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9. 13:39ㆍ잠언과 수상록
그대 안에서 찾아라.
자아의 탐구는 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밖아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교회의 목사님들은 사람만 찾아오면 신을 이야기 합니다.
절의 스님들도 사람만 찾아오면 열반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모릅니다.
신이 있는 지 열반이 어떤 것인지.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은 <신>이란 이 단어와
<열반>이라는 이 단어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신을 이야기 하든 열반을 이야기 하든
그런 신과 열반은 말하는 목사나 스님들의 몫입니다.
그것은 그대 관념 속에 심어준 관념으로서의 신이요
열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크리스천이라면
예수를 관념화시키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가 불교도라면
부처님을 관념화시키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관념의 투사현상으로서
예수나 부처를 보기는 또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환각입니다.
노이로제 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얼마든지
멋진 환각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 마음이 만들어 낸 이 환각 앞에서는
환각 아닌 실체조차 무색해져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매일 밤 꿈속에서
그대는 이런 짓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대 마음은 환각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각을 만들어 낼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실체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합니다.
매일 밤 그대는 꿈을 꿉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또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현실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것이 설령 이치에 맞지 않는 현실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그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그대는 아내와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아내가 호랑이로 변합니다.
그런데도 그대 마음속에는 전혀 의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꿈속에서는 이와 같이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대가 관념에 빠지면 이와 똑같은 현상이 그대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심신명은
『몽환공화(夢幻空華) 하로파착(何勞把捉)』이라고 한 것입니다.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왜 애써 잡으려 하는가 하는 의미입니다.
정신분석학의 개척자인 프로이트는
『종교란 노이로제의 집합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종교란 확실히 노이로제의 집적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와 예수는 결코 노이로제적이 아니었습니다.
붓다와 불교도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그의 내부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불교도들은 불교라는 그 관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는 그 자신의 존재 내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보고 있습니다.
밖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이 다른 것입니다.
영가스님이 노래합니다.
『대천세계(大千世界)는 해중구(海中漚)요,
일체성현(一切聖賢)은 여전불(如電佛)이로다.』
대천세계는 바다 한 가운데 거품이요,
모든 성현은 번갯불 스쳐감과 같도다.
그럼으로 모든 것은 그대 내면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밖을 향해서 구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밖에서 구하면
그대는 또 다른 노이로제 환자가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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