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6. 27. 01:26ㆍ잠언과 수상록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우리는 태어나 지금 살고 있지만
왜 <내>가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지금의 부모와 인연을 맺어
이 땅에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행복과 불행이 오고 가며,
왜 슬픔과 기쁨이 내 삶에 교차하는 지
그 인연의 쌍곡선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는 인연으로 우리는 태어났고,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을 따라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알 수 없는 인연을
부처님은 업(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업의 시작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님이라고.
그리고 말합니다.
<종교란 신비한 것이다. 그저 믿어라>
그러나 버트란드 러셀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계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는 없다.
모든 것에 시작이 있어야 한다는 발상은
진실로 우리의 상상력이 빈곤한 탓이다.』
부처님은 그 시작은 무명(無明)이요,
무명은 무시이래(無始以來)라고 했습니다.
그 시작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업의 시작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고통과 번뇌가 없는 유토피아의 새 삶입니다.
온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야할 곳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은 그곳을 해탈과 열반의 세계라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산 밑에서는 저 쪽 산 너머의 일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의심이 생기고 회의가 생긴다.
그러나 정상에 서면 이쪽 과 저쪽을 모두 볼 수 있다.
보면 의심은 당연이 사라지게 된다.』고.
우리는 지금 해탈과 열반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직 이 쪽 산 밑에 있기 때문에
저 너머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해탈과 열반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자명합니다.
부처님이 이르시듯
빨리 저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뿐입니다.
의심의 소굴을 벗어나
부처님이 이르신 그 길을 따라
산을 오르는 길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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