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2. 04:59ㆍ잠언과 수상록
<보리암에서 바라본 남해의 섬들>
삶의 관조(觀照)
강에는 물고기가 있고
산에는 새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있을 곳에 있습니다.
거리에 딩구는 돌맹이 하나라도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세상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은 절대로 혼란의 상태는 아닙니다.
그대가 이해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다만 부분만을 알고
전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얼마나 살았던 간에
그대의 삶의 경험은
마치 찢어진 소설의 한 페이지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대는 그것을 읽지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한 조각에 불과하고
그대는 전체 줄거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전체 줄거리를 알기만 하면 그 페이지는 이해되고
이치에 맞고 의미가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의미란 부분을 전체와의 관련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의미란 전체에 대한 부분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떠들고 있는 미친 사람의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그의 말은 어느 것에도 연결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편적인 것이고,
그는 어느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 그럴 필요도 없고, 거기 이야기 할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편적입니다.
그것은 좀더 큰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의미란 전체와의 관계에서 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부분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강물을 두고 우리는 그 강물을 한 두 숫갈 떠보고는
흐리다 맑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지나보면
다 그렇고 그런 것처럼 느껴진 적도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허무에 빠지고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것도
우리가 삶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없어
부분적으로 보기 때문에 안일한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삶이란 전체적으로 관조할 수 있을 때에만
진실로그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럼으로 내 삶이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나 혼자 버려진 것처럼
찢어진 소설의 한 페이지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