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의 전설

2007. 6. 12. 00:39삶 속의 이야기들

 

 

 

옥녀봉의 전설


먼 옛날 사량도에 고기잡이로 외롭게 살아가는 한 홀아비가 있었다.

피붙이라고는 옥녀라는 불리는 과년한 딸 하나뿐이었다.

어느 여름날 일을 마치고 피로한 몸으로 술 한 잔 걸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우연히도 부엌에서 멱 감는 딸의 몸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그저 어린아이로 보였던 딸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이고

음심(淫心)이 발동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만 딸을 덮치려고 했다.

놀란 딸은 막무가내로 덮치는 아버지의 손길을 간신히 피하면서 애원했다.

『아버지의 딸이니 자식이 아버지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으로 제 청 하나만 들어주세요.』하고 애걸했다.


불같은 욕정에 사로잡힌 아버지, 무거운 짐을 지고 진흙탕에 빠진 소처럼

애욕의 늪에 빠져 앞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폭해진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바라보며 딸이 말했다.


『내일 아침 제가 뒷산으로 올라가 있을 테니 소 멍에를 지고,

소 울음을 내면서 네 발로 기어서 산으로 올라오시면

아버지의 청을 받아드리겠습니다.』


간신히 아버지의 거친 손길을 피한 딸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산으로 올라가 기다렸다. 아버지가 진흙탕에 벗어나 착한 아버지의 옛 모습을 되찾길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산 중턱에서 멍에를 지고 음매 음매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버지가 올라오고 있지 않는가.

그 순간 피 끓는 분노와 여자로 태어난 인간의 비애가

송곳처럼 가슴을 찔러오고 비수가 되어 가슴을 도려내었다.

그 무엇으로도 달래길 없는, 그 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는 슬픔을 안은 채 옥녀는 사량도의 앞 바다를 바라보면 절벽에서 뛰어내려 숨을 거두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 산 봉우리를 옥녀봉이라고 하고 시집을 가는 여자는 옥녀의 한을 기리기 위해 쪽두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사량도에서는 옥녀의 그 서라린 전설 때문에 아예 뭍으로 나가 결혼하지 사량도 섬 안에서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이란 경전이 있다. <유교경(遺敎經)>과 <위산경책(?山警策)>과 더불어 <불조(佛祖)삼경(三經)>이라 불리는 경전인데 거기 제 24장에 이른 말이 있다.


『이성에 대한 욕망보다 강한 애욕은 없다.

이성에 대한 욕망은 그 크기가 끝이 없다.

다행이도 그것이 하나이기 망정이지

만약 둘이었다면

천하에 도를 닦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애욕의 진흙탕에 헤매는 중생들

창살 있는 감옥은 풀려날 날이 있건만

창살 없는 저 애욕의 감옥은 언제 풀려날 것인가.

    

@옥녀봉은 통영 사량도 지리망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