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본문 제1구~4구)

2008. 9. 28. 12:32법성게

 

제2과 대화엄일성법계도주병서 (본문 제1구~4구)

 

『第1句』

法性 圓融 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

0.존재와 그 본성이 모순 없이 일체화되어 별개의 형상을 가진 것이 아니다.


<존재(法)>란 곧 여섯 가지 인식기관의 대상으로서 삼라만상인 모든 생명력 있는 것(有情)과 없는 것이며(無情), <본성(性)>이란 여섯가지 인식기관(六根)을 통하여 끊임없이 접촉(受用)하고 있으나 유추(計較)하거나 모색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모순 없이 일체화(圓融)」란 일체의 존재(一切法)가 다름 아닌 본성(一切性)이며 일체의 본성(一切性)이 다름 아닌 일체의 존재(一切法)인 것으로서 현존의 청산녹수가 바로 本來性이며 그 본래성이 다름 아닌 청산녹수인 것이다.

「별개의 形相을 가진 것이 아니다(無二相)」라는 것은 청산녹수와 그 본래성이 원래 한 개의 순수한 原質(바탕으로)로서 不可分離 인 것을 말한다. 다만 세인이 근거 없는 분별을 일으켜 마침내 주관(我)과 객관(人)을 대립시킨 것으로서 순수하고 무제약적인 상태 중에서 별안간 차별적 개념이 일어남으로써 십종의 위계적(位階的)인 존재세계(十法界)가 의제(擬制)되어 맹렬하게 작용하게 된 것일 뿐이니 대립과 제약이 없는 그 무엇에 관하여 알고 싶지 않은가.

『티끝처럼 많은 국토들이 자타 간에 털끝만큼의 간격이 없고 과거, 현재, 미래를 그 안에 포섭한 하나로서의 시간에 있어서 옛날과 지금이 시종 현재의 순간의식을 벗어나지 않는다.』(微塵刹境(미진찰경) 自他不隔於毫釐(자타불격어호리)

十世古今(십세고금) 始終不離於當念(시종불리어당념)


@法性: 存在者에 대한 存在

@十世古今不於當念 云云; 十世는 과거 현재 미래의 三世와 그 중에서 각 시점을 기준으로 성립하는 과거현재미래를 복합하여 九世가 되고 그와 같은 九世가 되고 그와같은 구세를 통합하는 一體로서의 역사적 시간을 말함. 앞에서의 十法界가 존재세계를 공간적으로 규정한 존재양식이라면 후자는 존재세계를 시간적으로 규정한 역사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當念: 당념은 흐름을 형성하는 의식의 구성요소인 一念들 중 現存意識으로서의 하나를 특정한 것. 당념은 따라서 시간, 공간에 의한 今(금), 玆(자)의 구조를 가진다.


『第2句』

諸法 不動 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

0.여러 존재들은 변동 없이 본래 고요하다.


「여러존재(諸法)」란 현존한 일체의 여건이고「변동이 없다」란 앞에서 말한 「유추하거나 모색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본래 고요하다」란 곧 앞에서 말한 「별개의 형상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실끝만큼도 변동하지 아니하여 本然과 일치한다」는 것이지만 「本然」이라고 말한 것이 벌써 일종의 변동에 해당하는 것이니 결국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치인의 면전에서 꿈이야기를 못하는 법』(癡人面前에 不得說夢)


@癡人面前 云云: 無門關(무문관)四則에 보이는 말. 원래 俗言으로서 癡人(치인)은 현실과 환상의 분간이 없으므로 꿈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정말인줄 안다는 뜻. 「對癡人說夢耳」/冷齊夜話


『第3句』

無名無相 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0.개념과 형상을 초월하여 무엇이라고 규정지울 수 없으니


여기에 이르러서는 부처니 보살이니 하는 차별적 개념이 부정되며 성문, 연각이니 범부니 하는 차별도 부정되며 존재(法)니 비존재(非法)하는 차별도 부정되며, 존재의 본성(法性)이니 본성의 부정(非法性)이니 하는 차별도 부정되며, 수행과정(緣起)에 속한다든가 증오(證悟)한 영역(證分)에 속한다든가 하는 차별도 부정된다(非緣起非證分).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도 없고 형상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것으로서 일체의 사념(思念)과 사려(思慮)를 허용치 않는 것이니 그것이 정작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말해주고 싶지만 말로써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니 숲속에 앉아 스스로 잘 생각해보라.』(欲言하대 言不及하니 林下에 好商量이어다)


@非緣起非證分: 증분은 敎分, 연기에 대응하는 것으로 正覺을 성취한 부처의 領分 . 果分이라고도 한다. 證分이 불변의 본질영역임에 대하여 敎分은 변화하는 현상의 영역으로서의 연기분이고 동시에 수행의 단계인 因分에 해당한다. 불변으로서의 본질영역은 개념과 형상을 초월하여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까닭에 果分은 不可說이라고 한다.

@欲言不及林下에 운운: 林下 는 叢林(총림)을 의미하고, 商量(상량)은 思惟(사유)를 의미함.


『第4句』

證智 所知 非餘境(증지소지비여경)

0.완성된 지혜의 부처라야 아는 것이지 아무나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부처들(三世諸佛)이 證得(증득)하는 바는 이것을 증득하는 것이고 역대의 선사들이 오득(悟得)한 바도 바로 이것을 悟得(오득)한 것으로서 석가모니부처가 영취산에서 가섭(迦葉)에게 전하고 달마대사가 숭산(嵩山) 소림봉에서 혜가(慧可)에게 전한이래 대대로 상승(相承)하여 명성을 잇고 진리의 불꽃을 전하여 온 사람이 수없이 많지만 단지 이것에 계합(契合)한 것일 따름이다.「境地」란 위에서 말한 바와같이「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으로서 思惟(사유)하여 알 여지가 있는 그러한 경지가 아니니 여기서 말하는 境地가 보통의 경지와 같은 가 다른가. (잠시 침묵한 끝에 말한다.)


『대장부가 慧劍(혜검)을 잡았으니 지혜의 칼날이여. 모든 망상을 태워버리는 금강명왕(金剛明王)의 불꽃(焰)같구나. 다만 異端(이단)의 비판적 견해만을 굴복시켰을 뿐만이 아니라 진작에 천마(天魔)의 파괴적인 의기마저 저상(沮喪)시켰던 것이다....에이.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놀리고 말았다.』


@證智는 信智, 始智에 대응한 말. 本覺으로서의 부처의 最高智. 信智는 始覺으로서의 지혜. 因智, 緣起分에 속한다. 법화경 방편품에 「唯佛與佛 乃能究盡 諸法實相」이란 말이 있다.

@大丈夫 云云: 영가 증도가에서 인용. 慧劍(혜검)은 반야의 검. 반야가 亂麻(난마)의 번뇌망상을 裁斷(재단)하는 기능을 비유한것. 금강명왕의 화염(焰)은 邪魔(사마)를 燒盡(소진; 굴복시킴)시키는 기능을 비유함. 外道는 異端(이단), 天魔(천마)는 佛法의 방해자. 혜검은 외도에, 금강명왕의 화염은 천마에 對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