편액은 1855년 황제가 친히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문의 양쪽 기둥에는 청나라 건륭연간에 손염옹이 180자의 긴 대련을 적었는데,

 그 기세가 대단히 웅대하고 뜻이 매우 깊어, 수백년동안 사람들 입에

 「천하제일장련(天下第一長聯)」이라고 불리는 대련(對聯)이 걸려있다.

이 긴 대련으로 인하여 대관루는 중국의 명루에 올랐고,

무한(武漢)의 황학루(黃鶴樓), 악양(岳陽)의 악양루(岳陽樓), 당태종의 아우 등왕 이원영이 세우고

당나라 시인 왕발의 서문이 새겨진 등왕각(騰王閣)이라 불리는

남창(南菖)의 등왕루(騰王樓)와 더불어 중국 4대 명루라 불린다.

또한 이곳에서는 4계절 꽃 전시회가 열려 매년 정월달과 8월이면

난 구경을 하러 온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아직은 그런 때도 아니건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중국의 춘절이라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더구나 시간에 쫓기는 팩케지 여행이다 보니

사람들의 물결에 치어 어느 하나 제대로 둘러볼 수 없는 아쉬움만 남겼다.


 

 

 

             대관루 옆에 모형을 다시 조성해 놓았다. 아마 효실 되기전 구모습을 제현한 듯 한데..


대관루 옆에 또다른 모형이 있어 무심코 지나쳐 가다 다시 돌아와 현판을 보니

등왕각을 축소하여 만든 것이다. 대관루가 중국의 4대 누각 중 하나임을 의미하기 위함인듯..

 

       

                       이 조형물은 현판을 보니 황학루의 축소모형이다.

               

  황학루의 원형모습이다. 그런데 4대 누각중 악양루의 모형만 빠졌다.

                  

                  

                                                                   악양루의 원형


 

                    대관루공원에는 이런 조형물이 많다. 자연석이라기 보다는 가공한 인위적인 것 같다.


                               

                                        지금의 대관루가 효실되기전 처음 모습인듯


 



 


 



                 

청나라 건륭 때 곤명의 시인들이 시회(詩會)를 개최하는데

손씨 성을 가진 초라한 선비가 나타나 시인들의 쓴 시를 비판하였다.

모인 시인들이 바라보니 구레나룻수염이 특이한 사람이라

그러면 당신이 한 수 지어보라 했더니 단순에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 동상의 주인인 손염이다.

 

오백리전지분래안저피(五百里滇池奔來眼低披)

금안책희망망공활무변(襟岸幘喜茫茫空闊無邊)

 

오백 리 전지가 눈앞에 환희 들어오고

옷깃두룬 기슭에 기쁨이 솟는데 망망한 허공은 끝이 없네.


 

 

 

호랑이에게물리면서도 애기 송아지를 보호하는 모성애를 상징하는 조형물.

곤명에는 이런 조각상이 많이 눈에 뜨인다.


 

 

 

 

바다가 아닌 호수에 갈매기가 많이보인다. 이 갈매기들은 시베리아에서 날아 온 철새라고 한다.


 

 

 

 

 

 

@대련(對聯) 

대련(對聯)은 대자(對子), 영련(楹聯), 영첩(楹帖)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의미가 상관(相關)되고,

형식상 대우(對偶: 한 쌍(짝)으로 대응)되는 두 구절인 것이다.

첫 구절은 상련(上聯), 오른쪽에 붙이거나 걸고; 두 번째 구절은 하련(下聯)이며

왼쪽에 붙이거나 걸어놓는다. 두 연(聯)의 글자 수는 같고, 두 구절에서 똑같은 위치상의 단어는

글자 수가 똑같으며, 사성(詞性: 문법상, 각자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일치하고 ,

 평측(平仄)이 조화되어야 한다. 당나라의 율시(律詩)에, 3번째 구절과 4번째 구절,

5번째 구절과 6번째 구절은 대우(對偶)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이다. 이러한 대우구가 대련(對聯)의 발생을 촉진시켰다.

 

전래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일찍이 춘추시기(기원전770∼476년)에

도부(桃符: 옛날 풍속으로 정월에 두 장의 복숭아나무로 켠 판자에 神 (신도), 郁壘(욱루) 두 문신을 그려서

문짝에 붙여 악귀를 쫓던 부적)를 거는 습속(習俗)이 있었다고 한다.

 도부(桃符)를 거는 것은 복숭아나무로 판벽널을 만들어,

윗부분에 부호를 그리거나 혹은 신도(씀바귀)(神 )와 욱루이신상(郁壘二神像)을 그리고

문에 달아 악마를 쫓아내고 귀신을 피하도록 한다. 

당나라 말기에 와서는 사람들이 대우된 덕담으로 도부(桃符)의 신상(神像)을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장 오랜 된 한 쌍의 대련(對聯)은

5대 10국(기원전907∼960년)시기 후촉(後蜀) 황제 맹창(孟昶)이

친히 도부(桃符)에 쓴 "新年納余慶, 佳節號長春"(새해에 조상의 은덕을 받아들이고, 명절에 영원한 봄을 바란다)이다. 

이 대련(對聯)은 이미 1,000여년이나 되었다.

 후에 사람들은 빨간 종이로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대련(對聯)을 쓰기 시작하였다.

 

음력설 때, 사람들이 대문에 붙인 대련(對聯)을 춘련(春聯)이라고도 한다.

춘련(春聯)이라는 단어는 명나라(1368∼1644)부터 시작되었다.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 어느 해 섣달 그믐날 밤에 유시(諭示)를 전달하여

 집집마다 춘련(春聯)을 붙이도록 요구하였다.

이로부터,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춘련(春聯)을 붙이는 풍속이 더욱이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춘련(春聯)이 경사스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외에 대련(對聯)은 또 수많은 기타 곳에도 사용할 수 있다.

중국에 명승고적이 많은데 일부 불당, 전당(殿堂)의 기둥에 모두 영련(楹聯)이 있었다.

이런 영련(楹聯)은 호수, 산의 경치와 정대누각(亭臺樓閣)에 많은 정취를 증가하였다.

 일부 영련(楹聯)은 글자 수가 적고 일부는 많다.

 

청나라 시인 손염(孫髥)이 쓴 곤명대관루(昆明大觀樓)는 제일 긴 聯이 180자나 되어

 "고금 제1장련"(古今第一長聯)으로 불렸다.

사실 이보다 더 긴 대련(對聯)도 있다.

청말(淸末) 양무파(洋務派) 수령 장지동(張之洞)의 일부

굴원상비사(屈原湘妃祠)의 장련(長聯)은 400자나 된다.

 

이전에, 항업련(行業聯)의 사용도 아주 보편적이다. 매 직업 매 업무마다 자기들의 항업련(行業聯)이 있다.

늘 한 쌍의 대련(對聯)을 보고 즉시 이 가게가 무엇을 경영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점(書店)에는

 "慾知千古事, 需讀五車書"(천고의 일을 알려면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대련(對聯); 여관(旅館)의 항업련(行業聯)은

 "歡迎春夏秋冬客. 款待東西南北人."(춘하추동 객을 환영하고, 동서남북인을 환대한다).

 

사람들은 이따금 주련의 형식으로 자신 혹은 타인을 고무 격려한다.

예를 들면 "書山有路勤爲徑, 學海無涯苦作舟."(서산에는 길이 있는데 부지런함이 그 도경이고; 배움에는 끝이 없는데 노

력하는 그 길 밖에 없는 것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학습하는 것을 격려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대련(對聯)이다. 

이 외에, 대련(對聯)은 경사로운 일을 축하하거나,

장수하기를 축원하거나, 죽은 사람을 애도 혹은 기타 경우에도 항상 쓰인다.

 

 

출처: 중국문화석의(中國文化釋疑)/주편;김내록

가져온 곳 :중국 주마간산기(走馬看山記) 2008/ 글쓴이 : 베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