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밟으며
2006. 12. 14. 00:59ㆍ넋두리
<만추의 햇살 어리는 늦은 오후의 수락산의 숲길>
낙엽을 밟으며
앙상한 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
만추의 수락산 자락
파도에 밀려온 해초처럼
산자락에 쌓인 누렇게 물든 낙엽들
이미 반쯤 썩어있는 잎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잎
옹골지게 뼈대가 있는 잎
한 여름 동안 이 낙엽들도
젊은 혈기 자랑하듯 무성하였으리라
그래서 산새들도 찾아오고,
그래서 매미들도 찾아왔든
그 푸른 잎들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푸른 잎은 누른 갈색으로 바뀌고
마침내 저렇게 떨어져 딩구는 낙엽들
다시 어느 날
어떤 잎은 불태워지고
어떤 잎은 계곡의 흙 속에 묻히고
또 어떤 잎은 그대로 나신(裸身)이 되어
사람들에게, 산짐승들에게 밟히면서 사라지겠지.
우리네 인생살이도 생각해 보면
저 낙엽들의 인생과 무엇이 다를까.
부모라는 가지를 통해 이 땅에 왔다가
한 세상 희비애락의 쳇바퀴 돌리다가
어느 날, 기약 없는 그 어느 날
불태워지거나, 묻히거나, 버려질 인생
썩은 잎처럼 병들은 사람도
뻥뻥 구멍 뚫린 잎처럼 상처투성인 사람도
뼈대 있고 옹골찬 잎처럼 가문 좋고 잘 나가는 사람도
세월의 뒤안길에 밀려 사라질 저 낙엽과 무엇이 다를까.
늦은 오후 수락산 오르는 길
만추의 햇살이
딩구는 낙옆에 묻혀 내 눈을 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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